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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야, 장님. 당장 물건 정리해서 우리 집에서 나가!” 진씨 저택. 실오라기 하나도 걸치지 않은 진애리는 이진영이 있는 지하실로 내려가더니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닦고 있는 이진영에게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하지만 이진영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무 말 없이 계속 바닥을 닦았다. 그러자 진애리는 다리를 들어 이진영을 향해 냅다 발길질을 했고 가여운 이진영은 그대로 벌렁 넘어져 버렸다. “이 빌어먹을 장님 새끼가, 내 말 안 들려? 이젠 귀까지 먹었어?” 이진영은 천천히 일어났다. 눈앞의 여자는 연예인보다 더 아름다운 몸매와 외모를 가졌는데 그녀는 집에서 옷을 입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늘 벌거벗은 채로 다니곤 했다. 아쉽게도 눈이 먼 이진영은 이 진풍경을 볼 수 없었다. “그래, 떠나는 건 문제 없지만 내 것은 되찾아야겠어.” 이진영이 말했다. “네 거? 뭐? 각막? 아니면 성안 그룹 주식?” 진애리는 경멸에 가득 찬 미소를 지었다. “미친 장님이 꿈도 야무지지. 이제 네 건 아무것도 없어. 성안 그룹은 우리 집안의 소유야. 네 그 하찮은 목숨까지도 우리 소유라고! 죽이지 않고 쫓아내는 것도 너에게 은혜를 베푸는 거니까 고마워해야지.” 그 말에 이진영은 화가 솟구쳐 저도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십여 년 전, 진모현은 딸 진애리와 함께 나양시로 피난을 와서 힘든 생활을 보냈다. 천생 미인인 진모현은 의지할 데가 없어 양아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 일쑤여서 결국은 이진영의 어머니가 두 모녀를 구해주고 받아주고 심지어 성안 그룹에 일자리까지 마련해주었다. 이진영의 어머니는 진모현을 마치 친자매처럼 여기며 극진히 대해주고 나중에는 그룹의 부대표까지 올리며 기업의 중요한 일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던 2년 전, 이진영의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가고 회사와 이진영을 모두 진모현에게 부탁했다. 이진영은 그녀를 진심으로 신뢰했으나 사실 진모현은 아주 끔찍할 정도로 지독한 여자였다. 그녀는 회사에서 편을 끌고 반대파를 제거하며 이진영의 주식을 완전히 무력화하고 깔끔하게 삼켜버렸다. 더 가증스러운 것은 진애리가 눈을 다치자 진모현은 이진영의 각막을 그녀에게 이식해 주었다는 것이다. 그 일 이후로 이진영은 눈이 멀었고 진모현에게 개처럼 감금되어 모녀의 고문과 굴욕을 견디며 어둡고 더러운 지하실에서 비참하게 살아가야 했다. “왜? 화나? 나 한 대 치고 싶어?” 진애리는 경멸에 가득 찬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다가가 싸늘하게 말했다. “한 대 쳐보시던가. 장님아.” 진애리는 이진영의 뺨을 후려치며 치며 말했다. “쳐 보라고.”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운 그녀는 태권도 실력이 상당했다. 하여 이진영이 아무리 눈이 멀지 않았더라고 해도 절대 그녀를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진씨 저택 지하실에서 인간 샌드백으로 살며 자주 진애리에게 얻어맞아 갈비뼈 몇 개가 부러졌는지도 모른다. “쓸모없는 놈! 때리라고 해도 못 때려? 너 같은 겁쟁이가 살아서 뭐 해? 차라리 빨리 죽어버려!” 이진영의 입속에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순간 그는 2년 동안 쌓인 서러움과 원한이 터져 나와 분노가 치밀었다. 어디서 난 용기일까, 그는 진애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진애리는 평소에 그녀에게 감히 욕도 못 했던 이진영이 자기를 때릴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아무런 방어도 없이 가슴을 맞았다. 이진영은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주먹은 마치 부드러운 그 무언가에 닿은 것이 분명하다. 순간 밀려오는 통증에 진애리른 버럭 화를 냈다. “죽고 싶어?” 진애리는 맨발을 날려 이진영의 머리를 걷어찼고 이진영은 충격을 받고 현기증을 느끼더니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진애리는 이진영의 등을 밟고 올라서더니 그의 오른쪽 손을 세게 밟아 뼈를 부러뜨렸고 이진영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진애리는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이진영을 향해 주먹을 날리고 발길질을 하며 그를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그만해. 