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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재하와 권해솔은 그들의 시선을 뒤로하고 유유하게 밖으로 걸어 나왔다. 권해솔은 앞으로 걸으면서 계속해서 그의 뒷모습과 재이의 뒷모습을 머릿속에서 겹쳐보았다. 그러다 문득 뒷모습 하나로 이러는 것이 웃겼는지 생각을 그만두며 피식 웃었다. 강재하는 차량 옆에 다다를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차 문을 열고서야 권해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권해솔 씨는 마더 테레사가 꿈입니까?” 권해솔은 잔뜩 긴장한 채로 그와 눈을 마주쳤다가 뜬금없는 질문에 금방 다시 벙찐 얼굴로 되물었다.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영 분이 안 풀린다 싶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원하는 만큼의 보상을 해드릴 테니까.” 강재하는 말을 마친 후 볼 일을 다 끝냈다는 양 운전석에 올라탔다. ‘설마 지금 내가 속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권해솔은 그제야 그의 질문 의도를 파악하고는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쳤다. “보상은 필요 없어요.” 권해솔이 운전석에 앉은 강재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생각했던 건데 목소리가 참 좋으시네요. 혹시 어릴 때 따로 발성 같은 거 연습하셨어요?” 강재하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권해솔을 힐끔 쳐다보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권해솔 씨는 남자를 그런 식으로 꼬시나 보죠?” 그러고는 권해솔이 뭐라 반응하기도 전에 바로 시동을 걸어 자리를 떠나버렸다. “허... 뭐야, 저 사람.” 권해솔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로 멀어지는 차량을 바라보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밖으로 나왔다. 강재하가 떠나는 타이밍만 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설아야, 너무 걱정하지 마. 삼촌이랑은 내가 잘 얘기해볼게.” 강현수가 자신만 믿으라며 권설아를 안심시켰다. “괜찮겠어? 삼촌분 엄청 무서우시던데... 오빠를 막 때리고 그러는 거 아니야?” 권해솔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흘겨보고는 자기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거기 서.” 권태산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강 대표와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권해솔은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 곧 죽어도 이익이 먼저인 사람인데 신부 자리를 뺏긴 첫째 딸의 기분 같은 게 신경이 쓰일 리가 없었다. “오늘 처음 봤는데요?” 권해솔은 퉁명스럽게 답한 후 다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권설아가 다가왔다. “어때? 7년이나 공들인 남자친구를 빼앗긴 기분이?” 권설아는 강현수가 떠나자마자 바로 본성을 드러냈다. “좋아 죽을 것 같은데?” 권해솔은 웃는 얼굴로 답해주고는 바로 권설아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힘을 얼마나 세게 줬는지 권설아의 볼은 맞자마자 바로 빨갛게 부어올랐다. “권해솔!” 소미란은 소리를 빽 지르며 얼른 둘 사이로 다가가 권해솔을 세게 밀어버렸다. “너 지금 이게 무슨 짓이야? 곧 있으면 결혼하는 애 얼굴에 손을 대면 어떡해!” 권해솔은 더러운 것을 털어내듯 두 손을 두어 번 털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청첩장에 남의 이름 찍힌 것도 괜찮다는 앤데 얼굴 좀 망가진다고 신경이나 쓰겠어요? 권설아, 자고로 인간이면 부끄러운 게 뭔지는 알아야지. 남의 남자 뺏은 게 자랑이야?” 권해솔은 볼일을 다 마쳤다는 듯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 권태산이 엄한 얼굴로 앞길을 가로막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그 얼굴을 무서워할 권해솔이 아니었다. “고작 뺨 한번 내리친 것뿐이에요. 이 정도는 해야 내 기분이 좀 풀리지 않겠어요? 아니면 이것보다 더한 짓을 할까요? 그러길 원해요?” 권태산은 그 말에 분노한 듯 주먹을 꽉 말아쥐었지만 예상외로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보내주었다. “여보, 이대로 보내면 어떡해요!” 소미란이 떠나는 권해솔을 노려보며 권태산에게 불평을 늘어놓았다. “지금은 쟤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러니까 당신도 앞으로 해솔이는 더 신경 쓰지 말고 설아랑 현수 결혼식에만 집중해.” “...알겠어요.” ... 집으로 돌아온 후, 권해솔은 씻고 자려다가 갑자기 울분이 터져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재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폭풍 타자하며 쌓였던 것들을 털어내고 나니 짜증스러웠던 마음도 서서히 풀리고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오는 듯했다. 7년이나 키워왔던 감정을 한순간에 내려놓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바람이 난 상대와 바람난 이유가 너무 충격적이고 어이가 없어서 그런지 권해솔은 미련이라는 감정보다는 분노라는 감정이 먼저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새 유심을 꺼내 휴대폰에 넣고 강현수에게 영상 하나와 메시지 한 통을 보냈다. 영상은 다름 아닌 권설아와 강현수가 붙어먹은 영상이고 메시지 내용은 30분 안으로 지정된 계좌에 2억을 송금하라는 내용이었다. 그 시각 강현수는 아버지에게 갖은 욕설은 다 들은 후 반성의 의미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때 휴대폰에 알림이 울리고 그는 내용을 확인하더니 이내 눈에 불을 켜며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너 누구야?!] [이 영상 어디서 났어?] [죽고 싶지 않으면 당장 지워!] 강현수로부터 협박성 메시지가 다수 도착했지만 권해솔은 전부 다 무시해버렸다. 그러다 돈이 입금됐다는 문자가 도착하고서야 휴대폰에 시선을 주었다. 그러고는 휘파람을 불며 얼른 정채영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떡볶이 먹으러 갈래? 내가 살게.] [좋지. 안 그래도 그 뒤로 어떻게 됐나 궁금했던 참이었거든.] 다음날. 권해솔과 정채영은 약속대로 떡볶이집에 도착했다. 두 사람이 고른 곳은 매운 떡볶이로 유명한 집이었다. 정채영은 제일 매운 단계로 주문하는 권해솔을 말릴까도 생각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종업원에게 우유를 주문했다. “우유는 뭔 우유야. 나는 우유 필요 없거든?” 권해솔이 새침하게 고개를 쳐들며 말했다. “됐고,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정채영은 권해솔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어제 일을 물었다. 권해솔은 물을 한잔 마시더니 이내 본가로 간 뒤의 일을 하나부터 열까지 다 얘기해줬다. “미쳤어? 그것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단 말이야?!” 정채영은 테이블을 탁 치며 말하고는 이내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데? 내가 아는 권해솔은 절대 이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닌데?” “응. 네 말대로 이렇게 쉽게 물러나 줄 생각 없어.” 권해솔은 앞으로의 계획을 정채영에게 얘기해주었다. “알겠어. 대신 나도 너 속 시원해 할 만한 거 하나 해줄게.” 정채영이 나쁜 미소를 지으며 권해솔에게 윙크했다. “뭘 하든 조심해. 괜히 건드렸다가 물리지 말고.” “당연하지.” 다음날. 강현수는 결혼식의 신부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알리기 위해 회사에서 주최한 발표회에 참석했다. 물론 권설아도 함께 말이다. 미리 얘기해뒀던 순서가 되고 두 사람은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으며 단상 위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얘기를 꺼내려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사나운 개 두 마리가 발표회장 안에 나타났다. 개들은 다른 사람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오직 강현수와 권설아에게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예쁘게 차려입은 보람도 없이 개들에 의해 옷이 넝마가 되어버렸다. 심지어 권설아는 허겁지겁 기어가다가 신발까지 빼앗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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