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모채령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모용준의 명령에 하는 수 없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이진영도 굳이 그녀와 따지기 싫었다.
“그쪽이 들은 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 성인은 판단 능력을 가져야 하는 거야. 소문만 듣고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마.”
이진영이 차분하게 말했다.
“네가 뭔데 날 가르쳐?”
모채령은 화를 내며 말했다.
그러자 모용준은 그녀를 째려보더니 이진영을 향해 말했다.
“이해해 주길 바라네, 젊은 친구.”
이진영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
“예의 차릴 필요는 없고요. 살려드렸으니 치료비는 줘야겠죠?”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얼마를 원하나?”
모용준이 물었다.
이진영이 모용준을 구한 이유는 단지 돈 때문이었다. 그는 빈털터리로 진씨 저택에서 나왔기에 돈이 필요했다.
“당신 생명의 가치가 얼마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질문이군. 하지만 난 돈을 가지고 다니는 습관이 없다네. 이렇게 하지, 연락처를 남겨주면 돌아가서 사람을 보내겠네. 수표에 원하는 금액을 적으면 돼.”
모용준은 시원시원하게 대답했다.
“전 현재 고정 주소도 없고 휴대폰도 없어요.”
이진영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역시 도박꾼이라 휴대폰도 없네. 당신 같은 사람은 아무리 큰돈을 줘도 다 도박에 처넣고 말 거야!”
모채령이 또 비아냥거렸다.
“무례하다!”
모용준은 모채령에게 호통을 치더니 이내 말을 이어갔다.
“그러면 이렇게 하지. 지금 당장 우리 집으로 함께 가면 수표를 주겠네.”
“좋아요.”
이진영은 바로 백팩을 메고 산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빠, 사기꾼이라고요. 아까는 단지 우연이었어요.”
모채령이 말했다.
“침술을 살폈는데 꽤 체계적이었어요. 기를 이용해 침을 조작하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결코 평범한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
강자명이 말했다.
“말도 안 돼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모채령은 즉시 반박했다.
“선천종사만이 진기를 연마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저놈은 단지 빈털터리에 도박꾼일 뿐이에요. 설마 저놈이 선천종사라는 말인가요?”
“자명아, 확실하게 본 거야?”
모용준은 휴대폰도 없다는 이진영의 말에 그가 도박꾼이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믿기 시작했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도박에 빠지면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기에 이런 사람은 되도록 멀리하는 것이 상책이다.
하지만 그가 선천종사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전체 나양시에도 선천종사는 오직 네 명뿐이며 심지어 모두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다. 만약 젊은 이진영이 종사라면 반드시 그와 가까이 지내야 한다.
“100% 확신할 수는 없어요.”
강자명은 솔직하게 말했다.
“아저씨가 틀렸어요. 저 자식이 진짜 실력자라면 내가 진짜 무릎을 꿇어서라도 사과할 거예요. 선천종사라는 타이틀은 저딴 놈에겐 어울리지 않아요. 그 호칭에 대한 모욕이라고요!”
모채령은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그만, 어쨌든 내 목숨을 구한 건 사실이니 돈이라도 줘서 보내는 게 낫겠어.”
모용준도 이진영이 선천종사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20대 초반의 선천종사는 남도성에도 얼마 되지 않았다.
세 사람은 비록 목소리를 낮췄지만 귀가 밝은 이진영은 그들의 대화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굳이 설명하기 귀찮은 마음에 그저 입꼬리를 올릴 뿐이다.
차에 오른 후, 모용준은 이진영의 정체를 더 알아보기 위해 질문을 던졌다.
“젊은 친구, 어떤 의대 나왔지?”
“저 의대 아닌데요.”
그러자 조수석에 앉은 모채령이 잔뜩 흥분해서 끼어들었다.
“아니, 근데 왜 의사인 척하고 치료비를 달라는 거야?”
순간 모용준은 이진영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었다. 의대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결국 어디서 대충 배운 응급 처치 기술을 가지고 우연히 자기를 구했다는 걸 의미한다.
모용준은 이진영에게 흥미를 잃어버렸다. 만약 명성과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진작 그를 차에서 내쫓았을 것이다.
“너 어디 아프네.”
이진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뭐야?”
