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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소희연과 휘영 모두 말을 잇지 못했고 군이 재빨리 나서서 해명했다. “내가 언제 네 어머니를 빼앗겠다고 했어?” 경계 가득한 얼굴로 소희연을 껴안고 있는 환이의 모습은 마치 발톱을 드러낸 새끼 호랑이 같았다. “어머니를 주지 않을 거니까 저리 가.” “줄 필요까진 없어. 내게 반을 나눠주면 난 아버지를 절반 나눠줄게. 그럼 우린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생기는 거고 넌 형도 생기는 거야. 내가 잘 지켜줄게.” 군이 가슴을 두드리면서 장담했다. ‘계산이 참 빨라.’ 그 모습에 소희연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휘영은 당황해하며 식은땀을 흘렸다. “세자 전하, 그런 말씀 하시면 안 됩니다...” ‘대군 나리께서 아시면 기절하실 거란 말입니다.’ “누가 지켜달래? 난 어머니만 있으면 돼.” 환이는 소희연을 빼앗길까 봐 더욱 세게 껴안았다. “어머니,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가요.” “나도 같이 갈래.” 군이 재빨리 말했다. “세자 전하, 어디로 가시려고요?” 휘영이 황급히 물었다. “경성을 너무 멀리 벗어나면 안 됩니다. 대군 나리께서 걱정하신단 말입니다.” “알아. 지금 바로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경성으로 돌아갈 테니 걱정하지 마.” 휘영은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게다가 벌써 어머니라 부르다니.’ 환이 버럭 화를 냈다. “어머니라고 부르지 마.” “내가 불렀었나?” 군이 시치미를 뗐다. “불렀어.” “왜 그렇게 쩨쩨하게 굴어? 어차피 조만간 우리 어머니가 되실 텐데 지금 불러도 똑같은 거 아니야?” “너...” 환이는 화가 나서 미칠 것만 같았다. ‘어쩜 이렇게 뻔뻔한 아이가 다 있지?’ 소희연은 한 손으로 환이를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군이의 손을 잡았다. 두 아이가 앙증맞은 목소리로 싸우는 걸 듣고 있으니 웃음이 나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평소 말을 잘 하지 않던 환이도 군이를 만난 이후로 눈에 띄게 ‘활발’해졌다. ‘음, 괜찮네. 아이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지.’ 세자의 말에 휘영은 어찌할 바를 몰라 식은땀을 흘리면서 소희연과 함께 가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승찬 대군 앞에서보다 훨씬 순해진 모습이었다. 평소 무서운 게 하나 없고 늘 안하무인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딴사람이 된 듯했다. 다른 아이에게 발로 차여도 화를 내지 않았고 오히려 생글생글 웃으면서 흥정이나 했다. 만약 계속 따라붙지 않았더라면 누군가 세자를 사칭한 게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 “저기... 세자 전하, 이 산적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군이 휘영을 완전히 무시한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먼저 물었다. 그러자 군이 잠깐 생각하고 말했다. “경조부에 넘겨서 배후 주모자가 누군지 제대로 심문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휘영이 바로 답했다. “넌 날 따라오지 말고 여기서 경조부 사람들이 오기를 기다려. 난 어머니와 함께 경성으로 돌아가겠다.” 군이 손을 흔들었다. “세자 전하, 안 됩니다. 세자 전하의 안전은 제가 지켜드려야 합니다.” “어머니와 함께 있는데 뭐가 위험하다고. 경성과 그리 멀지 않으니 나중에 신씨 저택으로 데리러 와.” 군이는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비록 나이가 어리고 소희연과 환이 앞에서 영리하고 장난이 심한 남자아이처럼 보여도 사실은 승찬 대군의 유일한 세자로서 신분이 남달랐다. 목소리를 내리깔고 명령할 때면 어릴 때부터 귀하게 자라온 사람의 기품과 오만함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정말 아버지 승찬 대군과 똑 닮았다. 휘영은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소희연을 쳐다보았다. 소희연은 그가 그녀의 신분을 믿지 않는다는 걸 알고 시원하게 정체를 밝혔다. “전 남원군 저택의 사람입니다. 