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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송유리는 고개를 단호히 저으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 술을 못 마셔요.” 이 정도 핑계를 대면 이제 놓아줄 줄 알았는데, 상대방은 전혀 물러설 기미가 없었다. 윤지훈은 기분이 상했는지 더는 예의를 차리며 존댓말로 부탁하지 않았다. “괜찮아. 술을 못 마시면 우리 인성이 형 옆에 앉아서 술을 따르기만 해. 그거면 돼.” “저... 따르는 것도 못 해요.” “술 따르는 것도 못 한다고? 지금 나 놀리는 거야?” 윤지훈의 얼굴에 당혹감과 불쾌감이 서렸다.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누가 믿어? 비트 타운에서 일하는 애들은 하나같이 눈치가 빠르다던데, 얘는 대체 뭐지? 이렇게 눈치 없는 여자는 처음이네.’ “죄송합니다. 저... 밀린 서빙 오더가 있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송유리는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도망치듯 발걸음을 떼려 했다. 하지만 윤지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그녀를 붙잡았다. “뭐라고? 거기 멈춰 봐.” 송유리는 겁먹은 듯 조심스럽게 발을 멈추고 입술을 꽉 다물었다. 또다시 또 거부 했다가 상황이 더 나빠질까 두려웠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아했다. ‘비트 타운에는 예쁜 여자들도 많고 이 방에 들어오고 싶어 안달 난 여자들도 많은데... 손님들이 귀찮게 할 때마다 지금처럼 일부러 눈치 없는 척하면 금세 짜증 내면서 보내줬었잖아! 왜 이번에는 안 통하지?’ 정말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윤지훈의 화가 서린 목소리 덕분에 룸 안의 공기는 금세 얼어붙었다. 모두가 숨을 죽였고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송유리는 마치 동물원에 갇힌 원숭이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시선이 그녀에게 쏠렸고, 사람들의 얼굴에는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다들 기회만 주면 안달이 나서 달려드는 자리인데, 왜 저 여자는 저렇게까지 싫어할까?’ 침묵을 깬 건 고인성이었다. “그만 나가봐도 돼.” 송유리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가도 된다고? 그럼 당연히 가야지!’ 그녀는 대답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몸을 돌려 서둘러 나가려 했다. 미간을 찌푸린 고인성의 얼굴은 의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저렇게 미련 없이 가버린다고? 그날 밤... 그 여자와 똑같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녀와 비슷한 여자들이 몰려들어 귀찮게 한 덕분에 고인성의 흥미는 이미 바닥을 쳤다. 윤지훈은 고인성의 반응이 이해되지 않았다. “인성이 형, 저 여자가 이렇게 대놓고 나를 무시했는데도 감싸주는 거야?” “네가 너무 시끄러워서 그래.” “핑계 대지 마. 사실 저런 스타일 좋아하는 거잖아!” “헛소리 하지 마.” 고인성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톤은 오히려 사람들을 더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송유리가 룸 문 앞까지 걸어가 문손잡이를 잡고 나가려던 순간, 문 앞에서 매니저와 마주쳤다. “매니저님...” 매니저는 두 손으로 송유리의 어깨를 꾹 눌러 그녀를 돌아서게 했다. 그러고는 다시 룸 안으로 그녀를 밀어 넣었다. 매니저는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여기 있는 분들은 비트 타운에서도 가장 중요한 손님들이야. 이분들을 불쾌하게 만들 거면 당장 이 일 그만둘 각오부터 해야 해.” “하지만... 전 그냥 술을 서빙하러 온 건데요...” “술 따를 줄 알아?” 송유리가 입을 열려던 찰나, 매니저의 차가운 목소리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모르면 당장 나가.” “...” ‘돈이 걸린 상황에 부닥치면 태세 전환하겠지 뭐.’ “잘해 봐. 이분들이 술을 많이 마시면, 보너스도 챙겨줄게.” 매니저는 그렇게 말하며 송유리를 고인성 옆으로 밀어 넣었다. “이 친구가 신입이라 아직 뭘 잘 모르네요. 고객님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아까 한 말은 민망해서 던진 농담이라네요? 설마 술 따르는 걸 모를 리가 있겠어요? 유리씨, 맞죠?” 송유리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네... 농담이었어요...” “좋아요. 그럼 우리 VIP들 잘 부탁해요.” 매니저는 송유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방 안의 사람들을 향해 밝게 웃었다. “최근 저희 가게에 새로운 패키지가 나왔는데, 한 번 보여드릴까요? 