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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거의 열 잔정도 마셨을 때 나는 이미 취한 상태였다. 손바닥으로 턱을 괸 채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왔다. “겨우 한 병 좀 넘는데 벌써 취했어요?” 그녀의 친구는 비웃으며 말했다. “이러면서 남자는 어떻게 꼬시겠어요?” 심은영이 입을 열었다. “이제부터 한 잔에 20만 원이에요.” 나는 겨우 버티는 척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녀는 다시 한 잔을 따라줬고 전보다 양이 적었다. 옆에 있던 친구는 피식 비웃음을 흘렸다. 나는 잔을 들고 원샷했다. 더 이상 아무런 피드백도 줄 수 없었다. 속이 엄청 쓰려오며 약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의 친구는 급히 나를 잡으며 말했다.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도망가려는 거예요? 아직 네 잔이나 남았는데 다 마시면 보내줄게요.” 그들은 아직도 내가 엄준호를 꼬셨다고 의심하고 있었다. 심은영이 물었다. “속이 쓰려요?” “은영아, 넌 너무 착해서 문제야. 엄 대표님한테 불순한 마음을 품은 사람을 뭐 하러 걱정하는 거야?”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두 명의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엄준호였다. “이게 무슨 짓이지?” 심은영의 친구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심은영은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걱정돼?” 나는 휘청이며 뒤로 넘어질 뻔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품에 안았다. 코끝에서 익숙한 우디 향과 시트러스 향이 풍겨왔다. “도현 오빠...?” “그래, 나야.” 순간, 나는 어지러워졌다. 마치 구름 속을 떠다니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안정감도 느껴졌다. 옅은 신음소리를 흘리며 환한 불빛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어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디 아파?” 나는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움직이지 말아줘요. 움직이면 아파요.” 그동안 강도현은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아마 해외에서 비즈니스 문제로 돌아오지 못한 것 같았다. 아까 심은영의 친구가 말했듯이 엄준호가 공항에 갔다고 했으니 강도현을 마중하러 간 게 분명했다. 나는 머리가 점점 혼란스러워졌지만 여전히 그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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