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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장

고연화가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왔을 때, 허태윤은 이미 방 안에 없었다. 그녀도 허태윤이 뭐 하러 갔는지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지금은 유효기간이 3개월밖에 되지 않는 협력관계에 불과했다. 기한만 되면 두 사람은 각자도생하는 것이다! 문을 잠근 뒤, 고연화는 곧바로 곯아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고연화는 허 씨 가문 도우미의 노크 소리에 잠에서 깼다. “작은 사모님, 대표님께서 옷을 보내셨습니다. 작은 사모님…” 시끄러워 죽을 것만 같았다. 고연화는 제대로 자지 못했지만 남의 집 안에 있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는 수 없이 침대에서 일어난 그녀는 도우미가 가져다준 원피스를 입었다. 세수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고연화는 막 방에서 나와 먹을 걸 찾으려고 하는데 비린내 가득한 찬물이 그녀에게 뿌려졌다. 그와 동시에 주위에서 깔깔대는 비아냥 소리가 들렸다. 더러운 물에 눈앞은 흐릿해졌고 머리 위의 더러운 물이 완전히 다 흐르고 나서야 그녀는 눈앞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앞에는 그녀 또래로 보이는 낯선 여자들이 서 있었다. 정교한 화장에 오만한 태도의 그들의 입가에는 오만한 비웃음이 걸려 있었다. 허 씨 가문의 도우미 몇 명도 그들을 아첨하듯 그녀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 중의 한 도우미는 손에 빈 바가지를 들고 있었고, 그 안에 담긴 물은 이미 고연화에게 뿌린 뒤였다. 미간을 살짝 찌푸린 고연화는 젖은 속눈썹을 들어 올리며 침착한 눈빛으로 낯선 여자를 보며 물었다. “뭡니까? 뭔데 물을 끼얹는 거예요?” 허윤진은 신상 립스틱을 바른 입술로 대답하며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난 허씨 가문의 아가씨 허윤진이예요! 허태윤이 우리 오빠고요!” ‘시누이’였구나! 고연화는 덤덤하게 눈썹을 들썩였다. “그래서, 왜 물을 끼얹은 거죠?” 턱을 잔뜩 들어 올리며 허윤진은 경멸 어린 눈빛으로 고연화를 훑어봤다. “방금 그 물은 자기 위치를 똑바로 알라고 하는 경고예요! 우리 허 씨 가문에 시집왔다고 정말로 허 씨 가문 작은 사모가 됐다고는 생각 마세요. 그쪽은 자격 없어요!” 고연화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무리 그래도 전 당신 오빠의 아내고, 새언니예요! 오늘 이러는 거 너무한 거 아니에요?” 허윤진은 우습다는 듯 말했다. “새언니요? 퉤! 뭐라도 되는 줄 굴기는. 우리 오빠 어제 아예 그쪽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잖아요. 신혼 첫날밤에 독수 공방한 주제에 뻔뻔하게 우리 오빠 아내라고 자칭하긴! 경고하는데, 우리 오빠가 그쪽이랑 결혼한 건 할아버지 병세를 안정시키기 위해서예요. 할아버지의 병만 나으면 당장 우리 집에서 꺼져야 할 거예요!” “…” 어쩐지, 그 이상한 아저씨가 결혼을 못 해 안달이다 했다. 허윤진이 다시 경고를 하며 말했다. “우리 오빠한테 매달릴 생각 따윈 하지 마요! 우리 오빤 절대로 그쪽 같은 여자 안 좋아하니까요! 명분 하나 있는 거 말고 그쪽은 우리 허 씨 가문에서 뭣도 아니에요, 하인들보다도 못하죠! 오빠가 없는 이상 여긴 내 말이 법이에요. 그러니까 그쪽도 내 규율에 따라야 할 거예요. 알겠어요?” 고연화는 얌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어요!” 고연화가 겁을 먹은 모습을 보자 허윤진도 속이 통쾌했다. “나름 눈치는 있네요. 앞으로 얌전히 있어요! 가자, 오늘 네일 예약 잡아놨는데 이 시간이면 거의 도착했을 거야…” 말을 마친 허윤진은 옆에 있는 도우미들을 데리고 떠나려 했다. “잠깐.” 그때 고연화가 그녀를 다시 불렀다. 걸음을 멈춘 허윤진이 짜증 섞인 얼굴로 그녀를 쳐다봤다. “왜요? 감히 무슨 불만이라도 있어요?” 고연화는 웃으며 말했다. “아니요. 근데 아가씨, 제가 이 집에 막 시집온 참이라, 아가씨가 말하는 규칙이라는 게 뭔지 말 모르겠네요.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어요? 