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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4화

마지막 말을 할 때 하준의 눈에서는 얼음 같은 냉기가 흘러나왔다. 이주혁은 하준이 이렇게나 원한을 가지고 누군가를 대하는 모습을 처음 봤다. 왜 갑자기 하준이 이 정도까지 백지안에게 원한을 품었는지 이해가 안 됐다. ‘지난번에 육민관 사건 때문인가? 하지만 그냥 의심스러웠다 뿐이지 지안이가 했다는 증거도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이야?” 이주혁이 물었다. “말하면 믿어줄 거야?” 하준이 자조적으로 웃었다. “영식이는 백지안 말만 듣고 내 말은 들을 생각도 안 해.” 이주혁이 미간을 찌푸렸다. “말해 봐. 영식이는 지금 지안이한테 너무 빠져서 지금 제정신이 좀 아니잖아.” “나도 전에 그랬었잖아.” 하준이 힘없이 웃으며 자기 머리를 가리켰다. “전에 백지안이 치료해 준다고 하면서 내게 최면을 걸었어. 어렸을 때 날 담당해 주셨었던 교수님께 들었어. Y국에 전해지던 고대 최면술이 있는데 프로그래밍하듯 사람의 기억과 감정을 자신이 원하는 내용만 집어넣어 가며 조작할 수 있대. 이제 내가 왜 3년 전에 갑자기 백지안과 사귀고 여름이와 이혼했는지 알겠지?” 이주혁은 흠칫했다. “너, 너무 예민한 거 아니냐? 그게 사실이라면 왜네가 아무 느낌이 없었겠어?” “그래. 그게 바로 이 최면술의 무서운 점이야. 전에 내가 여름이랑 패스트푸드점에 갔었다고 네가 그랬잖아? 내가 하석윤을 손봐주기까지 했다며? 동성에 가서 지훈이도 만나고 전에 일해주셨던 이모님도 만나면서 조사해 봤어.” “다른 사람들이 보았고 알고 있었던 것과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기억이 완전히 달라. 내 기억에는 여름이와 관련해서는 나쁜 것만 남아있어. 여름이가 내 배경을 보고 신분 상승을 위해 날 노렸다고 기억하고 있다고! 내 머릿속에 여름이는 아주 최악의 여자였어. 내가 사랑했었던 기억은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아.” 하준은 슬픈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난 나를 잘 알아.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더 이상 좋아하지 않게 되었더라도 내 아이를 가지고 있는데 그렇게 험하게 대했을 리가 없어. 당시 내 머릿속에는 온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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