죽이려고 작정했어?” 이때 진모현이 성숙하고 우아한 매력을 발산하며 지하실로 들어왔다. 진애리의 몸도 아름답고 완벽했지만 그녀의 어머니인 진모현과 비교하면 여전히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진애리를 열다섯 살에 낳은 진모현은 이제 겨우 서른넷의 젊은 나이라 모녀라기보다는 자매에 더 가까운 느낌이 들었다. 진모현의 성숙한 매력과 풍미는 풋풋한 진애리가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엄마, 이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놈을 우리 2년이나 키웠어. 이럴 바엔 차라리 죽여버리는 게 낫지 않아? 나 진짜 보기만 해도 역겨워.” 그러자 진모현은 그녀의 팔을 잡고 말했다. “지금 죽으면 내 명성에 영향을 미칠 거야. 그것만 아니면 진작에 죽였겠지. 아무튼 아직은 때가 아니야.” 진모현은 담담하지만 위엄이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진애리는 애교를 부리며 말했다. “됐어. 이 닥터 불러서 대충 치료해 주라고 해. 회사에 급한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겠어.” 진모현이 말했다. “그래.” 진애리는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하지만 진모현이 떠난 후 진애리는 다시 지하실로 돌아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널 살려두라고 했지만 난 널 꼭 죽여야겠어. 너같이 쓸모없는 인간이 살아있는 건 이 세상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진애리는 이진영을 마치 죽은 개처럼 지하실에서 질질 끌어내어 거실에 던졌는데 바닥에는 선명한 핏자국이 남겨졌다. “아줌마, 집 안 깨끗이 청소하고 이 자식 흔적 싹 다 지워버려. 그리고 이따 날이 어두워지면 이 장님 새끼 강에 던져버려.” 진애리가 집안 도우미에게 말했다. “아가씨, 사모님께서 절대 죽이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도우미는 잔뜩 겁에 질려 입을 열었다. “내 말대로 해. 뒷일은 내가 책임질게.” 진애리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도우미는 빠르게 이진영을 끌어내서 차 트렁크에 던져 넣었고 날이 어두워지고 비가 내리자 바로 차를 몰고 낙수강으로 향했다. 낙수강에 도착한 후, 도우미는 가차 없이 이진영을 강에 던져넣은 뒤 다급히 자리를 떠났다. 하지만 폭우로 인해 수위가 점점 올라오자 이진영은 오히려 강가로 떠밀려 나왔다. 떨어지는 차가운 빗물에 이진영은 점차 의식을 찾게 되었고 삶의 의욕도 되살아나게 되었다. 이진영은 진흙탕 속에서 조금씩 앞으로 기어 낙수강변의 낡은 절간으로 몸을 숨겼다. 절간으로 들어온 이진영은 완전히 지쳐버린 채 바닥에 엎드려 숨을 헐떡였는데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굴복할 수 없었다. “하느님 양반, 세상은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당신도 나처럼 눈멀었어? 우리 엄마 아버지 얼마나 좋으신 분들인데 그렇게 비참하게 가게 만들어. 그런데 그 지독한 진씨 모녀는 오히려 돈과 명예를 얻었어. 난 인정할 수 없다고! 이 양반아, 눈멀었냐고! 왜 착한 사람을 괴롭혀!” 우르릉! 이때 번개가 쳤는데 하늘은 마치 분노한 듯 낡아빠진 절간의 한 오래된 나무를 태워버렸다. “그래, 나 그냥 벼락이나 맞아 죽을게. 나 좀 죽여!” 이진영은 눈을 부릅뜬 채 힘없이 소리를 질렀는데 그 모습은 정말 비참했다. 천둥번개가 치고 비바람이 몰아쳐 낡아빠진 절간은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듯 휘청거렸다. 이때 절간 신상 뒤쪽에서 한 노인이 나타났다. “세상은 공평하지 못해. 네가 말한 하느님이라는 양반은 정말 눈이 먼 것 같군. 보아하니 너도 비운의 사람인가 보구나.” 노인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진영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는데 이진영의 맥은 힘없이 뛰고 있었다. 순간 노인은 이진영의 눈꺼풀을 뒤집어 보더니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아니, 타고난 겹안이라니! 세상에, 죽기 직전에 겹안자를 만나다니. 그래, 너에게 내 모든 것을 전수하겠다. 이젠 네가 운명을 바꿀 차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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