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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44장

“괜찮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말을 끝내고 쿨하게 자리를 뜨려는 남자아이를 서수연이 불러세웠다. “너 이름이 뭐야? 내가 이제 돈 줄게.” “배지성, 돈은 됐어. 비싸지도 않아.” 배지성은 그렇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이곤 걸음을 옮겼다. 서수연은 손에 들린 생리대를 보고는 찌르르해진 마음으로 배지성의 이름을 되뇌였다. 그렇듯 밝았던 소년이 어느덧 차분하고 우아한 남자가 되어 저 멀리서 걸어왔다. “자, 쥬스 마셔.” 그해 그날처럼 말이다. “뭐 좋아하는지 몰라서 아무거나 가져왔어.” “고마워.” 열여덟의 서수연의 지금의 서수연도 같은 말로 답했다, 그걸 빼곤 모든 게 달라진 상황 속에서. 이따금씩 그런 생각을 한다. 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지금쯤 두 사람 사이는 달라졌을까 하는. 애석하게도, 이젠 늦었다. “너 아직 말 안 했다? 이 파티 주인이랑 아는 사이야?” 지난 기억에서 빠져나온 서수연은 다시금 그 질문에 발목이 묶였다. 배지성에게 지금 상황은 말하고 싶지 않은데, 이기적이지만 끝까지 좋은 이미지로만 남고 싶은데. “넌 아직도 말수가 별로 없네?” 한 손으로 이마를 톡 치는 배지성을 서수연이 발그스레한 얼굴로 바라봤다. “고등학교 때도 그랬잖아 너.” 배지성이 술잔을 손에 들고 우아하게 흔들었다. “그때 넌 괴롭힘 당하고도 말 한마디 안 했잖아, 너랑은 상관 없는 일인 것마냥.” 서수연이 별 수 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 “사실 말하기 싫어서 그런 건 아니야, 어차피 말해봤자 소용 없으니까 힘 빼기 싫었던 거지.” “서수연, 사실 말을 꺼내기만 해도 달라지는 상황은 많아.” 배지성은 지난 추억을 회상하듯 그윽한 눈빛으로 서수연을 바라봤다. 서수연이 얼굴을 붉히며 그의 눈길을 피했다. “넌 잘 지내 요즘?” “뭐 그럭저럭, 대학교 졸업하고 석사 공부 3년 더 했어. 그 뒤엔 우리 집안 회사 들어갔지. 엄만 하루가 멀다 하고 소개팅하라며 닥달하셔.” 배지성이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넌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 성격이 그래. 나만 보면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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