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나는 인사팀 담당자를 만나러 갔다. 인사팀 담당자는 세련된 옷차림에 부드러운 미소를 띤 중년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가 자판기에서 인쇄해 온 이력서를 보고 약간 놀란 기색을 보였지만,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아린 씨, 테니스 실력이 NTRP 3.0 수준이라고 들었어요.”
그녀의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저희 클럽 코치님과 한 경기 해볼 수 있을까요?”
“물론 가능합니다.”
인사팀 담당자는 미소를 지으며 직접 나를 라커룸으로 안내했다.
“아린 씨, 먼저 테니스 웨어로 갈아입으세요. 근무복은 맞춤 제작해야 해서, 3~5일 정도 걸릴 거예요.”
“네.”
흰색 반팔 상의와 같은 색의 테니스 스커트, 그리고 무릎 보호대와 손목 보호대까지 세트로 갖춰져 있었다.
인사팀 담당자가 탈의실 밖에서 말을 걸었다.
“제 이름은 호현주예요. 그냥 현주 언니라고 불러도 돼요. 아린 씨, 방금 드린 운동복은 새 제품이에요. 다만 운동화는 여분이 없어서 죄송하네요...”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고나고자, 호현주가 순간 말을 멈추고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오늘 마침 운동화를 신고 왔거든요.”
호현주는 목을 가다듬으며 얼굴에 스친 놀라움을 숨겼다.
“잘 어울리네요. 정말 예뻐요.”
“고맙습니다.”
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여기서 일한 지 7~8년 됐는데, 이렇게 예쁜 아가씨는 처음 봐요. 너무 부담스럽게 들리진 않았죠? 자, 가요. 코치님이 기다리고 계세요.”
나는 그녀를 따라 테니스 코트로 향했다.
중년 남성 코치가 이미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보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현주 씨, 나보고 이 아가씨랑 경기하라고요? 고객 아니에요?”
“고객이 아니라 신규 직원이에요. 그래서 주 코치님이 테스트해 주셔야 합니다.”
“아가씨, 괜찮겠어요? 나는 한번 시작하면 힘 조절을 잘 못하는데.”
주인혁, 전 국가대표 테니스팀 코치는 워낙 유명해서 나도 알고 있었다.
“보험 들었겠죠?”
나는 테니스 라켓의 무게를 가늠하며 말했다.
“코치님, 시작하시죠.”
처음에는 힘을 조절하던 주인혁 코치는 점점 진지해졌고 공의 속도와 힘도 점점 강해졌다.
나름 집중해서 경기에 임했지만, 결국 패배했다.
주인혁이 땀을 닦으며 웃었다.
“아가씨, 대단한 실력인데요?”
그때, 문 앞에서 누군가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호현주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 사람과 쉴 새 없이 대화를 나눴다. 호현주를 굽신거리게 하는 상대라면, 클럽의 오너이거나 VVIP 회원일 가능성이 높았다.
나는 그의 지속적인 시선을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경기가 끝난 후, 호현주는 감탄하며 말했다.
“아린 씨, 실력 대단한데요? 3.0 이상일 수도 있겠어요.”
그녀는 이내 본론을 꺼냈다.
“사실 서빙 업무는 편하지만 급여가 낮아요. 한 달 수습 기간 100만 원 정도예요. 그래서 말인데... 이 정도 실력이라면 스파링 파트너로 일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내가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다급히 덧붙였다.
“스파링 파트너는 근무 강도가 높지 않고, 하루 일하면 하루 쉬는 방식이에요. 대학생이기 때문에 학업에도 방해되지 않을 거예요. 더군다나 예약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유동적이고, 한 달 기본급 200만 원에 수습 기간에도 추가 수당이 붙어요.”
나는 잠시 생각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현주 언니, 저 바로 시작할 수 있어요.”
호현주는 안도하며 활짝 웃었다.
“언제 출근할 수 있어요? 빨리 시작할수록 좋잖아요.”
그녀는 덧붙였다.
“오해하지 말아요. 우리 클럽은 건전하게 운영돼요. 단지 아린 씨의 실력이 놀라워서 그래요. 여성 고객들은 여자와 경기하는 걸 선호하고, 남성 고객들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거든요.”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레부터 가능합니다.”
“좋아요! 그럼 이 운동복은 가져가세요. 손목 보호에도 신경 쓰고요. 그리고 연락처 추가해요. 카톡으로 언제든 문의해도 돼요.”
연락처를 교환한 후 클럽을 나섰다.
이때, 출구 근처에서 통화 중인 소리가 들렸다.
“도현이 형, 회의 중이야? 아, 끝났구나. 방금 엄청난 경기를 봤어. 주 코치님이랑 처음 보는 미녀분이 대결하는 거였어.”
‘도현이 형’이라는 말에 나는 걸음을 멈췄다.
코너에서 통화를 하는 남성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아니야, 나 어린 여자애한테 관심 없어. 하지만 진짜 예쁘긴 하더라. 다리도 늘씬하고 허리도 가늘고, 게다가 실력도 꽤 좋아. 주 코치님이 진지하게 경기한 거 처음 봤어. 그 애가 새로 들어온 스파링 파트너래. 형, 예약할래?”
“진짜 안 할 거야? 후회하지 마... 좋아, 형은 관심 없다니 나라도 예약할래.”
그가 전화를 끊자, 나는 곧장 여자 화장실로 몸을 숨겼다.
그의 정체는 확실치 않았지만, 강도현과 가까운 사람이라는 건 분명했다.
...
지하철역에서 나온 후로는 조금 전에 엿들은 통화를 곱씹으며, 내가 활용할 수 있는 정보가 있는지 생각에 잠겼다.
고개를 들었을 때, 어느새 학교 정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신호등이 빨간불로 바뀌어 멈춰 섰지만, 차량은 여전히 경적을 울려댔다.
그 순간, 날카로운 경적에 온몸이 굳어졌다. 전생의 죽음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랐다.
타마이, 가드레일, 절벽, 부러진 척추와 팔, 숨을 몰아쉬며 애타게 기다리던 구조대, 점점 사라져 가던 체온...
온몸이 휘청거리던 그때, 누군가 내 손목을 세게 잡아당겼다.
“아...”
나는 통증에 신음을 흘리며 과거의 기억에서 빠져나왔다.
강재욱이 내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나를 힘껏 끌어당겨 도로 한쪽으로 밀어붙였다.
얼굴은 잔뜩 어두워져 있었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내 온몸을 훑었다.
“흰 지팡이는 어디 갔어?”
여전히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지만, 강재욱은 손을 뻗어 내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고개를 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