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7장 여사님이 주는 부담

틀린 말이 없었다. 여사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염지훈에게 송여월의 일에서 손을 떼라는 뜻이었다. 나는 드디어 깨달았다. 여사님은 오늘 송여월을 본가에서 내쫓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송여월의 표정은 일그러졌다. 하지만 송여월은 한마디 말이라도 할 자격이 없었고 여사님의 요구를 거절할 자격도 없었다. 송여월도 오늘은 반드시 본가를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침묵하던 송여월은 여사님에게 말했다. “할머니, 그동안 지훈이와 함께 저를 돌보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주제넘었어요. 이 저택의 풍경에 미련을 두지 말았어야 했어요. 안 그래도 여기서 너무 오래 지낸 것 같아 며칠 전엔 집이 그립기도 했고 엄마가 보고싶기도 했어요. 하지만 임신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놀란 마음을 추스리느라 며칠 더 머물렀던 거예요. 마침 오늘 엄마가 데리러 왔으니 같이 가겠습니다.” 나는 송여월이 존경스러웠다.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체면이 구겨지지 않도록 자기를 위해 변호하는 모습이라니. 송여월의 말에 여사님은 흔들리지 않고 주영백에게 송여월이 짐을 챙기는 것을 거들어주라고 당부했다. 주영백에게 얘기한 뒤, 여사님은 엄마에게 환한 얼굴로 말했다. “사돈, 어쩌다 오셨는데 저녁 식사하고 가시죠?” 엄마는 집에 다른 일정이 있어 빨리 가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웃으며 거절했다. 여사님과 엄마는 겉치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여사님은 가식적으로 저녁 식사를 요청했고 엄마는 가식적으로 바쁜 척하며 거절했다. 손이 빠른 주영백 덕분에 송여월의 물건은 금세 정리됐다. 엄마는 감사의 인사와 함께 송여월을 데리고 본가를 떠났다. 여사님은 나를 불러세웠다. 나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염지훈의 반응이 더 의외였다. 여사님이 송여월을 내쫓으면 염지훈의 성격상 따라가서 배웅이라도 하면서 송여월의 다친 마음을 위로라도 해줄 줄 알았다. 하지만 염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와 함께 남아 있었다. “지훈아, 얼른 가서 일 보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