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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무대 아래 하객들의 표정이 바뀌더니, 쑥덕대기 시작했다. “저 사람이 태윤 도련님의 약혼녀라고? 왜 길거리 양아치처럼 입었담?” “도련님의 여자라면 온화하고 아름다운 재벌가 아가씨여야 하잖아? 저건 대체 뭐야?” “크흠, 도련님 취향이 꽤 독특한가 보네…” 고연화는 맞선 상대를 물리치기 위해 일부러 날라리 같이 꾸민 것이었다. 그러나 허태윤은 이 ‘약혼녀’의 이미지가 사람들에게 비난 받고 있는 것은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은 듯했다. 정확히 말해선 심지어 자신의 취향이 의심받고 있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 이상한 것을 쳐다보는 듯한 하객들의 눈빛을 받으며 등 뒤에는 칼이 닿고 있어 고연화는 하는 수 없이 태윤과 약혼반지를 주고받았다. 그렇게 사회자가 약혼식이 끝났음을 선포했다! 사람들은 비록 허태윤의 약혼녀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허태윤의 체면을 봐서 축복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 무대 아래로 내려간 고연화는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이곳은 위험이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이내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 세 명에게 빙 둘러진 탓에 고연화는 앞길이 막혀버렸다. “그쪽 어느 가문 사람이에요?” “왜 그런 괴상한 꼴로 온 거예요?” “이런 꼴로 태윤 도련님의 곁에 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고연화는 그들을 무시한 채 그들을 빙 둘러 지나쳤다. 하지만 그 여자들은 다시 한번 고연화의 앞을 막으며 비켜주지 않았다. 인내심을 잃은 고연화는 그들이 입고 있는 화려한 드레스를 흘깃 쳐다봤다. “그쪽들은 하나같이 저 도련님 곁에 어울리는 차림이기야 한데, 옆에 서게는 해주던가요?” “당신…” 그 세 사람은 다 서울의 재벌가 여식들로 이런 조롱은 당해본 적이 없어 아예 고연화의 앞을 가로막고는 사과하지 않으면 보내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머지 않은 곳에서 염 씨 가문 둘째 도련님 염윤재가 다가와 허태윤과 잔을 부딪쳤다. “태윤아, 어디서 주워 온 양아치야? 저걸 너희 집 어르신한테 보여줬다간 아예 넘어가시지 않겠어?” 허태윤은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그 영감은 손주 며느리가 갖고 싶은 거니, 여자기만 하면 돼.” 염윤제는 쯧하고 혀를 찼다.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저런 날라리를 골랐어?” 시선을 내리깐 허태윤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잔을 들어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입술이 꽤 달아서.” 순간 멈칫한 염윤제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청렴결백한 친구를 쳐다봤다. “예전에는 왜 네가 취향이 꽤 독특하다는 걸 몰랐지!” 촤악! 술 한잔이 그대로 고연화에게 뿌려졌다.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린 염윤재는 눈썹을 들썩였다. “네 약혼녀가 괴롭힘을 당하는 것 같은데, 안 가볼 거야?” 허태윤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허태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을 때, 염윤제의 눈에 고연화가 여자의 머리를 한 손에 하나씩 잡더니 수박 때리듯 두 여자의 머리를 힘껏 부딪치는 광경을 보게 됐다. 그 두 여자는 눈에 별이 뜨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고 나머지 하나도 놀라 넋을 놓았다. “당신… 당신… 이게…” 고연화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옆으로 손을 내저었다. 마지막 남은 여자는 곧바로 물러서며 더는 길을 막지 못했다. 염윤제는 입꼬리가 다 떨려왔다. “…나 네가 왜 저 날라리를 골랐는지 알 것 같아!” 허태윤의 두 눈이 그윽하게 가라앉더니 술만 마시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저 여자는 순식간에 그의 곁으로 다가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손으로 거대한 그를 잡아끌어 허리를 숙여 강제로 입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힘이 셀 뿐만 아니라 겁도 없어 아주 흥미로웠다! “정시후, 데리고 가서 옷 갈아입혀.” “네, 대표님!” 