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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0화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직접 법정에 나설 테니” 하준이 가라앉은 소리로 답했다. “잘됐다. 세상에 우리 준만큼 확실한 변호사는 없으니까.” 백지안이 고개를 들고 빙그레 웃었다. ---- 밤이 내린 최하준의 본가. 모처럼 만에 돌아온 하준을 보고 장춘자는 못마땅한 듯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구나. 네가 집을 다 오고. 손에 든 건 뭐니?” “신상 인형요.” 하준은 인형을 들고 여울에게 다가갔다. “여울아, 큰아빠가 선물 사 왔다.” 하준은 평생 꼬맹이의 기분이나 살피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제 여울의 말은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밤새 잠을 이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왜 최양하의 딸에게 이렇게 자신이 쩔쩔매는지 정말 모를 일이었다. “싫어요.” 여울이 고개를 돌리더니 장춘자의 뒤로 숨었다. 장춘자가 못마땅한 눈으로 하준을 노려보았다. “여울이 애비를 평사원으로 강등시켰다며? 애 꼴을 그렇게 우습게 만들어 놓고도 뻔뻔하게 여울이를 보러 오다니?” “양하가 벌써 여울이에게 그런 소리를 다 했습니까?” 하준이 얼굴이 무거워졌다. “아니거든요.” 여울이가 고개를 들었다. 한껏 겁먹은 눈이었지만 그래도 큰 소리로 외쳤다. “작은할아버지랑 작은할머니가 그러는데 우리 아빠가 뭘 잘못해서 큰아빠가 혼내줬다고 그랬어요.” 하준은 말문이 막혔다. 도무지 어린애에게 마땅히 설명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지안이 이모 말처럼 큰아빠는 다른 아빠에게서 태어나서 우리 아빠를 미워하는구나.”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여울이 말했다. “백지안이 그런 소리를 하디?” 장춘자의 얼굴이 확 변했다. “어떻게 된 물건이 어린애에게 그따위 소리를 지껄인다니? 정말 너무하구나.” “할머니….” 최하준은 매우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장춘자가 호통을 쳤다. “요즘 날마다 병원에 들락거리며 백지안이를 돌보고 있다며? 어디 여자가 없어서 널 두고 바람이 난 애에게 그러고 목을 맨다니? 온 나라가 그 물건 천박한 것을 두고 난리가 났는데 너만 모르는구나.” 하준은 굳은 얼굴로 아무 말이 없었다. 이때 최대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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