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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오직 소희연만이 자신이 함정에 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모든 것은 소현석이 사람을 시켜 그녀에게 건넨 쪽지 때문이었다. 소희연은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고 홀로 묵묵히 모든 조롱과 모욕을 견뎠다. 그녀는 소현석에게 줄곧 그 일을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혼인하는 날, 오랫동안 소희연을 피해 다니던 소현석은 소희연의 방에 찾아와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는 쪽지는 그저 오해였을 뿐이라고,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소희연은 혼례복을 입은 채 초췌한 얼굴의 오라버니를 바라보면서 오랫동안 침묵했다. 그녀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무슨 얘기를 하든 소용이 없었다. 소현석은 괴로운 얼굴로 말했다. “희연아, 오라버니가 잘못했어. 날 탓해도 좋고 미워해도 좋다. 나도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날 승찬 대군 전하가 마침 청지궁에 있을 줄은 몰랐어. 나는...” 소현석은 설명도 제대로 못 하고 단국을 한 잔 건네며 복잡한 얼굴로 말했다. “희연아, 어찌 됐든 이미 벌어진 일이니 더 따져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오늘은 네가 혼인하는 날이지. 오라버니는 네가 단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널 위해 단국을 끓였다. 널 축복하는 마음에서 끓인 것이니 마시거라.” 소희연은 예전에 자신에게 잘해주었던 그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약해져서 얌전히 그가 건넨 단국을 마셨다. 그리고 결국 영문도 모른 채 꽃가마에서 죽었다. ... 수많은 화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소희연의 기억이었다. 죽음과 함께 기억도 옅어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몸속 어딘가에 숨어있다가 자극을 받아 다시 떠오를 줄은 몰랐다. 그러나 기억은 온전하지 않았고 대부분이 소현석과 관련된 기억들이었다. 소희연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소현석, 뭘 넋을 놓고 있는 것이냐?” 승원 대군은 난처한 모습으로 여해음을 막으며 고개를 돌려 말을 타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어서 해음이를 떼어내거라.” “오라버니!” 여해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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