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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이소현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게. 네가 날 잘 몰랐었나 봐.” 말을 마치고 난 그녀는 또다시 주하영을 놀리고 있었다. “주하영 씨, 정말 사진 안 찍을 거예요? 안 찍으면 이만 갈 거예요.” 주하영은 화가 나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사진 찍고 싶었는데! 그러나 이소현이 차 안에 앉아 있으니 자존심을 굽힐 수가 없었다. “됐거든요.” 주하영은 고집을 부리고 있었다. “알았어요. 갈게요!” 이소현은 그들한테 손을 내흔들고 시동을 걸어 자리를 훌쩍 떠나버렸다. 파랑색 벤틀리가 그렇게 두 사람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주하영은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고진우! 왜 저런 여자하고 연애했던 거야?” 고진우는 미간을 주물렀다. “전에는 안 그랬어. 요즘은 결혼도 강요하고 자동차마저 빌리며 왜 저러는지 모르겠어.” 주하영이 답했다. “너하고 내가 가까이 지내니까 불안한가 보지. 아마 우리하고 같은 계급처럼 보이려고 빌린 모양이야.” 팔짱을 끼고 있는 주하영은 고개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더니 동정이 서린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빌린 거라 아쉽네. 사진만 찍을 수 있잖아. 불쌍해.” “쪽팔리니까 그만해.” 고진우는 발걸음을 돌려 별장으로 들어섰다. ... 차를 몰고 한 바퀴 돌고 난 이소현은 별장 밖의 유료 주차장에 세웠다. 아직은 그와 결판을 지을 때가 아니라 그의 차고에 주차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소현은 전에 고진우한테 자신의 집안 배경을 직접 말하고 싶었었으니 지금은 그럴 마음이 추어도 없었다. 저녁은 여전히 채소 요리들이었다. 이소현은 개인 요리사한테서 특별히 주문한 음식을 들고 식탁에 앉아 포장지를 뜯기 시작했다. 향기가 순식간에 주방 전체에 퍼지고 있었다. 고진우는 저도 모르게 이소현이 주문한 음식을 힐끔했다. 마라 샤오룽샤와 향긋한 게였다. 먹음직스러운 모양새에다 후각을 강하게 자극하는 냄새는 그의 식욕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의 앞에 놓인 맑기만 한 국물을 보며 입맛이 뚝 떨어져 버렸다. 이소현은 일회용 장갑을 끼고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도 마라 샤오룽샤를 좋아한다. 전에 이소현하고 마라 샤오룽샤를 먹으러 갈 때면 이소현은 매번 그한테 껍질을 벗겨주었었다. 목젖을 굴러가며 침을 꿀꺽 삼킨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이소현을 보며 그녀가 자신한테 껍질을 벗겨주길 기대하고 있었다. 허나 이소현은 혼자서 그 음식을 만끽하는 중이었다. 고진우의 시선을 느끼게 된 이소현은 불쑥 입을 열었다. “왜? 왜 그렇게 쳐다보는데?” 고진우는 어색함을 감추느라 헛기침을 했다. “냄새가 많이 나는 음식은 좀 삼가하지 그래?” 이소현이 답하기도 전에 주하영이 말을 끼얹었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하는 법이야. 이소현 씨, 냄새가 심한 것 같은데 나가서 먹지 그래요?” 고진우의 안색은 어두워졌다. 먹고 싶어 안달이었는데 주하영한테 가난한 사람일수록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한다는 말을 듣다니? 이소현은 입술을 핥고 나서 다기 작은 가재 한 마리의 껍질을 벗기며 그들의 사이를 이간질하고 있었다. “주하영 씨는 진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나 봐요? 한 번 물어봐요.” 주하영은 어리둥절한 눈빛을 띠며 고진우를 바라보았다. “진우 너...” 심기가 불편한 고진우는 불만을 참으며 채소를 한 젓가락 집어 들었다. “됐어. 