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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윤지훈은 송유리의 작은 행동을 놓치지 않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어머, 질투하는 거야? 조금만 노력하면 너에게도 기회가 올지도 모르는데? 인성이 형이 기분 좋아서 하룻밤을 함께 보낼 기회를 줄지도 모르잖아.” 송유리는 겁에 질려 입도 뻥끗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채 숨죽였다. 윤지훈은 그런 송유리의 소극적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아까는 그렇게 당돌하더니, 갑자기 왜 이렇게 기가 죽었지?’ 흥미를 잃은 그는 다시 고인성에게 시선을 돌렸다. “듣자 하니, 그 여자를 외곽에 있는 애완견 전용 별장에 데려다 놨다면서? 어떤 여자인지 안 보여주려고 숨겨둔 거야?” “할아버지가 한 일이야.” 고인성은 손에 든 와인잔을 천천히 흔들며 무표정하게 답했다. 송유리는 손에 쥔 술병을 꽉 쥐었다.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 황이진이 그 별장에 가게 된 이유가 그날 밤 사건 때문이었다니,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이진 언니를 나로 착각한 거야?’ 송유리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상황이 이대로 흘러가는 게 차라리 나을 것 같았다. 그날 밤은 그저 우연일 뿐, 그녀는 애초부터 고인성에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다. 그리고 황이진은 언제나 그녀를 따듯하게 대해줬기에, 송유리는 이 일로 그녀에게 피해를 줄 수는 없었다. 윤지훈은 여전히 궁금한 듯 물었다. “왜 그 여자를 데리고 오지 않았어? 같이 놀면 좋잖아.” “재미없어.” 고인성의 무미건조한 대답에 윤지훈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니지... 인성이 형, 우리 중에서 형이 제일 진중해 보이잖아. 이제 보니 실은 형이 제일 나쁜 남자였네? 하룻밤 만에 질린 거야?” “그런가 봐.” 고인성은 여전히 담담했다. 대신 와인잔에 남은 술을 단숨에 털어 넣었다. 평소라면 한 모금만 마시고 잔을 내려놓았을 텐데, 이번엔 단번에 반 잔을 비워버렸다. 윤지훈은 아예 막 나가자는 듯 제안했다. “이미 나쁜 남자 된 거, 오늘 밤에 여자 하나 데려가. 아예 제대로 공략해 봐!” 고인성은 눈꺼풀을 살짝 들며 윤지훈을 바라봤다. 그 눈빛엔 노골적인 싫증이 가득했다. “헛소리 좀 그만해.” “왜 또 그러는데? 세상 고고한 척은 혼자 다 한다니까.” “누구처럼 병에 걸릴까 봐.” “병? 나 병 없어!” “네 얘기라고 했어?” “푸하!” 윤지훈은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히더니,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인성은 진짜 사람의 약점을 정확히 찌를 줄 아는 사람이었다. 짧은 말 한마디에도 상대방을 단번에 무너뜨리는 치명적인 한 방이 있었다. 윤지훈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자, 그제야 모임이 끝이 났다. 그는 두 명의 보디가드에게 부축을 받으며 휘청거렸지만, 마지막까지도 고인성에게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 “인성이 형! 정말 관심 있으면 이름이라도 물어봐. 다음에도 옆에 앉혀두란 말이야.” 고인성은 그의 헛소리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갑에서 두툼한 지폐 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팁이야.” 그는 마지막으로 그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미련 한 조각도 없이, 그녀의 이름조차 묻지 않은 채로 사라졌다. 송유리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조차 하지 못했지만, 주저 없이 테이블 위의 돈을 모조리 챙겼다. ‘오늘은 내 업무도 아닌 일을 했으니 이 정도 보상은 당연히 받아도 돼! 고인성 대표는 진짜 스케일이 다르네? 팁으로 현찰을 이렇게 두툼하게 챙겨주다니!' 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시끄럽던 공간은 고요해졌다. 다른 직원들도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뒷정리에 집중했고 송유리도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 탈의실 바깥, 복도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일찍 퇴근했던 손서우가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다. 