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모두의 열정적인 환영에도 유아린은 단지 예의를 지켜 고개만 끄덕일 뿐 계속해서 사람들 속에서 지천무의 그림자를 찾았다. 하지만 지천무는 지금 사람들로 인해 뒤로 밀려나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조급해진 유아린은 이상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근데 사위는 왜 보이지 않는 거죠?”
그 말에 사람들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역시 조양호 도련님 때문에 온 거였군. 조씨 가문 정말 대단해.”
“당연하지. 조씨 가문이 그래도 일류 명문가 반열에 올랐는데, 유아린 아가씨도 체면을 세워줘야지.”
사람들은 의논이 분분했고 잔뜩 흥분한 조양호는 다급히 달려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유아린 씨, 반가워요. 조양호예요.”
유아린은 불필요한 외출은 하지 않는 성격이다. 하여 그녀를 원하는 남자는 많지만 진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갈 수 있는 남자는 여태 한 명도 없었다.
조양호는 곧 유아린의 손을 잡게 된다는 생각에 더없이 설레고 감격스러웠다. 이것만으로도 그는 한동안 남들 앞에서 잘난척할 수 있다.
게다가 혹시라도 유아린의 호감을 받게 된다면 그건 더더욱 경사이다. 강주시의 모든 남자가 그를 부러워할 것이고 심지어 이미소도 가차 없이 버릴 수 있다.
조양호를 마주한 유아린은 금세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곧 그녀는 이씨 저택을 나서려는 지천무를 발견했고 다급히 달려갔다.
“가지마!”
사람들의 시선은 유아린의 시선을 따라갔고 순간 단체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럴 리가?
유아린은 유씨 가문의 아가씨이자 유정 그룹의 대표이다. 요정처럼 아름다운 그녀가 가난한 지천무를 불러세웠다고?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사는 두 사람에게 무슨 연결점이 있다고...
이씨 가문 사람들의 미소는 그대로 굳어져 버렸다. 그들은 유아린이 당연히 이씨 가문의 체면을 보고 찾아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설령 그것이 아니라고 해도 조씨 가문의 체면 때문에 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들의 생각이 다 틀렸다. 유아린은 두 가문이 아닌 그들이 말하는 거지새끼를 찾으러 온 것이다.
지금 가장 난감한 사람은 바로 조양호이다. 앞으로 내민 손에는 찬바람만 들었고 설레는 마음은 놀라움으로 변했다가 결국 분노로 번졌다.
이씨 저택을 떠나려던 지천무는 발걸음을 멈추고 자기를 향해 달려오는 유아린을 바라봤다.
설마 이 여자, 나한테 어젯밤 일에 대해 따지려고 찾아온 걸까?
이러다 고소라도 하면 큰일인데. 비록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어쨌든 귀찮아질 테니까...
“역시 여기 있었네. 빨리 나랑 같이 가자.”
유아린은 지천무의 손목을 덥석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남자의 손을 먼저 잡았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고 거부감도 없었다.
어쩌면 하룻밤을 보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유일 수도 있다. 바로 지금 그녀는 아주 조급하다는 것이다.
“아니, 지금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이상호는 사람을 데리고 나와 다급히 두 사람 앞을 막아섰다.
“지금 뭐 하시는 거죠?”
유아린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 대표, 이놈은 단지 산에서 내려온 촌놈일 뿐이에요. 그런데 귀하신 분이 어떻게 이런 놈을 안다는 거죠? 분명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알겠네요. 찾는 사람이 제 사위인 조양호 맞으시죠? 유 대표가 착각했어요.”
이상호는 다급히 조양호를 유아린 앞으로 끌고 왔다.
“아니요. 제가 찾는 사람은 이 사람이 맞으니 길 좀 비켜주세요.”
유아린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런 촌놈을 뭐 하러 찾는단 말이죠?”
이상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제 사적인 일엔 관심 좀 꺼주시죠. 당장 비키세요.”
유아린은 더는 그들과 입씨름할 겨를이 없어 지천무를 끌고 바로 떠나갔다.
이씨 가문 사람들과 조양호는 마치 똥이라도 씹은 듯 안색이 구렸다. 강아지처럼 꼬리를 흔들어 댔건만 유아린은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기 싫다는 듯 촌놈을 데리고 떠나갔다. 정말 분하다!
조양호는 싸늘한 눈빛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봤는데 사실 그가 지금 찢어 죽이고 싶은 상대는 유아린이 아닌 지천무이다. 지천무 때문에 그는 오늘 체면을 잃어버렸다.
문 앞까지 걸어간 지천무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리더니 이상호에게 한마디 했다.
“좋은 마음에 알려드리는 건데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 후사부터 준비하시는 게 좋겠네요.”
“너 이 개새끼가 감히 우리 장인어른을 저주해? 죽고 싶어?”
조양호는 손을 높게 들어 지천무의 얼굴을 향해 휘둘렀고 순간 지천무의 눈에는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바로 이때, 유아린이 먼저 손을 써서 조양호의 뺨을 후려쳤다.
“유아린 씨, 절 왜 때리시는 겁니까?”
화가 난 조양호는 얼굴을 부여잡고 따져 물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성질을 부릴 수 없었다.
“한 번만 지천무 씨에게 더 무례하게 군다면 조씨 가문은 파산할 수도 있단 걸 명심하세요.”
유아린은 더없이 쌀쌀맞게 말했다.
