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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뭐라고요?” 안은실은 임하나를 째려봤다. “그럼 지금 그냥 넘어가겠다는 거예요?” 임하나는 그녀가 입은 원피스를 보다가 말했다. “그냥 넘어가려는 게 아니에요. 첫째, 난 여기 가만히 서 있었는데 은실 씨가 먼저 부딪친 거잖아요. 그러니까 은실 씨가 스스로 책임져야죠. 둘째, 설령 내가 잘못이 있다고 해도 나는 800만 원 배상하지 않을 거예요.” 안은실은 평소 겁 많아 보이던 임하나가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녀의 말에 반박할 줄 몰라 깜짝 놀랐다. 물론 분노의 마음이 더 크긴 했다. “내가 이쪽으로 가고 싶었는데 하나 씨가 길을 막았잖아요. 아니면 왜 하나 씨와 부딪쳤겠어요? 그리고 내 원피스가 800만 원짜리라 그만큼 배상해야죠. 아니면 나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안은실은 임하나가 겁이 많아 쉽게 겁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임하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원피스, 800만 원짜리 아니잖아요.” 안은실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이거 명품 브랜드예요. 싸구려 옷 아니라고요. 모르는 브랜드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요.” “함부로 말하지 않았어요. 이 옷 짝퉁 맞아요.” 임하나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녀의 말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안은실의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 “아니에요! 이 원피스 짝퉁 아니라 정품이라고요! 하나 씨, 돈 배상하기 싫다고 해서 이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거예요?” 임하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다른 사람들은 흥미롭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다들 안은실의 말을 더 믿는 듯했다. 결국 한승호가 말했다. “은실 씨, 그러면 영수증을 하나 씨에게 보여줘요.” “이 옷, 내가 산 거 아니라 친구가 선물한 거예요. 내가 어떻게 영수증을 가지고 있겠어요?” 안은실은 눈을 굴리며 불만을 표했다. “설마 총괄 비서님도 하나 씨 편을 드는 건 아니죠?” 한승호는 총괄 비서일 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육현우 다음으로 높은 임원으로서 공정하게 행동해야 했다. 임하나는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안은실에게 말했다. “짝퉁이 맞는지 아닌지는 전문가에게서 검정받으면 되잖아요.” “그러죠. 내가 두려워할 줄 알아요?” 한스 그룹에는 패션팀이 있었기에 전문가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승호의 전화 한 통에 패션팀에서 사람을 올려보냈다. 검증 과정은 간단했다. 그 사람은 라벨과 태그를 확인하고 또 몇 가지 디테일을 보더니 바로 결론을 내렸다. “안은실 씨, 이 원피스 어디서 산 거예요?” “친구가 선물한 거예요.” 안은실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 원피스 아무 문제 없는 거 맞죠?” “안은실 씨, 이 원피스는 정품이 아니라 짝퉁이에요.” “네?” 안은실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농담이 지나치시네요. 꼼꼼하게 본 거 맞아요?” 한승호가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은실 씨, 그만해요. 설마 회사 패션팀 팀장을 의심하는 거예요?” “...” 패션팀은 매일 여러 명품 브랜드와 거래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품을 감별하는 정도는 실수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안은실은 여전히 믿을 수 없는 표정을 보이더니 분노의 목소리로 말했다. “감히 짝퉁을 나한테 선물해?” 임하나는 신경 쓰지 않고 패션팀 팀장한테 물었다. “죄송한데 이 원피스 가격 대략 얼마 정도 할까요?” 패션팀 팀장은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퀄리티 좋은 짝퉁은 몇십만 원까지 해요. 안은실 씨가 지금 입고 계신 원피스는 안감과 마무리가 비교적 잘 되어있어 대략 200만 원 정도 할 거예요.” “200만 원이라고 해도 배상해야죠.” 