상관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 이소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홀로 마라 샤오룽샤 한 상자와 매운 게 한 상자를 깨끗이 비웠다. 기분이 한결 상쾌하다. 식사를 마친 주하영은 거실을 한 바퀴 두리번거리더니 불평을 늘어놓았다. “진우야, 커튼이 별로인 것 같아. 책상 위에 놓인 꽃병도 거실 전체 색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그녀는 코를 막으며 꽃병 안에 든 꽃들을 혐오스레 쳐다보았다. “그리고 내가 꽃 알레르기가 있어서 그러는데 이 꽃들 버리면 안 될까?” 커튼은 이소현이 구매했던 거고 책상 위에 꽃병과 꽃들 모두 이소현이 정성스레 꾸며놓은 것이었다. 아마도 그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주하영이 고의적으로 흠을 잡고 있는 게 틀림없다. 고진우가 답했다. “네 스타일대로 바꿔놔.” 그는 이소현을 힐끔하더니 화가 난 듯 말을 덧붙였다. “꽃 알레르기가 있는 거면 쓰레기통에 버려놔.” 이소현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어차피 곧 있으면 여길 떠날 건데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꾸며도 상관없다. 주하영은 이소현이 상처를 받아 침묵하는 줄 알고 의기양양한 태도를 보였다. 이소현, 넌 날 못 이겨! 고진우는 아주머니한테 꽃병과 꽃들을 내다 버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난감한 기색을 띠며 이소현한테 시선을 돌렸다. “대표님, 이 꽃은... 이소현 씨가 사 온 거예요.” 고진우는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언성을 높였다. “누가 산 거면 어때? 여기 주인이 누구인지 까먹었어? 당신한테 월급을 주는 사람이 누군데?” 이소현은 담담하게 답했다. “괜찮아요. 아주머니, 그냥 버리세요.” 아주머니는 그제서야 꽃병을 들고 나가며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별꼴이네. 할 일이 없나 봐! 왜 갑자기 미쳐 날뛰는 거야! 그리고 그 주하영도 정신 나갔나? 여기에 들어와서 하루 종일 야채만 먹고 나까지 고기를 못 먹게 됐잖아! 언제쯤이면 이 고난이 끝이 날까!” 거실 안 주하영은 고진우의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 “진우야, 내일 같이 나가서 커튼 고를까?” 고진우는 이소현한테 고개를 돌렸더니 전혀 질투하는 기색 하나 없는 그녀를 보며 가슴이 답답해졌다. 이소현은 왜 질투하지 않는 거지? 그녀가 산 꽃을 버리라고 했는데 화도 안 나는 건가? 뭐라 설명이 안 되는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분명 이소현이 말을 잘 듣는 모습이 안심이 되었었는데 지금은 좀 지나치게 평온하기만 한 거 아닌가? 때로는 질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말이다. 그는 순간 말을 잘 듣는 이소현의 모습이 불쾌해졌다. 고진우가 답이 없자 주하영은 그의 팔을 흔들며 교태를 부렸다. “진우야, 그래도 되지?” 고진우는 그제서야 시선을 거두고 담담하게 알겠다고 했다. ... 다음 날 주하영은 물건을 대거 구매하고는 배달 직원에게 커튼과 거실 인테리어를 교체하라고 지시했다. 그녀는 이소현이 전에 샀던 모든 물건들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밖으로 돌아온 이소현은 기고만장한 주하영의 시선을 마주치게 되었다. 다만 이소현은 그런 주하영을 상대하지 않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거실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배달 직원들을 한 번 훑어보고는 곧장 위층으로 올라갔다. 어차피 가져갈 짐은 다 챙겼고 버릴 만한 물건들도 다 정리해 놨었다. 이제 일상용품들과 며칠 사이 갈아입을 옷들만 밖에 남아 있었다. 그녀는 남은 시일 동안 주하영과 서로 무사할 줄만 알았는데 주하영이 그녀를 쫓아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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