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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장

기모진은 묘비의 이름을 가볍게 쓸어보더니 일어섰다. 주변은 그의 마음처럼 온통 적막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자 기모진은 그제서야 내키지 않는다는 듯 자리를 떴다. 소만리가 막 여온이를 데리고 들어서는데 기모진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며 긴히 할 말이 있다고 했다. 소만리는 전화를 끊고 여온이와 놀아주고 있는 기묵비를 보았다. “가봐요. 마음에 끌리는 일을 해야지.” 기묵비가 차마 말을 못하고 곤란해 하는 소만리의 마음을 눈치채고 말했다. 그는 그녀가 지금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복수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기모진은 그녀가 복수하려는 대상 중 하나였다. 소만리는 옷을 차려 입고 가방을 들고 내려갔다. 막 엘리베이터를 나서는데 기모진의 차가 밖에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어스름이 내리고 빗줄기도 세졌다. 소만리가 오는 걸 보더니 기모진은 비를 맞으면서 그녀를 위해서 보조석 문을 열어주었다. 차에 타자 소만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 시간에 무슨 급한 일이 있다는 거죠?” “그 동안 미립 씨를 괴롭히던 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소만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운전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어둑어둑한 차 안에서 희미한 빛이 그의 결연한 옆모습을 비췄다. 소만리는 웃음을 띤 기모진의 얼굴을 흘끗 봤다. “별 거 아닙니다. 그냥 밥이나 한 끼 하려고요.” 그가 말했다. “이제 다시는 당신을 그녀로 착각하지 않을 겁니다.” “그녀요?” “제 전처 말입니다.” 기모진은 대답하며 악셀레이터를 밟았다. 바퀴가 비에 젖은 길가의 낙엽을 감아 올렸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속마음을 소리 없이 휘감아 사라지는 듯 했다. 소만리는 기모진과 식당에 가게 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가 그녀를 데리고 별장으로 갔다. 예전에 그녀가 살았던 바로 그 별장을. 집이 조용한 것이 아마도 일하는 사람들이 없는 듯 했다. ‘기란군도 없나?’ 양육권을 다투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란군은 소만영이 데려갈 텐데, 아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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