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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화

“그만.” 하준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경고했다. 눈에서는 한기가 흐르면서도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이 느껴졌다. 여름의 말이 칼처럼 심장을 찢었다. 그간 여름이 온순하고 가만히 있어서 드디어 익숙해져서 생각을 바꾸었구나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여름의 진심을 알게 되었다. 여름이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생각을 하자 어마어마한 공포가 엄습했다. “생각을 바꾸지 않겠다면 당신 가족과 친구들도 모두 한꺼번에 다 매장시키겠어.” “당신은 미치광이, 악마야!” 여름은 저주를 퍼부었다. “언젠가는 주변 사람이 모두 당신을 배신하고 곁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을 거야. 모두가 다 당신을 증오하고 침을 뱉고, 회사는 망하고 당신은 땡전 한 푼 못 건질 거라고.” “그래, 욕해 봐. 아무리 욕해도 난 당신을 놓아줄 생각이 없어.” 하준은 비통함을 꾹 눌러 참았다. “이번에 임신이 안 되면 다음번에, 한 달로 안 되면 두 달을, 당신이 임신할 때까지 계속할 거야. 난 얼마든지 당신이랑 보낼 준비가 되어 있어.” 그러더니 하준은 나가버렸다. 방문을 나설 때쯤 뒤에서 물건 깨지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속이 쓰렸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가장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저주밖에 못 받는 신세라니. ‘하아, 나도 놓고 싶다. 하지만 양유진과 여름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느니 차라리 여름의 손을 잡고 지옥으로 뛰어들겠어.’ 서재에서 하준은 한 잔, 또 한 잔 와인만 들이켰다. 전에는 그렇게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는데 지금은 점점 무감각해지는 것 같았다. 휴대 전화가 울려 받아 보니 초조한 상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일 났습니다. 랜들에서 오늘 한발 앞서서 자기네 신개발 반도체를 발표했습니다. 그런 그쪽 반도체 데이터가 우리 것과 똑같습니다. 게다가 저희 실험실의 반도체 관련 자료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뭐라고?” 하준은 벌떡 일어났다. 술잔이 털썩 떨어지며 산산조각 났다. 분노에 소리를 질렀다. “지룡 녀석들에게 가서 실험실을 지키라고 했잖아? 어쩌다가 데이터가 모두 사라져?” “그건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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