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1장
기모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기묵비는 웃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횡단보도 옆 나무 아래 서서 차들이 즐비한 거리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말할 수 없는 서글픔과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초요가 떠난 후 난 이 세상에 별 미련이 없어. 내가 애초에 길을 잘못 들어서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초요는 아마 죽지 않았을 거야.”
기묵비는 죄책감에 눈을 내리깔았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그 속에 감춰져 있는 작은 유리병을 움켜쥐었다.
그 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들어 있다.
“할 일도 다 했고 흑강당도 와해되었어. 강어도 죽고, 경연도 잡혔으니 나도 이제 자수해야지.”
이 말이 떨어지자 기묵비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햇빛이 짙푸른 나뭇잎과 가지들을 비집고 잘생긴 기묵비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웃고 있었지만 웃음에는 쓸쓸함이 가득 묻어 있었다.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 처음에 소만리를 그렇게 슬프게 했는데도 그녀가 널 용서하고 다시 너희들은 함께 하게 되었지. 그런데 나와 초요에겐 왜 다시 시작할 기회가 없었는지.”
“나중에 깨달았어. 하느님에게 불공평하다고 탓하지 말아야 하는구나. 모두 내 잘못이었어. 자업자득인 셈이지.”
기묵비는 돌아서서 눈썹을 살짝 일그러뜨리고 서 있는 기모진을 바라보았다.
“모진아, 소만리와 네가 남은 생 후회 없이 행복하길 바래. 이번에는 숙부가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기묵비는 말을 마치자마자 횡단보도에 발을 올리며 길을 건넜다.
한 치의 망설임도 후회도 느껴지지 않는 기묵비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모진은 왠지 마음이 먹먹해졌다.
그는 기묵비가 진심으로 그와 소만리의 행복을 빈다는 걸 알고 있지만 그가 이렇게 가면 왠지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초요에 대한 기묵비의 사랑과 애틋함이 얼마나 깊은지도 느꼈다.
그는 갑자기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소만리의 말이 맞다는 것도 인정하게 되었다.
그들 기 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이상한 습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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