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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장

가로수 아래에서 한참을 걷다 보니 풀 내음이 몸과 마음을 차분하게 해주었다. “오늘 수업 있어?” 나민준이 뒤에서 따라오며 말을 걸었다. “내가 맛있는 거 사줄게.” 요즘 들어 나민준과의 관계가 미묘해졌다. 친구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애매한 사이었다. 지난 생에서 그가 내게 준 상처는 아직도 생생했지만, 이번 생에서는 그가 나를 돕고 있었다. “선배랑 밥 먹기 싫어요.” 나는 멈춰서 그가 내 앞에 다가오길 기다렸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 고서준 좋아하지 않아요. 선배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까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겪든 모르는 척해 줘요.” 나는 말을 끝내고는 그의 반응을 신경 쓰지 않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의상 디자인과 수업은 딱히 빡빡하지 않았고, 수업 대부분이 교실 밖에서 진행됐다. 오늘 오전엔 천을 만드는 공장에 가서 기본 제작 과정을 배웠고 점심 무렵이 되어서야 학교로 돌아왔다. 학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점심을 건너뛰고 기숙사로 바로 향했다. 그때 정서현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서현은 우리보다 훈련 기간이 더 길어 아직도 제식 훈련 중이었다. 그녀는 짬을 내서 내게 전화를 걸어서는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수아야, 나도 너처럼 열심히 해서 경성대 갈 걸 그랬어. 진영시 도대체 뭐야? 훈련만 거의 한 달을 하고 있어. 나 완전 새까매졌다고! 무슨 깜둥이가 된 것 같아. 나 이제 진짜 못생겨졌어!” 나는 정서현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나는 기숙사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고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말했다. “사진 한 장 보내 봐.”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화가 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 날 안쓰러워하지는 못할망정 내 못생긴 사진을 보고 싶다니!” “이젠 내가 네 소중한 보물이 아닌 거지? 너에게 다른 보물이 생겨서 이제 날 사랑하지 않는 거구나. 흑흑흑...” “말도 안 돼.” 나는 의자에 앉아 혹시 패션 회사에서 답장이 왔나 싶어 컴퓨터를 켜면서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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