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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이혼 합의서   

민서희는 갑자기 손등에 생긴 물집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데인 것보다 마음의 고통이 훨씬 컸다.   윤서아의 투덜거림에 박지환은 몹시 그녀를 걱정했다. 알고보니 그는 여자가 징징대는 걸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신을 싫어했던 것이다.   "그런 거 아니에요..." 민서희는 힘겹게 몸을 겨누며 뜨거운 물에 데여 물집이 잔뜩 부어오른 손등을 박지환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이것 보세요. 뜨거운 물이 다 제 손에 쏟아졌다고요......"   "당장 꺼져!" 박지환은 다친 그녀의 손등에 차갑게 손을 휘두르며 말했다.   쓰읍!   민서희는 심호흡을 했다. 고통으로 인해 지금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다.   박지환은 그녀가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무심하게 말했다. "아직 변명거리가 더 남았어? 네 손등에 쏟아진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 서아 다치기라도 하면 백 번 죽어도 모자랄 테니까!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민서희는 떠나기 전 윤서아의 득의양양한 표정을 보았다.   "됐어요. 지환 씨. 서희 씨도 당신 사랑해서 그런 거잖아요. 두 사람도 2년 동안 감정이 생겼을 텐데 저 때문에 싸우지 마세요."   "감정이라고?" 박지환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 저 여자랑 아무 감정도 없어. 이젠 당신도 깨어났으니 저 여자도 알아서 꺼져야지. 본가에서 우리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왜 저 여자랑 결혼해서 가짜 사모님까지 시켰겠어."   문이 닫힌 후 그 다음의 대화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심장이 아팠고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헌혈로 인한 어지러움과 속쓰림은 더욱 강하게 느껴졌다. 힘겨운 발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얼굴에는 눈물로 가득했다.   잠시 후 1층에 도착한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었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박지환이 3층에서 내려와 서류를 던졌다.   "싸인해."   민서희는 서류에 써져있는 이혼 협의서라는 다섯 글자를 보고 멈칫하다 고개를 들었다. "오늘... 이혼 안 할 거라고 했잖아요."   박지환의 귀찮은 표정은 이미 극에 달할 지경이었다. "이혼 안하면? 네가 서아 계속 다치게 하는 걸 두고 보라고? 네가 이곳에서 빨리 사라져야 서아랑 다시 시작할 수 있어."   손등은 여전히 고통으로 인해 떨림을 멈출 수 없었다. 민서희는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대체 누가 누구를 다치게 하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누가 다쳤든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혼 합의서를 들고 조항들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박지환은 나름 두둑히 챙겨주었다. 그는 그녀에게 다시는 한성에 돌아오지 않는 조건으로 20억과 별장 한 채를 주었다.   "좋아요. 싸인하죠." 민서희는 합의서를 다 보고는 고개를 들어 박지환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제게도 조건이 하나 있어요."   그녀는 두 손으로 배를 움켜쥐며 단호하게 말했다. "전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20억도 별장도 다 가져가세요! 제 뱃속의 아이만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게 해주세요. 지환 씨, 이 조건 하나만 허락해준다면 당장 싸인하고 사라질게요!"   박지환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서희, 아직도 헛된 욕심을 버리지 못한 거야?"   민서희는 쓴 미소를 지었다. 헛된 욕심이 아니라 그녀가 떠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서라도 뱃속의 아이를 지키려 했다.   "당신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이 부탁만 들어준다면 당장 싸인하고 떠날 거예요. 20년 안에 돌아오는 일은 없을 거예요. 근데 굳이 이 아이를 지워야겠다면 전 절대 싸인하지 않을 거예요. 뿐만 아니라 본가에 가서 제가 윤서아가 아닌 사실을 밝힐 거예요."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박지환은 힘껏 민서희의 목을 조르며 화를 냈다. "민서희, 지금 나를 협박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가슴에 피가 흐르고 있는 듯한 고통에 민서희는 두 눈을 감고 얘기했다. "이 아이를 꼭 낳을 거라는 제 결심을 당신이 이해해 주길 바라는 것 뿐이에요."   "대단하군! 대단해!" 박지환은 손을 놓았고 역겨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 아이는 건들지 않을게. 하지만. 나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너와 네 어머니를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죽는 것보다도 더 고통스럽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는 싸인한 후 합의서를 민서희의 얼굴에 던졌다. 민서희는 계약서를 주어들고 손등이 너무 아파 잠깐 멈칫했다.   "왜?" 박지환은 경멸하는 어조로 물었다. "다른 핑계라도 대려고?"   "아니요."   민서희는 고개를 숙이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견디며 깔끔하게 자신의 이름을 서명했다.   