정말 재미있는 볼거리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엘리자베스’ 패키지는 999만 원, ‘미라클 모닝’은 9999만 원입니다. 모두 특별한 퍼포먼스와 함께 진행돼서 아주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할 거예요.” 윤지훈은 고인성 옆에 여자가 앉아있는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뜬 표정이었다. 마치 친구를 장가보낸 것처럼 기분이 좋은 듯, 흔쾌히 매니저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아요. 한 세트씩 가져와요!”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매니저는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이번 달 실적은 이걸로 다 채웠다!’ 윤지훈은 송유리를 보며 의미심장한 눈짓을 보냈다. “이제 여기 남아 있게 됐으니, 마스크 좀 벗는 게 어때?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보고 싶은데?” 사실 그는 고인성이 관심을 보인 여자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송유리는 무의식적으로 마스크를 부여잡았다. ‘마스크를 벗었다가 고인성이 나를 알아보시면 어쩌지? 저번에 그분을 화나게 했던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 이 일자리도 날아가는 거 아니야...’ “비트 타운 규정상 근무시간에는 마스크는 벗을 수 없어요...” “규정? 여기서는 우리의 말이 곧 규정이야.” “저는... 마스크를 벗는 게...” 윤지훈은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 ‘탁!’ 하고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늘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흘러왔던 그에게 누군가의 반박은 익숙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정말 나를 이렇게까지 무시한다고?’ “내가 만만해 보여? 너 따위가 대체 뭔데 이렇게 까다롭게 구는 거야? 여기서 누가 갑인지 아직도 몰라?” 더 이상 말해봤자 상황이 좋아질 리 없어 보이자, 송유리는 소파 구석에 웅크린 채 입을 꾹 다물었다. 이때 윤지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지금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오늘 그 마스크는 내가 꼭 벗겨야겠어!” 그가 성큼성큼 다가오자, 송유리는 마치 겁먹은 강아지처럼 몸을 움츠렸다. 머릿속은 새하얘졌고 어떻게 이 상황을 벗어나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의 손이 그녀 앞을 가로막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 손의 주인은 고인성이었다. 그는 윤지훈을 바라보며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용히 좀 해.” “형, 내가 시끄러운 게 아니라! 저 여자가 나를 무시했다고! 내가 참아야 해?” 고인성은 말없이 강렬한 눈빛으로 윤지훈을 쏘아봤다. 그러자 윤지훈은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지만 입은 멈추지 않았다. “나중에 마스크 벗겼더니 진짜 못생긴 여자면 어쩌려고? 형, 후회하지 마.” 고인성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잔을 기울였다. 송유리는 그의 잔에 술이 거의 비어있는 것을 보고는 재빨리 병을 들어 채워주었다. 혹시라도 보너스를 받을 수 있을까 싶어 가장 비싼 술을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지훈이 주문한 세트들이 방으로 들어왔고 방 안은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비트 타운에서는 손님들에게 술을 팔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준비해 두었다. 꽹과리 소리가 울리고, 작은 폭죽이 터지며, 스타킹에 짧은 치마를 입은 아가씨들이 물결처럼 춤을 추며 분위기를 띄웠다. 하지만 윤지훈은 고인성과 송유리가 여전히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더 자극적인 분위기를 원했다. “인성이 형, 지난주 수요일 밤 어땠어? 모두가 궁금해하잖아. 강철 나무에 드디어 꽃이 핀 그날이라고 해야 하나? 어땠냐고!” 방 안에서 이런 대담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윤지훈뿐이었다. 송유리는 손에 쥔 술병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지난주 수요일 밤? 그날이면... 우리가...’ 송유리는 누군가 이 자리에서 갑자기 그날 밤 이야기를 꺼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고인성의 얼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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