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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강재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한쪽에 조용히 서서 그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았다. 자리를 떠나려다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고개를 숙여 주다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따뜻한 숨결이 귓불에 스며들었고 그는 오직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무서워하지 말아요, 제가 항상 곁에 있잖아요.” 주다인의 몸이 살짝 떨렸다. 부모님 앞에서 그런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강재혁의 대담함에 놀랐고 여전히 그에게 화가 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 안에서 감정의 떨림이 느껴진다는 사실에 스스로 더 놀랐다. 강재혁은 더 이상 그곳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다. “송 대표님, 사모님,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다인은 이윤희의 손에 이끌려 경찰서에서 나와 송씨 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송하준은 자신의 분노를 억누르고 있었다. 송씨 가문에 도착하자 송하준은 먼저 차에서 내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거실로 들어갔다. 이윤희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말했다. “여보, 당신 막 퇴원한 지 얼마 안 됐어요. 너무 화내지 마세요.” 송하준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몇 걸음에 이내 거실로 들어섰다. 이때 송청아는 주방에서 요리를 도와주고 있었고 아버지가 돌아오자 그녀는 귀여운 앞치마를 입고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빠, 엄마, 오셨어요?” 송하준은 송청아의 목소리를 듣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그녀 모습에 송하준은 몸이 떨렸다. 발끝부터 머리까지 차가운 기운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송씨 가문에서 20년 넘게 함께 산 아이가 맞는가?’ 지금 송하준은 송청아가 매우 낯설게 느껴졌다. 송하준의 긴장한 얼굴을 보자 송청아의 눈빛에 미세한 불안이 스쳤다. ‘그럴 리가 없어.’ 달라는 돈은 다 주었으니 그들이 배신할 리는 없었다. “송청아, 네 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아?” 송하준의 말을 듣고 송청아는 얼굴이 하얘지며 곧바로 눈빛이 흔들렸다. “언니가 학교 실험실에서 납치당했다는 인터넷 기사를 봤어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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