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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3화

백지안의 말에 지난 사건들을 하나하나 되새겨 보니 하준의 생각에도 의심스러웠다. “백지안, 헛소리 마. 난 지극히 정상이라고.” 하준이 가만히 입 다물고 있는 모습을 보니 여름에게 불안이 엄습했다. 그래서 다급히 해명했다. “당신들 때문에 화가 나서 그런 거라고.” 백지안은 연민어린 시선으로 여름을 내려다보았다. “우울증 있는 사람들은 자기 병을 잘 인정 안 하려고 해요. 게다가 유산까지 했으니 정말 빨리 치료를 받으시길 권할게요.” 그 말에 여름은 온몸의 힘을 그러모아 백지안에게 따귀라도 날리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때 여름이 분노할수록 하준은 백지안을 믿게 될 터였다. “최하준은 이미 당신 거잖아. FTT 사모님 자리도 이제 양보하겠어. 그런데 대체 왜 이렇게 날 가만두질 못하는 거야. 이제 앞으로는 눈앞에서 마주쳐도 아는 척도 하지 않고 돌아서 갈게.” 하준은 저도 모르게 미간에 힘이 들어갔다. 하준은 여름을 미워해야 하는 것이 맞겠지만, 여름이 자신을 마주치고 아는 척도 안 하고 돌아가는 모습을 상상하자 어쩐지 기분이 나빴다. 백지안이 씁쓸하게 웃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이해를 하려나? 생각 안 해봤나 본데, 지금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정말 평생 고생할 수도 있어요. 당신은 최하준의 전처인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대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최하준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됐어. 내가 병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지.” 여름은 이제 진짜로 멘붕이 올 지경이었다. “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러는지 모르겠네. 아이를 잃은 것만으로도 난 이미 비참한데 날 정신병원에 처넣기까지 하겠다는 건가? 최하준, 날 사랑하지 않는 것까지야 그렇다고 치더라고, 날 인격으로서는 대해줘야 할 게 아니야?” “병원에 입원할 것까지는 없어요. 그냥 밖에 돌아다니지 말고 매일 시간 맞춰 약만 잘 먹으면 되지.” “됐어. 난 건강한 사람이야. 약 따위 먹을 필요 없어.” “당신하고는 말이 안 통하는군요.” 백지안은 고개를 돌려 하준에게 말했다.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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