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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화

이주혁은 깜짝 놀랐다. 확실히 가끔 셋이 밥을 먹을 때 생각해보면 하준은 예전에 있었던 일을 자신들보다 더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곤 했다. 오로지 여름과 관련된 것들은 많은 기억이 흐릿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네 말이 사실이라면…지안이는 너무 무서운 애잖아.” 이주혁은 몸에 소름이 돋았다. 온갖 사람을 다 만나보았지만 백지안처럼 본모습을 감쪽같이 감추고 살아가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아니. 걔는 무서운 게 아니야. 악랄한 거지.” 하준이 한숨을 쉬었다. “연 교수님 말씀으로는 그 최면술은 실패할 확률이 높고, 실패할 경우 초래할 결과가 너무 참혹하기 때문에 사용이 금지되었다는 거야. 그런데 백지안은 그런 최면을 내게 걸었어. 날 사랑한다면서 내가 뇌 손상을 입으면 어떻게 될지는 안중에도 없었던 거지. “ “그렇다면… 걔가 영식이에게도…?” 이주혁이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럴 필요가 있었겠냐? 영식이는 그냥 백지안이라면 죽고 못 사는데.” 하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백지안이 영식이랑 사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어쨌든 영식이는 지안이를 좋아하잖아. 하지만 백지안은 괜찮은 인간이 아니었어. 영식이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걔의 배경을 좋아하는 거였어. 백지안은 게다가 자신을 소중히 여길 줄도 모른다고.” “곽철규 말이야?” 하준이 눈썹을 치켜올렸다. “걔는 하는 말마다 다 거짓말이었어. 협박 때문에 곽철규랑 관계를 가졌다는 말을 전에는 믿었지만 이제는 안 믿어. 자기가 더 원해서 곽철규를 찾아갔을 거야. 전에 실종되었던 것도 납치범들에게 잡혀서라고 말했지만 실은 그 말도 이제 못 믿겠어.” 이주혁은 하준이 다음 말을 이어가기를 기다렸다. “당시에 같이 납치되었던 애들은 시신으로 발견되었는데 왜 걔만 아니었겠어? 전에는 백지안이 무슨 말을 해도 다 믿었지만 이제는 뭐 하나 믿을 수가 없게 되었어.” 하준이 추리를 이어 나갔다. “곽철규가 예전 사진으로 협박을 했다며 핑계를 댔었지만 사실 백지안이 경험이 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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