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장
“그게 무슨 소용이죠? 어르신이 하신 말씀 못 들었어요? 가짜는 가짜일 뿐, 신씨 가문 친딸은 단 한 명밖에 없죠.”
“이거 꽤 볼만 한데? 가짜 딸이 오매불망 그리던 혼사를 정작 친딸은 단칼에 거절하다니. 역시 각자의 운명이 있나 봐요.”
조롱과 야유가 섞인 눈초리는 마치 비수처럼 신윤아의 심장을 관통했다.
자부심과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그녀는 이제 웃음거리로 전락했다.
결국 더는 참지 못하고 울면서 뛰쳐나갔다.
이를 본 신강욱과 노수정은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행여나 신윤아가 충격을 받아 어리석은 짓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어 육상철에게 말했다.
“혼사는 나중에 다시 얘기해요. 저희도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
만약 육상철이 선택한 사람이 신윤아라면 모두에게 기쁜 일지만 하필이면 신지수라니...
노수정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만감이 교차했다.
육상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떠나기 전에 신지수를 흘긋 쳐다보더니 확신에 찬 표정으로 물었다.
“아가야, 어제 할아버지가 보낸 선물들은 마음에 들어?”
노수정의 눈이 또다시 휘둥그레졌다. 어제 산더미처럼 쌓아 올린 선물이 신윤아한테 보낸 게 아니란 말인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착각에 불과했다니!
신지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결국 경사스러운 연회는 흐지부지 끝났고, 모든 손님을 배웅한 뒤 신강욱은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윤아는 찾았어?”
“아니요. 이 늦은 밤에 여자애가 혼자서 어디로 갔는지, 참...”
노수정은 초조한 나머지 안절부절못했다.
신씨 별장의 가정부, 경호원, 전속 운전기사가 총동원해 낱낱이 찾아본 결과 별장 뒤편 연못가에서 신윤아를 발견했다.
가정부에게 부축해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온몸이 홀딱 젖어 있었다.
노수정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고, 안색이 돌변했다.
반면, 어머니를 보자마자 신윤아가 내뱉은 첫마디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엄마, 나 죽을래! 그냥 죽고 싶어. 흑흑...”
이내 울음소리가 별장에 울려 퍼졌다.
가정부는 솔직하게 말했다.
“사장님, 사모님. 윤아 아가씨를 발견했을 때 연못에 뛰어들려고 하더라고요. 그나마 제때 구조되어 천만다행이지만 조금만 늦었더라면 큰일 날뻔했죠.”
노수정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 밤, 신강욱과 노수정은 자칫 한눈판 사이에 신윤아가 또다시 자신을 다치게 하는 어리석은 짓이라도 할까 봐 번갈아 가며 자리를 지키고 위로해주었다.
밤새도록 운 신윤아는 눈이 퉁퉁 부었고 목소리도 맛이 갔다. 이내 애처로운 표정으로 노수정의 손을 잡고 거의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엄마, 언니한테 뭐든지 다 양보할게요. 어차피 가짜인데 욕심이 과하면 안 되잖아요? 그 정도 눈치는 저도 있어요. 하지만... 이번에 한 번만, 제발 딱 한 번만 부탁해도 될까요? 제가 진심으로 서진 오빠를 좋아하는 걸 알고 계시잖아요...”
결국 그녀는 울면서 잠이 들었다.
신강욱과 노수정은 새벽이 다 되어서야 신윤아의 방에서 나왔다.
노수정은 복도에서 눈물을 닦았고, 괴로우면서도 불만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동안 멀쩡하게 잘 지냈는데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윤아는 왜 내 딸이 아닌 거죠?”
애초에 남의 집 자식과 바뀌지 않았더라면 지금처럼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심지어 신지수의 존재를 부정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렇다면 세 식구는 행복한 한 가족이 되었을 텐데...
순간, 신강욱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윤아만 당신 딸이고 지수는 아니야? 무려 피를 나눈 친자식이라고! 당신의 그런 속마음을 알게 된다면 지수가 얼마나 속상하겠어?”
노수정은 그제야 조금 전까지 속으로 생각했던 말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입 밖으로 흘러나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평소 아내라면 사족을 못 쓰던 신강욱이 갑자기 화를 내는 것도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노수정도 억울한지라 이참에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밀어붙였다.
“그래요. 지수가 내 딸인 건 인정하지만 옹알이할 때부터 어엿한 숙녀가 될 때까지 지켜본 사람으로서 윤아를 편애하는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요?”
신강욱이 반박하려는 순간 노수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도 속으로는 나처럼 생각하잖아요.”
“이...!”
신강욱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복도 모퉁이, 신지수는 말없이 벽에 기대어 서서 두 사람의 대화를 한 마디도 빼놓지 않고 똑똑히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