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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3화

여름은 온 몸을 독사가 기어오르는 것 같았다. 악마의 모습으로 손을 휘두르던 양유진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그런데 오늘은 연인처럼 다정했다. “구치소에서 나왔나 보네요.” 여름이 냉랭하게 물었다. “네. 경찰에서도 제 사정을 딱하게 여겨줘서요. 그런데 이번 주에 내내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어요. 여름 씨 생각 많이 했어요….” 마지막 한 마디가 특히나 의미심장했다. “이런 우연이 있나? 나도 생각 많이 했는데.” 여름이 낮게 말했다. “그런데 얼굴을 보고 싶지는 않네요. 또 물 밑에서 무슨 수작을 부릴지, 혹시 또 손을 대지나 않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날은 내가 좀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하지만 그것도 다 내가 여름 씨를 너무 사랑해서 생긴 일이에요. 여름 씨는… 이혼 얘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양유진이 한숨을 쉬었다. “여름 씨가 녹음을 할지도 모르니까 전화로는 다 말을 못하겠네요.” 여름은 녹음을 하고 있었던 휴대폰을 잠깐 다시 들여다 보았다. 양유진의 교활함은 정말 너무나 빈틈이 없어서 물 한 방울 새지 않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니 이혼하고 싶은 건 아니겠죠?” 양유진이 웃었다. “우리 이렇게 엮여 있는 거 좋잖아요? 영원히 내 아내로 있다가 죽어도 양 씨 집안 사람이 되는 거예요.” 여름이 웃었다. “저기요, 그런 식으로 협박하지 마세요. 나한테는 안 먹히니까. 내가 증거를 들이밀면서 이혼 조건을 협상하려고 할까 봐 그러신가 본데. 뭐, 나도 처음에는 그러고 싶었어요. 그런데 양유진 씨의 파렴치함 때문에 마음을 바꿨죠. 연기 좋아하잖아요? 난 당신이 쓰고 있는 그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당신을 보게 될지가 더 궁금해졌어요.” 양유진의 호흡이 다소 거칠어졌다. “무슨 증거 말이죠? 내가 뭘 잘못한 게 있나요?” “네. 계속 그런 식으로 하시던지요. 내가 뭐 하나 알려줄게요. 당신은 날 전혀 몰라.” 여름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 차 안. 양유진이 음험한 얼굴로 끊긴 전화를 바라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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