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서하윤! 감히 나가기만 하며 다시 집에 들어오지 마!”
진라희는 놀란 표정으로 그냥 나가버리는 서하윤을 바라보며 화가 치밀어 관자놀이 주위의 핏줄이 쿵쿵거렸다.
오늘의 서하윤은 너무나도 이상했다!
“어떻게 감히! 여보 이제 어떻게?”
진라희는 화가 나서 눈이 빨개지고 초조하게 임진택을 바라보았다.
임진택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시선은 서하윤이 가는 방향으로 향했다.
서하윤이 뒤도 안 돌아보고 병원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자 얼굴이 차가워졌다.
“그년 돈이 없으니 멀리 못 갈 거야. 내일이면 고분고분하게 돌아와서 잘못을 시인할 것이니 그때 가서 다시 병원에 와서 채혈하자.”
“아이, 계집애 너무 말 안 들어! 내일 잘못을 시인하더라도 쉽게 용서해서는 안 돼. 더 이상 내버려둘 수 없어.”
진라희는 방금 전 잘못을 인정 안 하고 가버리는 서하윤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팠다.
“엄마 화내지 말아요. 몸 상해요. 언니가 어쩌면 저녁에 돌아올지도 몰라요.”
임수아의 눈에는 속셈이 담겨 있었다.
서하윤이 자기에게 헌혈을 하고 싶지 않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한다!
지금의 서하윤이 어떤 성질을 부렸느냐에 따라서 나중에 그만큼 비천해질 것이다!
이번이야말로 반드시 서하윤에게 누가 임씨 집안의 가장 소중한 사람인 것을 확실히 알게 해줄 것이다! 온 가족이 자기를 금이야 옥이야 하고 떠받들고 서하윤이 엄마 아빠의 친자식이라고 한들 뭐가 어때?
...
서하윤은 병원 밖으로 나가고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자마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의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가능한 빨리 이 결정을 내려야 했다.
“금주 할머니, 저 마음 바꿨어요. 할머니의 손자랑 결혼하는 거 동의할게요.”
휴대폰 너머로 그녀는 마치 최금주 할머니가 기뻐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본 듯 자연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전화를 끊고 그녀는 전생을 회상했다.
금주 할머니는 영자 할머니의 오랜 친구였었다. 다만 영자 할머니가 30여 년 전에 시골로 이사를 와서 양모인 강서진과 이웃이 되었었다. 영자 할머니는 줄곧 시골에서 혼자 사셨었다. 그녀는 영자 할머니가 너무 외로워 보여서 평소에 시간 날 때마다 영자 할머니를 만나러 갔었다. 영자 할머니도 그녀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셨다.
그 뒤로 그녀가 대학에 입학하고 시골을 떠났다. 한 번은 영자 할머니가 그녀가 다니는 대학에 와서 그녀를 만나러 오실 때 금주 할머니도 같이 데려오고 나서부터 그녀는 자주 금주 할머니와도 연락하며 지냈었다.
어느 날 갑자기, 금주 할머니는 차은우를 데리고 사전 예약을 해놓은 레스토랑에서 그녀를 만나러 오셔서 그녀와 차은우의 결혼을 주선하려고 했었다.
그날은 그녀가 처음으로 차은우를 만났다. 단정한 고급 양복을 차려입고 사람들 속에서 서 있는 그는 유난히 눈에 띄었었다. 당시 그녀는 차은우를 자세히 볼 엄두를 못 냈었다. 그는 그윽하고 깊은 눈매를 가지고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은은한 냉기가 서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할머니 말데로 하겠어요라고 말하자 금주 할머니는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때 당시 그녀의 마음속에는 강민준뿐이어서 금주 할머니께 남자친구가 있다고 얘기를 했더니 할머니는 많이 아쉬워했었다.
다음날 차은우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금주 할머니가 많이 아프셔서 3년이란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고 이것이 할머니의 유일한 소원이라고 그녀가 결혼을 승낙하면 어떤 조건을 제시해도 지나치지 않으면 그는 전부 들어준다고 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했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녀는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거액의 수술비가 필요했었다. 그 당시 임진택과 진라희는 그녀를 포기하려고 했었고, 하반신 절단을 한 그녀는 그들에게는 부담에 불과했었다.
금주 할머니가 때마침 그녀의 사정을 알고 되었고 수술비와 추후 재활치료에 관한 모든 비용을 지불해 주셔었다.
그녀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진라희는 금주 할머니 앞에서 슬프게 울면서 강민준들과 함께 할머니한테 앞으로 그녀를 잘 대해줄 것이라고 연기를 하였다.