이따가 남원군 저택으로 데리러 오면 됩니다.” 남원군 저택이 경성의 권문세가 중에서 최고는 아니지만 그래도 1품이었다. 현 남원군 신홍철은 별다른 능력이 없어 조정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조상의 덕으로 겨우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저택 전체가 남원군 부친의 힘으로 근근이 버티고 있었고 껍데기만 화려할 뿐이었다. 휘영은 그녀의 신분을 알고 나서야 마음을 놓았다. 신씨 가문 사람이 세자에게 해코지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휘영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도 부탁드릴 게 있는데 산적 두목을 잠시 빌려 써도 될까요? 나중에 돌려드리겠습니다.” 소희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건...” 휘영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군이의 눈치를 살폈다. 그러자 군이 흔쾌히 허락했다. “어머니께서 원하시면 마음대로 하세요. 제게 허락받을 필요 없어요.” 소희연이 웃음을 터트렸다. “고맙구나.” “별말씀을요.” 군이 활짝 웃었다. 그들의 모습에 환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희연은 입을 삐죽 내민 환이를 마차에 태운 다음 군이도 태웠다. 조금 전 겁에 질려 다리에 힘이 풀렸던 마부는 휘영의 도움을 받아 밧줄로 산적 두목을 꽁꽁 묶은 후 마차에 태웠다. 그리고 길을 막고 있던 마른 나무도 치웠다. 마차는 다시 딸깍거리며 경성을 향해 출발했다. 휘영은 그 자리에 남아 기절한 산적들을 지키면서 멍하니 기다렸다. 약 일각 정도 지났을 무렵 다른 대로에서 경쾌하고 다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오더니 누군가 흑마를 타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대군 나리.” 휘영의 두 눈이 반짝였고 망설임도 없이 달려갔다. “워.” 전승군은 고삐를 당겨 흑마를 멈춰 세웠다. 그는 말 등에 앉아 날카로운 눈빛으로 엉망진창이 된 현장을 훑어보았다. 그러고는 차가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무섭게 말했다. “대체 무슨 일이냐? 세자는?” 휘영은 자초지종을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그러자 전승군의 준수하고 차가운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더니 이를 꽉 악물었다. “그러니까... 그 녀석이 제멋대로 어머니라 부르고 낯선 여인과 함께 도망쳤단 말이냐?” ‘이 녀석이.’ “아주 낯선 건 아닙니다... 성은 신 씨이고 남원군 저택의 사람이라고 정체를 밝혔습니다.” 휘영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그럼 그 여인을 어머니라고 부른 건 어떻게 된 거냐?” 그의 목소리는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세자 전하가 위험에 처했을 때 신 낭자가 구해주셨고 아마 순간 감동해서 세자 전하가...” 휘영이 말끝을 흐렸다. “한심한 것 같으니라고.” 전승군의 말에 휘영은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어느 방향으로 갔느냐?” 그가 차갑게 물었다. “이 길을 따라 경성으로 갔습니다.” 그 길은 전승군이 왔던 대로와 다른 길이었다. 하여 전승군이 경성에서 오는 동안 그들을 만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자들을 전부 형부에 넘기고 제대로 심문하거라. 대체 어떤 간덩이가 부은 놈이 내 아들을 건드렸는지 두고 볼 것이다.” 전승군은 명령을 내린 후 고삐를 당겨 경성 방향으로 쫓아갔다. “알겠습니다.” 휘영이 명을 받들었다. 말의 속도가 빠르긴 했지만 이미 많이 지체돼서 쫓아가지 못했다. 전승군이 경성에 도착했을 때 소희연 모자가 탄 마차는 이미 성 안에 들어간 후였다. 경성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고 마차들이 마구 뒤엉켜 혼잡하기 그지없었다. 아무리 대단한 말이라도 이 상황에서는 속도를 늦추고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셋째 아니야? 이런 우연이 다 있나. 남원군 댁의 회갑연에 가던 길이야?” 앞에서 익살스럽고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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