그래야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규칙을 잘 지키죠.” 순간 멈칫했던 허윤진은 이내 비웃음을 흘렸다. “역시 가난한 집안 출신 사람들은 참 재밌다니까! 좋아요, 기왕 물어봤으니 제대로 설명해 주죠! 잘 들어요, 앞으로는 이 집에서 얌전하게…” “저기, 잠깐만요…” 고연화는 비굴한 태도로 가르침을 구했다. “아가씨, 제가 기억력이 안 좋아서 그런데 혹시 제 방에 와서 천천히 이야기해 줄 수 있나요? 종이에 한 글자도 빼먹지 않고 전부 적고 싶어서요.” “정말 귀찮게도 하네요!” 허윤진은 조금 짜증이 나긴 했지만 규율을 세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다는 듯 고연화를 따라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막 방에 들어가자마자 곧바로 방문이 쿵 하고 닫혔다. 달칵, 문이 잠겼다! 다른 도우미들이 미처 따라 들어오기도 전에 문밖에 갇혀버렸다. 상황을 파악 못 하고 멍하니 있는데 안에서 허윤진의 처참한 비명이 들려와 황급히 문을 두드렸다. “아가씨… 아가씨… 무슨 일이에요!” 허윤진이 방에 들어오자마자 고연화에게 머리채가 잡혀 화장실로 질질 끌려갔다. 깜짝 놀란 허윤진은 연신 비명을 질렀다. “꺄악! 뭐… 뭐 하는 거야! 이거 놔요!” 고연화는 한 손으로 허윤진의 머리카락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양손을 잡은 뒤 마구 발버둥 치는 두 손을 잡고 물었다. “말해요, 방금 나한테 뿌린 거 뭐였어요?” 지금 이 순간 악마 같은 고연화의 모습을 보니 방금 전의 얌전했던 모습은 환상같이 느껴졌다. 허윤진은 저도 모르게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주방에서 생선 잡을 때 쓴… 물이에요!” “아하, 그렇군요!” 입술을 꾹 다문 채 미소를 지은 고연화는 다음 순간 허윤진의 머리를 변기 안에 집어넣었다. “꺄악! 꼬르륵, 꼬르륵…” 30초가 지나고 나서야 고연화는 그녀의 머리를 다시 들어 올렸다. “느낌이 어때요, 아가씨?” 허윤진의 안색이 파리해졌다. “감히… 감히 나한테 손을 대? 너…” 고연화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이었다. “아가씨가 먼저 손을 댔잖아요. 전 정당방위예요. 저한테 더러운 물을 끼얹었으니 제가 변기 물을 맛보게 하는 건 아주 공평한 거죠.” 눈앞의 여자는 미친 게 분명했다! 허윤진은 발광을 하며 외쳤다. “꺄악! 난 허 씨 가문의 아가씨야. 우리 오빠는 날 제일 아낀다고!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 고연화는 그 말을 귓등으로 넘겼다. “그쪽이 허 씨 가문 아가씨인지 아닌지 나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그쪽 오빠가 나랑 결혼을 한 건 나더러 작은 사모님 노릇하라고 데리고 온 거지 허 씨 가문 샌드백이 되라고 한 게 아니에요. 이번 교훈 똑똑히 기억해 두고 앞으로 다시는 날 건드리지 말아요!” 말을 마친 그녀는 다시 한번 허윤진의 머리를 변기에 밀어 넣은 뒤 매정하게 손을 뗐다. 허윤진은 벌떡 고개를 들고 숨을 헐떡였다. 역겨움에 눈물이 다 날 것 같았다. 이런 모욕은 난생처음이라 변기에 엎드려 연신 헛구역질을 한 허윤진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고연화, 너… 딱 기다려! 반드시 오빠한테 널 버리라고 할 거니까!” 고연화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요? 너무 잘됐다. 그럼 미리 아가씨께 감사 인사드리죠!” 고연화가 조금도 걱정하는 기미가 없자 허윤진은 마치 허공에 주먹질을 한 기분이라 짜증이 확 일었다. 고연화는 허윤진을 잡아당겨 방 밖으로 내던졌다. 얼른 비린내 나는 옷을 벗은 고연화는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 또다시 입을 옷이 없어진 그녀는 타올을 두르고 밖으로 나왔다가 마침 침대맡 협탁에 둔 휴대폰 액정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보고는 다가가 전화를 받았다. 동료 장아영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화 씨, 큰일 났어요! 얼른 회사에 와 봐요, 큰일 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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