고연호는 정 비서와 같이 옷을 갈아입으러 간 것이 아니라 다가와 불만 가득한 눈으로 남자를 향해 눈을 부릅 떴다. “아저씨, 이건 너무 막무가내 아니에요? 난 그냥 입한 번 맞춘 것뿐인데 평생을 책임지라고 하다뇨. 이건 대가가 너무 큰 거 아니에요? 다른 방식으로 책임지면 안 될까요? 예를 들면 금전적인 보상은 어때요?” 허태윤은 길게 빠진 그윽한 눈매를 가늘게 뜨며 고연화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으흠? 그럼 얼마면 내 입맞춤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의 얼굴을 가늠하다 이내 진지하게 그의 얇은 입술을 쳐다보는 고연화는 진짜로 값을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어려운데요, 당신이 값을 불러요! 나이도 적지 않아 보이는데 첫키스는 아닐 테고 그러니까 좋기는 4만 원 이상은 부르지 마요. 많이 부르면 저 돈 없어요!” “어딜 감히!” 4만 원? 정 비서는 눈앞의 여자가 죽으려고 작정했다고 생각했다. 대표님과 약혼을 할 수 있는 건만 해도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은덕일 텐데 대표님을 눈에 차지 않아 하다니? 허태윤은 손을 들어 수하에게 물러서라고 한 뒤 긴 손가락으로 고연화의 뾰족한 턱을 들어 올렸다. 힘은 강하지 않았지만 위협이 가득 담겨 있었다. “꼬맹아, 감히 사람들 앞에서 이 아저씨를 무시할 용기가 있으면 끝까지 감당해야지! 응?” 고연화는 눈앞의 남자가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다는 생각에 미간을 찌푸렸다. 오늘 차림새도 이상한데 왜 굳이 자신을 붙잡고 늘어지는 걸까? 고연화는 입꼬리를 올리며 눈동자를 굴리다 건들거리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저 지금 화장실 다녀와도 돼요?” 허태윤은 아무 말없이 수하에게 화장실로 데려가라고 눈짓했다. 몇 분 뒤, 정 비서가 잔뜩 굳은 얼굴로 허태윤의 앞에 다가왔다. “대표님, 고연화 씨가 화장실에서 창문으로 탈출해 도망쳤습니다. 이미 사람을 보내 쫓고 있습니다.” 정장 차림의 허태윤은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있었다. 마치 이럴 줄 미리 예상이라도 한 듯, 냉기 가득한 얼굴에는 아무런 기색도 보이지 않은 채 손 안의 와인잔만 흔들었다. “안 쫓아도 돼. 그 여자 집 주소 알아내서 청혼서 보내.” “네!” 충분히 구경한 염윤재는 친구를 말리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윤아, 정말로 그 어디 내놓지 못할 꼬맹이랑 결혼하게? 사실…” 허태윤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런 여자여야만 감당이 가능하지.” …… 고연화가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깊은 밤이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고백천이 휘두르는 손이 그녀의 얼굴을 내리쳤다. “무슨 낯으로 돌아와!” 고연화는 민첩하게 뒤로 물러서 가볍게 그 손을 피했다. 헛스윙을 한 고백천은 화가 다 치밀었다. “고연화, 네 엄마가 널 위해서 괜찮은 남자를 고르고 또 골라서 보내줬더니 이런 꼴을 하고 선을 보러 가? 게다가 길바닥에서 아무 남자나 잡고서 입을 맞춰? 우리 집안 체면은 네가 다 깎아 먹는구나! 너 때문에 네 엄마가 중매인한테 제대로 한 소리 들었어! 당장 무릎 꿇고 네 엄마한테 사과해!” 고연화는 양손을 주머니에 꽂은 채 차갑게 대꾸했다. “저 사람은 제 엄마가 아니에요!” 저 여자는 계모였다. 온갖 계략을 세워 얼른 시집보내고 고씨 집안의 재산 계승권을 잃게 하려는 계모였다! 류예화는 진심인 척 말했다. “백천 씨, 전 괜찮으니까 연화에게 화내지 마요. 아직 어려서 철이 없어서 그런 거겠죠. 다 새엄마인 제가 제대로 못 가르쳐서 그래요…” 아내가 이런 때에도 철없는 꼬맹이의 편을 들어주는 것을 보자 고백천은 더 마음이 아파 곧바로 고개를 돌려 욕설을 퍼부었다. “양심도 없는 것! 예화가 평소에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는데 엄마 소리 한 번을 하지 않아!” 류예화는 눈물을 닦으며 서럽지만 괜찮다는 듯 고백천을 말렸다. “백천 씨, 됐어요! 아줌마라고 불러도 전 좋아요. 전 괜찮아요!” 류예화의 연기를 본 고연화는 이젠 놀랍지도 않았다. 저 늙은 여우는 저런 고달픈 연기를 가장 잘했다. 앞과 뒤과 완전히 다른 여자였다. 오직 고백천만이 저 얼굴에 홀려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고백천 앞에 서류 한 뭉치를 건넨 고연화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 이건 저 아줌마가 나에게 찾아준 모든 맞선 상대의 진짜 자료들이에요. 어디 한 번 보시고 마음에 드는 사람 있으면 바로 결혼할게요!” 멈칫하다 자료를 들어 살펴보는 고백천의 안색이 점점 나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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