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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서약피의 서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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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장

머리 위로 비웃는 듯한 목소리가 낮게 들려왔다. “뭐 하냐고? 설마 이 차 안에서 임신한 네가 못 끝낸 일을 내가 대신 끝내주기라도 하란 뜻인가?” 김소연의 얼굴이 붉어졌다. 부끄러움과 굴욕감이 섞인 표정이었다. “그렇게 모질게 말씀하지 마세요.” 남자는 냉랭하게 말을 이었다. “모질게 행동한 게 누굴까? 우리 어머니한테 거짓말하고 친구랑 외출한다고 속인 게 누군데?” 김소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어머님을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잘 설명해드릴게요. 저는 단지 연락처 노트를 원했을 뿐이에요. 물론 오늘 밤 도련님이 제때 오지 않으셨다면 정말 큰일 날 뻔했겠지만 허정우가 그렇게 더러운 짓을 계획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심지어 전 임신한 몸이니까...” 남자의 숨결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소연 씨한테 뭐라고 말했던지 기억 안 나?” 그러자 고개를 숙이며 김소연이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의 사생활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 떠올라 잠시 망설이다가 냉정하게 말했다. “도련님의 배려는 고맙습니다만 몇 가지는 분명히 해두고 싶어요. 우리는 계약 결혼 관계니까 서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일에 대해 걱정하실 필요 없고 마찬가지로 저도 도련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겁니다.” 이 말을 끝으로 몇 초간 적막이 흘렀다. 김소연은 차 안의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앞 좌석의 비서마저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소연 씨, 도련님께서는 오늘 밤 야근을 끝내고 바로 돌아오신 거예요... 원래는 공항으로 마중 나와 주시길 바라셨는데 연락도 안 받고 전화도 받지 않으셨잖아요.” 김소연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김 비서!” 남자가 차갑게 부르자 비서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김소연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거리를 유지하자고? 그럼 멀리 꺼져.” 그러자 몸이 굳어진 채 김소연은 재빨리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차 문 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마치 차 밖으로 기어 나가고 싶어 하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본 남자는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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