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다신 보지 말아요
박지환은 그제서야 민서희의 의도를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눈앞에서 사라지겠다는 말은 믿을 수 없었다.
민서희는 여태껏 자신에게 그토록 집착했고 아무리 뭐라고 해도 떼어낼 수 없었는데 지금 자신의 아이까지 임신했으니 순순히 떠날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기꺼이 서아의 죄를 대신 뒤집어 쓰겠다니 더 이상 전처럼 하찮은 태도로 말하지 않았다.
"걱정하지 마. 서아 대신 죄값을 치르겠다는데 죽게 내버려둘 수는 없지. 길어봤자 5개월을 넘진 않을 거야. 방법 찾아내서 출소할 수 있게 해줄게. 어머니는 사람 보내서 다시 데리고 나올게."
전화 건너편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박지환은 그녀에게 단 한 번도 이렇게 인내심을 가지고 얘기한 적이 없었다. 그로서는 이미 최선을 다한 것이었다.
그는 재촉하며 말했다. "당장 경찰서에 가서 자수하도록 해. 다른 일 없으면 먼저 끊을게. 아직 회의 중이라."
"박지환 씨."
전화를 끊기 전 박지환은 슬픔에 잠긴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아요."
박지환은 잠깐 멈칫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전화는 이미 끊어졌다. 그녀의 단호한 한 마디에 그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착잡해졌다.
다시는 보지 말자니? 무슨 뜻인 거지. 윤서아 대신 죄를 뒤집어 쓰라고 했다고 떠나기로 결심한 건가?
아니지. 아무 명분 없었어도 2년 동안 아무 원망도 없이 그의 곁에 있었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마음이 사라질 리는 없을 것이다. 어쩌면 또 무슨 꿍꿍이를 벌이고 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정말로 포기할 생각이라면 오히려 잘 된 것이다. 박지환이 늘 바랬던 것이기도 했다!
"대표님."
곁에 있던 한경은 회의를 계속 해야 한다고 귀뜸해 주었고 박지환은 이상한 감정을 떨쳐내고 다시 회의실로 들어갔다.
...
통화를 마친 후 민서희는 망설임없이 택시를 잡아 자수하러 경찰서로 향했다.
"전 윤서아입니다. 오늘 뺑소니 사고 낸 범인입니다. 책임지는 게 두려워 사고치고 도망쳤습니다. 지금은 정신 똑바로 차린 채로 자수하러 왔습니다. 모든 잘못 인정하니 저를 체포해 주세요."
그녀의 눈빛은 텅 비어있었고 고개를 숙이고 두 손을 들었다. 유가족들은 미친 듯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그녀를 욕하고 때리며 자신의 딸을 돌려달라고. 민서희더러 죽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온몸에 상처로 가득한 민서희는 뱃속에 있는 아이가 다치지 않도록 배를 감싸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경찰들이 유가족들을 말렸고. 뉴스로도 이미 이 사실을 보도하여 소란 속에 민서희는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들어가."
눅눅하고 비좁은 복도에 철문이 열리더니 민서희를 그 안으로 밀어넣었다. 민서희는 서둘러 앞으로 걸어갔고 고개를 들어 방 안에 있는 네 명의 여자들을 보았다. 모두 덩치가 어마어마했고 그녀를 보는 시선에 불만과 악의로 가득했다.
교도관이 문을 닫고 떠난 후 여자들은 모두 민서희 앞으로 몰려와 그녀를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이 여자였어. 난 또 얼마나 예쁜 줄 알았더니 이런 몰골일 줄은 생각도 못했네. 저 죽을 것 같은 모양새 좀 봐. 어쩐지 박 대표님이 역겨워하시더라니."
민서희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며 물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교도관님 부를 거예요!"
그때 어떤 손이 덮치더니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그녀의 머리를 벽에 세게 내리쳤고. 몇 번 부딪친 후 민서희는 더 이상 저항할 힘이 없었고 눈앞이 까맣게 변했다.
"고발하는 법도 배웠어? 역시 천하디 천한 여자야!" 이 방안의 두목은 민서희에게 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었다. "내가 말하는데. 교도관은 물론 부처님. 하나님께 일러도 아무 소용 없을 줄 알아! 들었니? 넌 그저 우리를 따르는 개일 뿐이라고. 어서 엎드려 개 짖는 소리 내 봐!"
다른 사람들은 이따라 소리쳤다. "어서 무릎 꿇고 개 짖는 흉내 내 봐!"
민서희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절대——"
못한다는 말을 내뱉기도 전에 사람들은 그녀의 무릎을 발로 차서 무릎 꿇게 만들었고 그녀의 머리를 발로 짓밝으며 땅에 엎드려 일어나지 못하게 하였다. 새벽에도 침대에 눕지 못하게 하였고 벽 구석에 기댄 채 웅크려 잘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교도관에게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한 적이 있지만 결국 교도관으로부터 무시를 당했고 같은 방에 있는 여자들에게 더 심하게 괴롭힘을 당할 뿐이었다.
그녀는 눈물속에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유일한 희망은 바로 뱃속의 아이었다. 그리고 박지환이 그녀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는 5개월 후에 감옥에서 석방시켜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감옥에서 나가면 어머니와 함께 이 도시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날짜를 세어가며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뱃속의 아이와 대화를 나누고 있던 그 때 마침 방문이 열렸고 몇 명 여자들이 돌아왔고 모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지으며 민서희의 배를 노려보고 있었다.
"너 혹시 임신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