모채령은 멈칫하더니 크게 화를 냈다.
“지금 나 욕하는 거야? 이러다 내가 널 차에서 쫓아내리는 수도 있어!”
옆에 있던 모용준도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진영을 차에서 내쫓으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차가 갑자기 멈춰 섰다.
“자명아, 무슨 일이야?”
모용준이 다급히 물었다.
“시끄러운 상황이 생겼네요.”
강자명이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앞쪽 갈림길에서 갑자기 검은색 승합차가 나타나 도로 중앙을 가로막았고 그로 인해 하마터면 교통사고가 날 뻔했다.
강자명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쪽에서도 승합차 한 대가 달려와 뒤를 들이받았고 이내 그들이 탄 차는 승합차에 포위당했다.
보아하니 악의를 품은 사람들이다.
승합차의 문이 열리고 검은 옷에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대거로 내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손에 긴 칼을 들고 살벌한 분위기를 풍겼다.
“아가씨, 차에서 회장님을 지켜주세요.”
강자명은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모용준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말했다.
“하나쯤은 살려서 배후를 알아봐.”
“네.”
강자명은 차 문을 열고 내리더니 즉시 상대와 맞붙었다.
“저 사람들 뭐요? 감히 우리 앞길을 가로막다니.”
모채령도 강자명을 철석같이 믿고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때 모채령은 갑자기 뭔가 떠올라 이진영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도박꾼, 설마 네가 부른 사람들이야? 네가 정보 흘렸어?”
“난 모르는 사람이야.”
이진영이 대답했다.
“자네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곧 밝혀지겠지. 만약 자네와 관련 있다면 자네는 여기서 죽는 거야.”
모용준도 이진영이 정보를 흘렸다고 의심해 바로 총을 꺼내 이진영의 머리에 겨누었다.
“생명을 구해준 은인에게 이렇게밖에 못해요?”
이진영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차분하게 말했다.
무학계에는 일곱 걸음 밖에서는 총이 더 바르지만 일곱 걸음 안에는 주먹이 더 빠르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선천종사에게는 일곱 걸음 밖에서도 주먹이 더 빠르다. 모용준의 총은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
“정말 은인인지, 아니면 날 해치려는 적인지는 곧 알게 될 거야.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자네를 사기꾼으로 알고 있네.”
모용준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움직이지 말게, 그렇지 않으면 바로 총을 쏴버릴 거야.”
이진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좌석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곧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차 밖의 강자명은 최선을 다해 상대들과 싸웠는데 강력한 주먹으로 거구의 세 명을 한꺼번에 쓰러뜨렸다. 그런데 이때 승합차에서 중년 남자가 내렸다.
“강자명, 역시 강하군.”
“당신 누구야?”
강자명이 물었다.
“난 네 목숨을 거두러 왔어.”
말을 끝낸 중년 남자는 빠르게 강자명을 향해 달려들었는데 그의 속도는 강자명을 깜짝 놀라게 했다.
겨우 다섯 수 좌우를 주고받았는데 강자명은 한 방에 차에 부딪혀 차 문이 움푹하게 파여 들어가고 유리창이 깨져버렸다.
“아저씨!”
모채령은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상대는 7품 고수예요. 어서 회장님을 모시고 떠나세요!”
강자명은 피를 토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
7품 고수라는 말에 모용준은 깜짝 놀라더니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7급 고수 앞에서는 도망갈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강자명은 또다시 몸을 던져 상대에게 달려들었지만 소용없었다. 상대는 또 한 번 강자명을 쓰러뜨려 피를 토하게 만들었다.
그는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했다.
중년 남자는 강자명의 머리를 발로 밟더니 차 안의 모용준에게 소리를 질렀다.
“모용준! 네 경호원은 너무 약해. 얌전히 차에서 내려오면 곱게 죽여줄게.”
“아빠, 어떡해요? 아저씨가 졌어요. 이러다 우리 다 죽는 거 아니예요?”
모채령은 겁에 질린 채 사색이 되어 울먹였다.
모용준 역시 안색이 어두워졌다. 7품 고수를 출동시킨 건 그에게 살아남을 기회를 전혀 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끝인 것 같구나.”
모용준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때 이진영이 눈을 번쩍 뜨고 말했다.
“200억을 주면 도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