그제서야 박지환은 그녀의 손등에 터져버린 물집들을 보았고 방금 그녀가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잠깐의 동정도 곧 사라졌고 그녀가 상처를 입은 것은 모두 자처한 것이라 여겼다.   "오늘 당장 짐 챙겨서 떠나! 한경을 통해 비행기 타는 것까지 확인할 거니까 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말고!"   민서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지환은 합의서를 들고 바로 한경을 찾아 처리하라고 명했다.   그가 얼마나 이혼하고 싶은지 얼굴에 명백히 적혀있었고 민서희는 허탈하게 웃으며 윗층으로 올라가 자신의 짐을 정리했다.   정리한다고 하지만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은 그녀는 사실 별로 정리할 짐도 없었다. 자신의 어리석은 사랑만을 따라 들어온 그녀는 챙길 짐도 한 손가락에 꼽힐 지경이었다.   여기저기 뒤적거리다 결국 캐리어에 갈아입던 옷 두 벌만 챙기고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려던 찰나,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아마 윤서아에게 수혈할 때 떨어진 것 같았다.   그녀는 캐리어를 한 켠에 두고 3층에 휴대폰을 가지러 올라갔다. 방 문에 이르렀을 때 윤서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박지환이 어떻게 저 여자를 찾았는지 모르겠어요. 2년 동안 아무런 이상한 점도 발견 못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제가 6년 전에 성형수술 한 사실 다 들킬 뻔 했잖아요!"   문을 두드리려던 민서희의 손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성형이라고? 윤서아가 성형을 했었다고?   방 안의 말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그래요. 이미 최선을 다해 이곳을 떠나게 하고 있어요. 6년 전 화재속에서 그를 구한 사람이 제가 아니라 민서희라는 사실을 절대 지환 씨한테 들켜서는 안돼요. 그렇지 않으면 지환 씨 성격 상 절대 절 가만 두지 않을 거예요!"   "저 여기까지 오기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그때 화재 속에서 구출되었을 때 지환 씨가 민서희의 손을 꼭 붙잡고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망설임없이 바로 성형수술을 해버렸죠. 지환 씨는 제가 자신을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제 외모까지 버리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제 정말 마지막 한 걸음만 남았어요. 절대 민서희에게 이 모든 걸 빼앗길 순 없어요! 당신들도 제 시간 낭비하지 말고 돈이 필요하면 지금 당장 민서희 해결해 주세요! 지금 그 여자. 지환 씨의 아이까지 임신하고 있어서 이대로 한성에서 떠나게 둘 수 없다고요!"   민서희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녀는 박지환이 6년 전 약속을 잊고 윤서아와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었는데 알고보니 윤서아가 잔인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것이었다.   그녀의 머릿 속은 새야얗게 질려버렸고 민서희는 연신 뒷걸음질 치며 실수로 난간에 부딪쳤다.   "누구야?"   윤서아는 조급하게 문을 열었고 민서희를 보았을 때 잠깐 멈칫하다 바로 물었다. "민서희 씨, 방금 아무것도 못 들었죠? 방금 제 친구랑 농담하고 있었어요. 절대 오해하지 마세요!"   민서희는 그녀를 노려보며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당신이랑 지환 씨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었네요. 당신이 저와 똑같은 모습으로 성형해서 지환 씨 옆에 있었던 거였어요? 지환 씨가 당신이 자신을 구했다고 착각했던 거예요?"   그녀는 오히려 자신이 대용품이라고 생각하며 2년 동안 비굴하게 그의 옆에 남아있었다!   윤서아는 바로 당황한 모습을 보이며 해명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서희 씨가 잘못 들은 거예요. 저랑 지환 씨는 서로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어요!"   "지환 씨한테 가서 해명하세요! 전 지환 씨에게 사실대로 얘기해야겠어요!"   민서희는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솓는 것 같았고 발걸음을 재촉이며 아래 층으로 내려갔다. 윤서아는 조급하게 그녀의 뒤를 쫓으며 그녀가 곧 1층에 도착할 때 쯤에 마음을 독하게 먹고 손을 내밀어 그녀를 세게 밀었다.   "아악!"   민서희는 중심을 잃고 급히 자신의 배를 감쌌지만 주체할 수 없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녀의 머리는 심각하게 바닥에 부딪혔고 고통으로 인해 눈앞이 어둡게 변했다.   움직일 수 없는 그녀는 윤서아가 천천히 윗층에서 내려오는 것을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게 얌전히 빈민가에서 지내지 그러셨어요? 굳이 나와서 저와 지환 씨의 사랑을 뺏어야 했나요? 그리고 서희 씨가 지환 씨한테 솔직하게 얘기한다고 해서 지환 씨가 들은대로 믿을 것 같아요? 지환 씨한테 서희 씨는 헛된 꿈을 꾸는 야심많은 여자일 뿐이라고요!"   민서희는 그대로 쓰러져 버렸고 의식을 되찾았을 때는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바닥에 흘린 피는 이미 굳어버린 상태였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홀에는 아무도 없었고 온몸에 힘이 빠진 그녀는 헛구역질이 났지만 박지환이 아무것도 모르고 속고 있다고 생각하니 어디서 힘이 났는지 바닥에서 일어났다.   알고 보니 박지환이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그는 지금 속고있는 것일 뿐. 그 약속을 잊고 자신을 배신한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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