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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화

서유인과 하준 옆에서 손 아프게 과일이나 까고 있으려니 울컥했다. ‘어쩌다가 난 이런 사람을 사랑했을까? 서유인이랑 수준이 딱 맞는 천박한 인간이었어…’ 불편한 자리가 계속되고 시간은 어느새 식사시간이 되었다. 여름이 대놓고 말했다. “저는 여기에서 같이 식사할 자격이 없으니 주방에서 따로 식사하겠습니다.” 이번에는 허락도 들을 것 없다는 듯이 곧장 자리를 벗어났다. 하준의 얼굴빛이 금새 굳어버렸다. “주제 파악은 잘하네, 시키니까 얌전히 과일도 까고.” 서유인은 거만한 말투로 고개를 까딱했다. 서경주는 남몰래 이를 꽉 깨물었다. 할 말도 없었다. 저녁 식사는 위자영이 하루종일 공을 들여 준비시킨 음식들이었는데, 하준은 두 세 젓가락 맛을 보더니 입맛이 없는지 수저를 놓았다. 강여름과 헤어지고 나서는 한 끼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었다. 속이 늘 헛헛했다. “음식이 입에 안 맞나 보네요.” 위자영이 눈치를 보며 소심하게 물어보았다. “방금 과일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봅니다. 어서 드십시오. 저는 손 좀 씻고 오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 화장실로 가는 길에 주방을 지나야 했다. 하준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주방 안으로 시선을 고정시켰다. 주방 한켠에는 맛있게 음식을 먹고 있는 여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다른 여자랑 있는 걸 보고도 밥이 넘어가?’ 괜히 심술이 나서 저도 모르게 성큼성큼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여름 앞에 멈춰 서서 차갑게 조롱하기 시작했다. “동성에는 여기처럼 맛있는 음식이 없었나 봅니다. 누가 보면 굶은 사람인 줄 알겠습니다?” “…….” 갑자기 툭 던지는 악의로 가득찬 말에 여름은 입에 든 음식을 삼킬 수가 없었다. “처!음 먹어봐요, 처!음. 재료도 특!이하고, 참! 맛있네요” 여름이 말을 하자 입 안에 씹고 있던 음식이 그의 얼굴에 '파바박 튀었다. 다분히 고의적이었다. “아니, 이게 대체! ” 하준은 화가 나서 얼굴은 벌게지고 목은 완전히 잠겨버렸다. 매끈한 얼굴, 완벽한 수트에는 여름의 입에서 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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