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아이 낳으면 안돼 　　

"서아 씨. 축하드립니다. 임신 4주 차입니다." 　　의사의 축하속에 민서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선생님, 혹시 검사가 잘못된 건 아닌가요? 전 위가 불편한 거예요... 임신일리 없어요.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봐주세요." 　　"서아 씨, 혹시 한 달 전에 잠자리 가진 적 있나요?" 　　"네, 있어요..." 　　"혹시 피임을 하셨었나요?" 　　민서희는 비가 내리는 날에 찾아왔던 박지환을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의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임조치 안 한 상태에서 잠자리를 가지면 임신 가능성이 얼마나 큰데요. 왜 임신일리 없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민서희는 차마 뭐라 반박할 수 없었다. 주먹을 꽉 쥔 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진단서에 임신이 아니라고 바꿔주실 수 있을까요? 제발 부탁 드릴게요. 돈은 얼마든 드릴 수 있어요..." 　　의사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서아 씨, 저희는 정식 병원입니다. 함부로 환자의 진단서를 고치는 건 불법입니다. 다른 볼일 없으시면 그만 돌아가시죠." 　　"다음 환자분 들여보내세요!" 　　민서희는 진단서를 손에 들고 비틀거리며 병원에서 나갔다. 시끌벅적한 거리에서 차마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박지환이 자신을 곁에 두는 것도 이미 최선을 다해 아량을 베푼 것인데, 자신의 임신 소식이라도 알게 된다면 아이를 당장 지우라고 할 게 분명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떨리는 손으로 배를 만졌다. 그녀는 너무나도 아이를 낳고 싶었다... 　　대책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박지환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민서희는 망설이다 전화를 받았다. 박지환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검사는 다 끝났어? 당장 돌아와." 　　박지환은 성격이 워낙 급했다. 그가 재촉한 후 30분 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민서희는 돌아가는 차안에서 내내 조바심을 떨었다. 별장에 도착했을 때 박지환은 마침 3층 감금구역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오늘 실크 잠옷을 입고 있었고 열려있는 옷깃에는 단단한 근육질 가슴을 드러냈다. 머리카락을 뒤로 정리되어 있었고 뚜렷한 이목구비는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6년 전, 민서희 역시 그의 화려한 외모에 마음을 사로잡혀 2년 동안 아무 명분없는 사모님의 신분으로 박지환의 곁에서 지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는 담배를 쥐고 있었고 민서희의 앞에 다가오니 담배 냄새가 확 풍겨왔다.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떠올리며 민서희는 숨을 참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검사 결과는 어때?" 　　민서희는 감히 숨을 가다듬으며 대충 에둘러 대답했다. "괜... 괜찮았어요. 별 특별한 문제는 없어요..." 　　"그럼 이틀 전에 구역질 한 건 뭔데?" 　　"위가 안 좋아서 그래요." 민서희는 입술을 깨물며 박지환의 눈을 피한 채 대답했다. "한 동안 밥을 제대로 안 먹었더니 위병이 다시 번졌나봐요." 　　민서희가 말을 마친 후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침묵에 휩싸였고 아래로 내려다보는 박지환의 따가운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민서희는 입술을 꽉 깨물었고 떨리는 마음에 두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자신이 들켰다고 생각한 순간 박지환을 소파로 향하며 말했다. "가서 밥 해. 배고파." 　　민서희는 잠시 멍하니 서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서둘러 주방으로 향했다. 　　그녀의 요리 실력은 뛰어났다. 덕분에 매달 한 번씩 본가에 가는 것 외에 박지환과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박지환은 그녀가 만든 요리를 좋아했고 때문에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기 위해 가끔 별장에 남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시간은 그 사람을 보기 위한 것이었다. 　　30분 후, 그녀는 밥상을 다 차렸고 그녀는 박지환에게 국을 떠주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조용히 식사했다. 　　그녀는 원래 거친 사람이었지만 박지환이 그녀에게 우아함을 가르쳐 주었고 이제는 그녀 역시 박지환처럼 우아하게 예의를 갖출 수 있었다. 다만 박지환처럼 만화에서 나온 것 마냥 똑같을 순 없었다. 박지환은 정말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그녀는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려고 했다. 박지환의 앞에 있는 식기를 치울 때 갑자기 박지환이 입을 열었다. "한경에게 이미 얘기해 뒀으니까 오늘 같이 가." 　　한경은 박지환의 개인 비서였다. 　　민서희는 잠시 멈추고 조급하게 물었다. "어딜 가라는 거예요? 혹시 본가에서 절 부른 건가요? 아니면 그녀의 친구가... 혹시 괜찮으면 내일 가면 안될까요? 오늘 금방 검사 받고 와서요." 　　"병원에 가." 　　박지환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서희, 난 네가 알아서 약 먹을 줄 알았어. 이 아이는 낳으면 안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