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8장
밤 여덟시, 달빛 호텔.
허태윤이 도착했을때 카운터 여직원은 여자분이 미리 말해둔거라며 그에게 808호 카드키를 건넸다.
808호에 도착한 남자는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간다.
럭셔리한 장식의 객실에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욕실의 물 흐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허태윤의 시선이 욕실 쪽을 스쳐 지나간다. 꽃무늬로 조각된 유리 너머 굴곡이 선명한 여자의 실루엣이 언뜻언뜻 보인다.
남자는 입술을 꽉 깨물고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거뒀다.
밥상엔 마침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다.
이게 애송이가 직접 해준다던 요린가?
전에 집사가 가끔씩 혼자 디저트를 만들어 먹곤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철없는 애인줄만 알았더니 진짜 요리할 줄 아네?
허태윤이 슬며시 실눈을 뜨며 수저 옆에 놓여진 쪽지를 들여다본다. 쪽지에 쓰길:
[친애하는 허 선생님, 오시면 먼저 드세요. 저 기다리시다가 음식 다 식으니까요. 방금 요리하다가 배인 기름 냄새때문에 샤워하고 다시 나올게요.]
친.애.하.는?
남자의 눈썹이 살짝 올라가더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입꼬리도 슬쩍 올라간다.
늘상 자신의 모습따윈 신경쓰지도 않고 멋대로이던 애송이가 오늘 요리를 대접하기 위해 옷에 배인 냄새같은 포인트까지 신경쓰다니.
게다가 장소는 호텔이니 도대체 뭘 하려는 거지?
남자의 눈가에 웃음이 피어 오른다. 그는 의자를 빼 자리 잡고는 밥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음식들을 맛봤다. 별 문제 없이 꽤나 입맛에 맞았다.
평소 전문가들이 해주는 삼시세끼와는 비교도 못 했지만 애송이의 성의가 깃든걸 보니 각별히 맛있기도 했다.
몇입 맛본 허태윤은 젓가락을 내려놓고 미간을 주무른다. 피곤하고도 복잡해 보이는 모습 속엔 종잡을 수 없는 모순과 혼란도 보인다.
한 때 그는 가문 사업에 뛰어들어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던지라 깊은 사랑을 나눠본적도, 누군가에게 흥미를 느껴본 적도 딱히 없었다.
허나 고연화 이 애송이는 고작 20일 남짓하게 나타나서는 툭하면 그의 리듬을 파괴하고 정서를 오락가락하게 만들었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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