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강서윤이 물었다.
“허남준 씨는 어디 있어요? 저랑 만날 자신도 없대요?”
장수연은 아무렇게나 둘러댔다.
“요즘 사부님이 조금 바쁘셔서 여기까지 오실 시간이 없다고 하셨어요.”
강서윤의 눈에는 잠깐 미묘한 실망감이 스쳤지만 곧 잘 감춰졌다.
“마음대로 하래요. 어차피 보고 싶지도 않아요.”
장수연이 막 나가려다 무심코 테이블 위에 시선을 두었다. 그 위에는 배달 음식 상자가 잔뜩 있었다.
“이게 며칠 동안 드신 거예요?”
“네.”
강서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장수연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상하네요. 사부님께서 매일 담백한 음식들을 챙겨 드린다고 들었는데, 왜 이런 걸 드시고 계세요?”
“뭐라고요?”
강서윤이 눈살을 확 찌푸렸다.
“허남준 씨가 저한테 밥을 해줬다고요? 그게 언제 일인데요? 저는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자신이 말을 실수했다는 걸 눈치챈 장수연은 얼른 입을 막고 돌아서서 병실을 나가버렸다. 어수선한 병실에는 강서윤만 덩그러니 남았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밥이라니...”
그날 오후, 문석진은 막 퇴원 수속을 끝낸 뒤 병실 문 앞에 놓여 있는 밥을 또 발견했다.
“귀신같이 또 있네!”
도시락은 당연히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하지만 오늘은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강서윤이 모든 걸 눈에 담았다.
“이제야 알겠네...”
“서윤아, 퇴원 수속 다 마쳤어. 너는 모르겠지만 이거 처리하는 게 진짜 귀찮더라. 왔다 갔다 뛰어다니느라 완전 힘들었어.”
헐떡이는 문석진은 조금이라도 걱정 받길 바랐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시선뿐이었다.
“서윤아, 왜 그래? 왜 그렇게 날 봐?”
강서윤은 시선을 거두며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창가에 서 있던 허남준은 강서윤이 차에 오르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왠지 모르게 마음속에는 묘한 상실감이 번졌다.
“서윤아, 우리 둘이 퇴원 축하 파티하자. 오늘 저녁에 뭐 먹고 싶어?”
문석진이 운전하며 물었다.
그러나 강서윤은 창밖을 내다보고 있어서 한동안 듣지 못했다.
“서윤아?”
“응?”
“오늘 밤 뭐 먹으면서 축하할지 묻고 있었어.”
강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됐어, 나 잠깐 회사에 들러야 해. 밀린 업무가 너무 많아서 오늘 밤엔 집에 안 들어갈 거야.”
문석진은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고생 많네, 서윤아. 앞으로 내가 꼭 좀 도와줄게.”
“응.”
강서윤은 그저 간단히 대답만 했다. 며칠 동안 같은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젠 익숙했다.
회사 앞에서 강서윤을 내려준 뒤, 문석진은 부모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얼른 집으로 오라고 하는 전화였다.
그가 제때 귀국할 수 있었던 건 전부 부모가 소식을 알려준 덕분이었다. 하마터면 정말 큰 떡을 놓칠 뻔했다.
“알았어요, 지금 바로 갈게요.”
경해 별장.
이 별장을 강서윤에게서 넘겨받은 다음 날, 문석진의 부모는 온 식구와 함께 이사해 들어왔다.
오늘 별장은 유난히 북적였다. 온갖 친척들이 거실에 모여, 넓은 거실도 꽉 차 보일 정도였다.
마침 문석진이 돌아오자 모두 우르르 몰려들었다.
“어머나, 몇 년 못 봤더니 석진이가 더 멋있어졌네!”
“그러게, 잘생기기만 한 게 아니라 강 대표까지 잡았으니 인생 대박 났지!”
“해성아, 석진이 아무리 잘나가도 친척들 잊으면 안 되는 거 알지?”
“에이, 그런 말씀 마세요. 해성 씨가 우리를 잊을 리 있나요!”
여러 사람이 한마디씩 거들며 억지웃음을 짓는 모습이 무척 우스웠다.
더군다나 문석진은 그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해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문해성과 나지숙은 입이 귀에 걸려 도무지 다물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