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상상도 못 한 재회
이가인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에 진지하게 사표를 낼지에 대해 고민했다.
‘설마 어젯밤에 내가 먼저 자기 손을 잡고 호텔로 끌고 간 걸 얘기하지는 않겠지...?’
“며칠 전 종사로에서 교통사고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다가가 도움을 주신 분 맞죠?”
다행히 어젯밤 얘기는 아니었지만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이가인은 그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장대호가 끼어들며 물었다.
“구급차 출동 지원에 우리 병원은 없는 거로 아는데?”
“저분은 그저 우연히 길을 가던 차에 도움을 준 것뿐이었어요. 아주 능숙하게 대처를 하셔서 혹시 병원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아닐까 했는데 역시 제 추측이 맞았네요.”
정승진의 말에 장대호가 허허 웃었다.
“그것참 우연이군.”
간호과장도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우리 이가인 간호사 능력이야 다들 인정하고 있죠. 그리고 가인 씨는 늘 그렇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모른 척 지나치지 못해요.”
“앞으로가 기대되는 친구군요.”
장대호가 이가인에게 뿌듯하다는 미소를 건넸다.
정형외과에는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워낙 셀 수도 없이 많았기에 자기 이름 한번 각인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이름이 한번 거론되는 건 상당히 귀한 기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름이 거론된 사람은 그에 따른 다른 이들의 질투도 감당해야만 했다.
이가인은 같은 연차 간호사들의 불타는 눈빛을 애써 모른 척하며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그저 지나가다 우연히 사고를 목격해서 도움을 준 것뿐입니다.”
그러자 정승진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리 지나가다가 우연히 그 상황을 목격한 것뿐이라 해도 한달음에 달려가 도와주는 사람은 몇 없어요. 그리고 이런 훌륭한 일은 원래 널리 널리 알려야 하는 겁니다.”
이가인은 그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심지어 그녀는 그의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우연히 하룻밤을 보냈던 남자를 바로 다음 날 직장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어느새 빨개진 이가인의 얼굴을 보며 그녀가 단지 사람들 많은 자리에서 칭찬을 받아 부끄러워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고현우 역시 마찬가지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가인과 함께 일한 지도 어언 6년, 그녀가 남자 때문에 얼굴을 붉히는 여자가 아니라는 건 이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이가인이 얼굴을 붉히는 순간은 사적인 공간에서 그와 단둘이 있을 때뿐이었다.
“이렇게 여러분들을 부른 건 정승진 교수를 소개해주기 위함이었으니 이제 그만 다들 일 보러 가보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당부 한마디 하자면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지만 시간 나면 틈틈이 휴식도 좀 하세요. 우리 의료진들은 몸이 생명이니까요. 자, 그럼 해산.”
이가인은 장대호의 말이 끝나자마자 얼른 이 자리를 벗어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장대호가 간호과장에게 뭐라고 얘기하더니 그걸 들은 간호과장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가인 씨, 잠깐 이리로 좀 와 봐요.”
“네, 선생님.”
이가인이 다시 발걸음을 돌려 간호과장 쪽으로 걸어갔다.
“가인 씨, 정 교수님 병동 안내 좀 부탁해요.”
그 말에 흠칫한 건 이가인 뿐만이 아니었다. 회의실을 나가던 의사들과 간호사들도 멈칫하며 발걸음을 멈췄다.
이가인은 마음 같아서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정승진이 웃으며 부탁하는 바람에 수락할 수밖에 없었다.
“번거롭겠지만 부탁할게요.”
“번거롭긴요.”
발걸음을 멈췄던 사람들이 다시 회의실 밖으로 나가고 장대호와 간호과장도 밖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고현우가 갑자기 이가인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왜 갑자기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지...?’
답지 않은 그의 행동에 이가인이 의문을 품던 그때 고현우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오랜만이야.”
그러자 옆에 있던 정승진이 웃으며 답했다.
“오랜만이야. 아까는 수술 때문에 미처 인사도 못 했네.”
고현우가 인사를 건넨 건 정승진이었다.
“왜 갑자기 돌아온 거야?”
“세희 선배가 부르는데 내가 어떻게 안 올 수가 있겠어.”
오진 대학교 졸업생이라면 송세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꼭 오진대 졸업생이 아니라도 송세희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현 오진시 시장의 따님이자 이곳 혜임 병원의 이사장이었으니까.
그보다 이가인이 의아했던 건 고현우와 정승진이 저로 아는 사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대화를 들어보니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 같았다.
“저... 그럼 두 분 대화 나누세요. 병동 안내는 이따 다시...”
“아, 그럴 필요 없어요. 지금 가죠.”
정승진이 그녀의 말을 끊고 이내 다시 고현우를 향해 말했다.
“다음에 다시 얘기해.”
그러고는 이가인과 앞으로 걸어가며 그녀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미안해요. 혹시 내가 가인 씨 휴식 시간을 다 빼앗은 건가요?”
이가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내가 아직 이곳에 친구가 없어서 교수님도 그걸 알고 가인 씨한테 부탁한 걸 거예요.”
이가인은 지금 이 대화를 고현우가 듣고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도 그럴 게 이제 막 발걸음을 뗀 지 3초도 안 됐으니까.
“가인 씨가 이곳에서의 내 첫 친구가 되어줄래요?”
“...네, 그럴게요.”
이가인은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정승진에게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