유아린이 지천무의 손목을 끌고 나가는 장면에 조양호와 이씨 가문 사람들은 분노가 솟구쳤지만 유아린은 결코 그들이 건드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유아린 씨, 대체 날 어디로 끌고 가는 거야?”
이씨 저택에서 나온 후 지천무가 물었다.
“사람 구하러 가야 해.”
유아린은 차 문을 열고 지천무를 조수석에 태웠다.
“누군데?”
“우리 할아버지. 중병에 걸려서 목숨이 위태로우셔. 지금 할아버지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쪽뿐이야.”
지천무의 질문에 유아린은 다급한 표정으로 대답하며 병원을 향해 빠른 속도로 운전했다.
“병에 걸렸으면 의사를 찾아야지, 왜 날 찾아?”
“의사가 치료할 수 있는 병이면 난 그쪽 안 찾을 거야.”
“왜 내가 당신 할아버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지천무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물었다.
“오늘 아침 그쪽은 내 심장병을 쉽게 치료했어. 그건 그쪽이 아주 대단한 의술을 가졌다는 걸 설명하지. 그래서 찾으러 다닌 거야.”
유아린이 설명했다.
“뭐 안될 건 없지만 우선 나한테 진 빚부터 갚아야 할 것 같은데?”
지천무가 말했다.
“내 백에 돈 있어. 다 줄게.”
“근데 이건 뭐야?”
지천무의 질문에 운전대를 잡고 있던 유아린은 곁눈으로 슬쩍 보다가 순간 화가 솟구쳤다.
지천무는 그녀의 생리대를 손에 들고 이리저리 보고 있었다.
“이거 혹시 기저귀야? 다 큰 어른이 기저귀를 써? 설마 말 못 할 비밀이라도 있는 건가?”
지천무는 아주 진지하게 물었다.
“말 못 할 비밀은 개뿔!”
화가 난 유아린은 이가 근질거렸다. 운전 중이 아니었다면, 할아버지가 위독하지 않았다면 정말 이놈과 한바탕 싸우고 싶은 심정이다.
지천무도 더는 그녀를 자극하지 않고 가방을 들여다보았는데 안에는 새 지폐 두 뭉치가 들어있었다. 아마 금방 은행에서 인출했나 보다.
“됐어. 돈은 별로 생각 없어.”
지천무는 꺼낸 물건을 도로 넣으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유아린이 물었다.
“나랑 자야지.”
지천무의 의미심장한 말에 유아린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았고 타이어와 지면은 심하게 마찰하여 코를 찌르는 고무 타는 냄새가 올라왔다. 안전벨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은 어쩌면 차 밖으로 날아났을지도 모른다.
차가 멈추고 유아린은 분노가 타오르는 눈빛으로 지천무를 노려보았는데 그 눈빛은 마치 당장이라도 지천무를 삼켜버릴 듯했다.
“에잇, 화내지 마. 농담이야, 농담.”
“난 그런 농담 별로야!”
유아린은 지천무를 매섭게 노려보다가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이때 한 사립병원 VIP 병동의 병실에 한 무리 사람들이 병상 앞에 서 있었는데 그중에는 원장인 이국지와 강주 최고의 신의로 불리는 장백초도 있었다.
장백초는 병상의 노인을 위해 침을 놓고 있었다.
노인은 앙상한 몸에 창백한 얼굴로 미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는데 언제든지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장백초가 노인의 몸에서 마지막 은침을 빼내는 순간, 옆에 있던 중년 남성이 다급히 물었다.
“신의님, 우리 아버지 어떠십니까?”
장백소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르신은 이미 중태에 빠져 더는 회복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엔 오늘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네요.”
“뭐라고요?!”
유씨 가문 사람들은 순간 사색이 되었다.
“신의님, 부디 방법을 생각해 주세요.”
유해림은 애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신의님, 우리 아버지만 구해주신다면 그 어떤 요구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유해산도 같이 사정했다.
“1%의 희망이라도 전 반드시 시도했을 겁니다. 하지만 어르신은 이미 삶의 희망을 잃으셨으니 마음 내려놓으시고 후사를 준비하세요.”
장백초는 무력하게 말했다.
“멀쩡히 살아있는데 후사를 준비하라고요? 그게 의사로서 할 말입니까?”
분노의 목소리와 함께 유아린이 병실 문을 열고 지천무와 함께 들어왔다.
장백초는 어두운 표정으로 지천무를 향해 말했다.
“방금 그 말, 자네가 한 말인가?”
“네, 제 말이 틀렸어요?”
지천무가 되물었다.
“난 희망을 완전히 잃었다고 판단하여 후사를 준비하라고 한 거라네!”
장백초는 잔뜩 화가 나서 반박했다.
“진짜 돌팔이네.”
지천무는 시큰둥하게 상대를 비난했다.
“뭐야? 감히 날 돌팔이라고?”
지천무의 말에 장백초는 제대로 분노가 끓어올랐다.
그는 강주시에서 제일이라고 불리는 신의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의술을 의심받았다.
“어디서 굴러온 놈이야? 감히 신의님에게 무례하게 굴다니!”
유해림은 어두운 표정으로 지천무를 노려봤고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분노했다.
비록 이번에 장백초는 어르신을 살리지 못했지만 여태 어르신의 생명을 연장해 준 사람이 바로 장백초라 그들은 늘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듣도 보도 못한 놈이 나타나 장백초를 헐뜯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