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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6화

“…아니, 문제는 지금 열도 안 나고 배탈도 안 나셨는데 해열제니, 소화제니 뭐 닥치는 대로 다 드셨다고요.” 여름은 가만히 있었다. 엄 실장이 약을 그렇게 많이 사가지고 갔는지 몰랐다. 생각해 보니 엄 실장에게 하준이 증상을 설명 안 하고 다짜고짜 감기약을 사가라고 했더니 뭘 사야할 지 몰라서 있는 대로 사가지고 간 것이다. ‘아니 그렇다고 해도 증상도 안 보고 그걸 다 먹었다고? 무슨 사탕도 아니고 말이야…” 상혁이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좀 말려주십시오. 저렇게 드시다가는 없던 병도 생기겠습니다.” “애도 아니고, 설명서도 안 읽고 약을 먹는대요?” 여름이 화를 냈다. “강 대표님이 보내준 건 뭐든 좋다면서 소화제도 맛있답니다.” 상혁이 천연덕스럽게 답했다. “……” 여름은 결국 하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기가 보내준 약은 내가 다 먹었어. 고마워.” 하준의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가벼웠다. 듣는 여름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약을 너무 대충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약을 다 먹고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약을 보낸 사람으로서 책임을 져야 할 것이 아닌가. “감사는 됐고. 아침에 증거 보내준 거 고마워서 보낸 거니까.” “그러니까… 그냥 보수 같은 거네?” 하준의 목소리가 갑자기 축 쳐졌다. “그렇지.” 하준이 바로 말을 이었다. “그러면 필요 없어. 내가 원하는 보수는 뽀뽀라니까? 약은 내가 사서 먹어도 돼. 김 실장 시켜서 돌려 보낼게. 뽀뽀, 나는 뽀뽀 받고 싶다고.” “최하준, 정말 미쳤나 봐?” 여름은 울컥했다. “아니! 사랑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뿐이거든.” 하준이 낮게 웃었다. 감기가 걸려서 목이 더욱 잠겼다. 여름이 목청을 가다듬었다. “됐고, 약은 보수라고 하지 마. 그러니까 약 마구 먹지 말라고. 기침이 나면 기침약을 먹고, 열이 나면 해열제를 먹어야지, 그게 무슨 사탕인 줄 알아?” “자기야, 약은 마구 먹으면 안 된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이건 우리 자기가 처음으로 나한테 보내준 약이잖아. 난 살면서 내가 당신에게 이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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