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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2장

그러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나민준은 그저 내가 먼저 다가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을 뿐이고 그는 내가 다가올 때마다 나에게 다정한 모습을 보이며 내게 신뢰를 쌓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뒤에서 나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다. 내 얘기가 끝이 난 후 나민준은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고생했어. 하지만 이제는 걱정하지 마.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수아 씨 편이니까.” 나는 그 말에 고맙다는 표정을 지어주었다. 내가 그의 말에 감동했다고 생각할 수 있게. “답답하고 우울했는데 이렇게 털어놓고 나니 한결 편해졌어요.” 나는 일부러 속이 시원한 표정을 지으며 그가 진실을 털어놓기를, 모든 걸 털어놓기를 기다렸다. 성인들의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와 달리 알고 있는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다 입 밖으로 내지는 않는다. 말을 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 있기 때문이다. 차량이 천천히 시내에 진입하고 나도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에게 남겨진 시간은 이제 얼마 없다. “우리 친구 맞죠? 선배는 내 친구로서 나한테 뭐 할 말 없어요?” 나민준은 정말 이대로 나에게 계속해서 모든 걸 다 숨길 생각인 건가? 내가 준 증거를 고명준에게 준 것도, 사실은 고명준의 지시를 받고 내 옆에 있었다는 것도 다 숨길 생각인 건가? 고명준은 고서준에게서 나를 떨어트리기 위해 거금을 들여 나민준을 내 곁에 있게 만들었다. 그래야만 내가 고서준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눈을 돌릴 수 있으니까. 나는 진실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나민준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에 나민준은 고개를 살짝 돌리더니 내 시선을 피했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마음이 상당히 복잡한 듯 보였다. 그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였다가 결국에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차량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고 도시의 화려한 불빛들이 하나둘 차량 위로 떨어졌다. 나는 인내심이 한계에 달했고 더 이상은 그런 척할 생각도 입을 꾹 닫고 있을 생각도 없어졌다. “나한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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