그녀는 몰래 황이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러 번의 발신음이 울리고 나서야 전화가 연결되자, 손서우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전화기 너머에서 황이진은 비웃음을 터뜨렸다. 손서우가 집요하게 전화를 걸지 않았다면 애초에 받을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두 사람은 비트 타운에 함께 입사한 동기였다. 오래된 직원들끼리 늘 부딪치며 지내다 보니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황이진은 손서우가 전화를 걸어오는 게 좋은 일일 리 없다는 걸 직감했다. “할 말 있으면 빨리 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좋아.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갈게.” 황이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손서우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내가 너의 비밀을 알아버렸거든. 그러니까 내 입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지?” “드디어 미쳤구나. 내 앞에서 그런 헛소리 통할 줄 알아?” “하하! 운 하나는 진짜 좋다니까. 네가 고씨 가문에 들어갈 줄은 몰랐어. 다들 네가 고인성 대표님이랑 잤다고 믿고 있더라? 바보처럼?” “그래서? 네가 뭘 어쩔 건데?” “난 더 많은 걸 알고 있어. 예를 들면 그날 밤 고 대표님을 모신 사람이 네가 아니란 거.” 황이진의 숨이 잠시 멎었다. 지금 그녀가 누리고 있는 이 화려한 삶은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증거 있어?” 손서우는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당연히 증거도 없이 함부로 말하진 않겠지. 그날 나도 근무 중이었어. 네가 술에 취해서 빈방에서 코 골면서 자는 거 다 봤다고. 자는 모습 몰골이 얼마나 흉하던지... 몰래 사진도 찍어 놨거든? 내 핸드폰에 고이 잘 보관되어 있어.” “손서우!” 황이진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분명 완벽하게 숨겼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다 이 재수 없는 손서우에게 들켜버린 걸까!’ “원하는 게 뭔데?” “이진아, 네가 부잣집에서 호강하게 되었으면 친구도 좀 챙겨줘야 하지 않겠니? 나 요즘 돈이 좀 필요해서 말이야. 4억 정도 주면 내가 조용히 입 다물고 있을게.” “4억? 너 진짜 제정신이야? 내가 어디서 그런 돈을 구해?” “넌 이미 재벌가에 들어갔잖아. 그 정도 돈이야 너에겐 껌값일 텐데? 내가 이 일을 대표님께 말하면 어떻게 될까? 네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걸 다 잃는 건 둘째 치고, 대표님을 속인 대가로 몇 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모자랄걸? 난 지금 너를 도와주는 거야... 알겠지?” ... 새벽 세 시. 송유리는 휴게실에서 고인성이 준 팁을 세어보았다. ‘무려 50만 원이네?’ 게다가 매니저도 퇴근하자마자 바로 160만 원이나 되는 커미션을 보내주었다. 하룻밤 사이에 2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손에 쥐게 된 송유리는 오늘 밤 달콤한 꿈을 꿀 것만 같았다. ‘이렇게 잘 풀린다면 이진 언니에게 빚진 돈도 곧 갚을 수 있을 거야.’ 송유리는 근무복을 갈아입고 비트 타운을 나섰다. 오늘 하루를 무사히 마친 기념으로, 퇴근길에 근처 먹자골목에서 맛있는 걸 사 먹으며 작게나마 자신을 축하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하지만 발걸음을 옮기던 그녀는 이내 멈춰 섰다. 비트 타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에 띄는 마이바흐 차량이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옆에서 고인성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담배를 잡은 그의 긴 손가락에는 은근한 힘이 느껴졌고, 붉게 타오르는 담배 끝의 불빛은 가로등 아래에서 그의 얼굴을 은은하게 물들였다. 차가운 밤공기 속에서도 고인성의 또렷한 이목구비는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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