금주 할머니는 그것을 믿고 차은우더러 임진택을 도와서 회사가 닥친 난관을 해결해달라고 부탁했었다.
그리고 나서 금주 할머니가 그녀를 보러 오실 때, 강민준과 임수아 그들한테 거절당했다.
그녀가 죽고 나서 영혼은 잠시 머물렀다.
그녀는 금주 할머니가 그녀를 만나러 오셔서 그녀의 시신을 끌어안고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래서 이번 생에 돌아와서 그녀는 복수뿐만 아니라 은혜도 갚아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환생한 날은 자기가 차은우를 거절한 다음 날이었다.
그녀는 차은우가 자기를 이랬다저랬다 하면서 이상하게 바라볼까 봐 걱정했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그녀는 빠른 발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을 향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휴대폰 벨소리가 빠르게 울렸다.
전화를 받자 건너편에서 차은우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임하윤 씨, 어제 방금 거절했는데 오늘에 와서 번복하는 이유가 뭐예요?”
서하윤의 시선은 정류장 표지판에 머물며 말했다.
“어제 차은우 씨가 제시한 조건이 마음에 들어서요.”
상대편 쪽에서 잠시 침묵하더니 다시금 차은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금전과 같은 거리감 있고 사늘한 목소리이었다.
“오후 3시 반 구청에서 만나.”
...
청하 그룹 빌딩에서.
전화를 끊고 차은우는 장실장에게 계속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임하윤 씨는 반년 전에 임씨 집안에 의해 되찾았고 어릴 적부터 양부모과 같이 줄곧 시골에서 살았습니다. 고등학교 때 남자친구인 강민준을 만나게 되었고 두 사람은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지내왔으며 각기 다른 대학에 다녔습니다. 그 외의 다른것은 조사 중입니다.”
장실장은 그가 조사한 서하윤에 관한 자료를 간단하게 보고하였다.
책상 위에는 서하윤의 사진이 몇장 놓여져 있었다.
차은우는 사진 속의 서하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빛나고 멋있는 남자아이와 함께 포옹하면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고 두 사람 다 청순하고 순수하지만 그녀의 아름다운 생김새를 감출 수 없었다.
“참, 반 년 동안 임하윤 씨는 줄곧 임씨 집안의 양녀에게 헌혈해 왔습니다.”
장실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차은우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시간을 확인했다.
“가서 3년간 비공개 결혼하는 계약서를 작성해 와.”
장실장은 좀 의외했다. 회장님이 곧 결혼하시는 건가? 약혼자가 있는 서하윤 씨랑? 회장님께서 서하윤 씨가 다른 의도를 품을 것에 두렵지 않은가?
오후 2시 55분 구청 앞에서.
서하윤은 버스랑 지하철 타고 시간 맞춰서 5분 전에 도착했다.
그녀는 가방에 등본을 챙기고 오늘 헌혈하고 나서 임진택의 호적에서 나가려는 참이었다.
서하윤의 긴 눈썹 아래의 눈동자에는 매서운 냉기가 돌았다.
이번 생에 임진택의 호적에는 절대로 그녀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5분간 기다렸더니 차은우가 도착했다. 고개를 들자 차은우의 시선과 부딪쳤다. 그는 눈매는 차가웠고 기품은 고귀하고 차분하며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이 날카로워서 마치 그녀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서하윤은 예상했다, 자기였어도 왜 말을 바꿨는지 궁금할 것이다.
“혼인신고 하기 전 먼저 이 계약서에 서명해.”
차은우는 재빨리 시선을 거두고 서류 두 개를 그녀에게 건넸다.
서하윤은 재빨리 한 번 훑어보았다. 그 위에는 3년 뒤 그들은 이혼할 것이고 3년간은 반드시 결혼 사실을 숨겨야 했다. 금주 할머니 앞에서만 부부관계를 밝히는 것 외에 외부 사람들 앞에서는 발설해서는 안 된다고 명백하게 적혀있었다.
“이의 없어요. 당신의 계약에 동의해요. 3년 뒤에 이혼을 하고 절대로 매달리지 않을 것이에요.”
서하윤이 서명하려고 하자 차은우가 그녀를 말렸다.
“서명만 하면 후회하는 여지가 없는데 잘 고려한 건가요?”
서하윤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당신의 조건은 무엇인가요?”
차은우가 물었다.
서하윤은 그가 무엇을 말하는 것을 깨닫고 아무 조건이 없다고 말할려고 하다가 다시 말을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