안은실은 망신을 당했기 때문에 화가 난 기색이 역력했다. 임하나의 가정 형편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걸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고 이제 막 정직원이 되었기에 200만 원은 그녀에게 꽤 큰 돈일 것이다. 임하나는 그녀와 더 말을 섞어도 소용이 없다는 걸 알고 고개를 돌려 한승호에게 말했다. “총괄 비서님, 혹시 탕비실 CCTV를 볼 수 있을까요?” 안은실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임하나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한승호에게 또 한 번 물었다. “가능할까요? 비서님?” 한승호는 안은실을 바라봤다. 안은실은 뒤가 켕겼지만 사람들 앞에서 뭐라고 말할 수도 없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 “그러죠. 내가 무서워할 줄 알아요?” 한승호의 휴대폰은 CCTV에 연결되어 있었지만 접근 권한이 없어 CCTV를 확인할 수 없었다. CCTV를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육현우뿐이었다. 한승호가 육현우에게 전화하자 육현우는 무슨 상황인지 물었다. 한승호는 이 일을 숨길 수도 없어 사건의 자초지종을 간단하게 설명했다. “하나 씨 그런 일은 하지 않았을 거야.” 얘기를 들은 육현우가 바로 말했다. 자신도 놀랄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접근 권한 줄게. 그러니까 하나 씨가 무고하다는 걸 꼭 증명해야 해.” “네, 알겠습니다.” 한승호는 전화를 끊은 후 한참 생각에 잠겼다. ‘대표님이 언제부터 이렇게 부하 일에 관심가지기 시작했지? 예전 같았으면 그에게 CCTV 접근 권한을 물어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혼났을 것이다. 한승호는 신중한 사람이었기에, 이 일이 안은실과 임하나 사이의 개인적인 문제라는 점을 고려해 두 사람을 따로 불러냈다. 그리고 블라인드를 내리고 외부의 호기심 어린 시선을 차단했다. “무슨 일인데 굳이 여기서 말해야 하죠? 밖에서 얘기하면 안 되나요?” 안은실은 금발의 파마머리를 쓸어올리며 불만을 드러냈다. “난 떳떳하니까 밖에서 얘기해도 괜찮은데요.” 한승호는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안은실 씨를 생각해서 따로 불러낸 거니까 잘 알아둬요. 그런데 뭐가 그렇게 불만인데요?” 안은실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지만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 “CCTV 볼 수 있으니까 한 번 확인해 봐요.” 한승호는 태블릿을 두 사람 앞에 놓았다. 회사의 CCTV는 초고화질이어서, 안은실의 컵에 있는 문양까지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안은실이 임하나에게 일부러 부딪친 장면도 명백하게 드러났다. 안은실은 CCTV에 이렇게 명확하게 나올 줄 몰랐는지 바로 침묵했다. “다 봤어요?” 한승호는 태블릿을 거두며 말을 이어갔다. “안은실 씨, 더 할 말이 있어요?” “없어요. 그때 너무 피곤했는지 하나 씨 옆을 지날 때 실수로 부딪친 것 같네요. 내 옷이나 신발이 훨씬 비싼데 일부러 부딪쳤을 리가 없잖아요.” 임하나는 무표정으로 그녀의 핑계를 들었다. 한승호가 임하나에게 물었다. “하나 씨, 더 할 말이 있어요?” 안은실은 바로 그의 말을 끊어버렸다. “더 시간 낭비를 할 필요 있어요? 그깟 옷 배상하면 되는 거잖아요.” “돈 필요 없고 은실 씨도 배상할 필요 없어요.” 임하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한테 사과만 하면 돼요.” “임하나 씨 미쳤어요? 나더러 사과하라고요?” 안은실은 자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예요? 선 넘지 마요.” 안은실은 평소에 부서 사람들과 워낙 가깝게 지냈다. 그래서 지금 그들 앞에서 자신이 가장 무시하는 인턴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배상금이 필요 없다는 말은 거짓인 것 같은데요? 사실 더 많은 걸 바라고 있죠? 알겠어요. 옷 열 벌이라도 배상할게요. 어차피 돈 얼마 되지도 않는데.” 안은실이 말하고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임하나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계좌 번호를 줘봐요. 지금 옷 열 벌 값을 보상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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