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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이윤희가 뼛속 깊이 새긴 그 점, 그건 수십 년간 그녀가 친딸을 찾아 헤매며 의지해온 가장 확실한 단서였다. 그리고 오늘, 스쳐 가는 20년 세워 속에 처음으로 그 점을 선명하고 확실하게 눈으로 확인했다. 팔뚝에 선명하게 자리 잡은 그 자국은 아무리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았다. 이윤희의 마음 한구석에 복잡한 감정이 치밀었지만 눈빛에 피어오르는 희망까지는 누르지 못했다. “다, 다인 씨.” 이윤희는 애써 평정심을 유지하며 말했다. “혹시... 유전자 검사를 받아줄 수 있겠어요?” 그 말에 주다인의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은 뒤, 주다인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이렇게 오해가 깊어진 상황이라 그녀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고 그 외의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모님,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다인은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누구에게도 시선을 주지 않고 조용히 돌아섰다. 강재혁의 곁을 지날 때도 그녀는 머뭇거림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강재혁의 시선은 옆에 서 있는 송청아에게 닿아 있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녀 입가에 스친 그 조롱 섞인 미소를 강재혁은 놓치지 않았다. “사모님, 제가 다인 씨를 데려왔으니,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의 말에 이윤희는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오늘 그녀를 이 자리에 데려온 사람이 바로 강재혁이었기에 그녀의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갔다. 강씨 가문과 어릴 적부터 정해졌던 약혼. 만약 주다인이 정말 그녀의 친딸이라면 강재혁과의 결혼은 더 이상 송청아의 차지가 아니었다. “강 대표님, 오늘 데려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강재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떠났다. 연회장을 나섰을 때, 주다인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강재혁은 입술을 굳게 다물고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 빨리도 도망갔네.’ “송청아 철저히 감시해. 유전자 검사 결과가 반드시 정확해야 해.” 짧은 한마디에 비서는 곧장 그 뜻을 알아채고 고개를 숙였다. “네, 대표님!” 한편, 주다인은 멍한 얼굴로 택시를 타고 스타일링 룸으로 향했다. 그녀를 본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약간 놀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강재혁이 데려온 손님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혹시 메이크업이 마음에 안 드셨어요?” 주다인은 말없이 탈의실로 걸어가며 조용히 물었다. “제 옷 아직 안 치웠죠?” “네, 안쪽에 있습니다.” 주다인이 옷을 갈아입은 뒤 그것을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내밀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본능적으로 말했다. “그 드레스는 이미 강 대표님이 구입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제 것이 아니니까, 번거롭겠지만 돌려드려 주세요. 이건 세탁비예요.” 주다인은 가방에서 현금 몇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맞춤 고급 드레스인 만큼 세탁비도 적지 않았지만 주저함 없이 뒤돌아 나섰다. 스타일링 룸을 나온 그녀는 자신의 잔액을 떠올렸다. 이제 남은 돈도 얼마 없었기에 곧장 공유 자전거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장실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교수님이 마침 문을 열고 나왔다. 주다인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교수님의 얼굴빛이 확 바뀌었다. “또 너야?! 병원에 다시는 오지 말라고 했지! 여기서 뭐 하는 거야?!” 그의 볼은 분노로 부풀어 올랐다. “주다인, 어제 내가 한 말이 장난인 줄 알았어?!” 주다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여전히 담담히 입을 열었다. “약품 사용 내역을 조회하고 싶습니다. CCTV는 고장 났다고 하셨지만 약품 사용 기록은 남아 있을 테니까요. 사용 시각, 처방 내역, 전표도 남아 있잖아요.” 교수님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주다인, 이제 그만 포기해! 우리 병원은 너 같은 사람 두고 일할 여유 없어! 지금 당장 나가!” “교수님, 전 그저 제 결백을 밝히고 싶은 겁니다. 병원이 언제부터 이렇게 막무가내였죠?” “헛소리 마!” 위엄 있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병원장이 차가운 표정으로 걸어 나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공정함을 원한다고? 너 지금 누굴 건드렸는지 알기나 해? 송 회장님을 거의 죽게 만들어 논 주제에,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그의 말은 칼처럼 날카로웠다. “병원은 송글 그룹과의 관계를 유지해야 해. 주다인, 넌 오늘부로 정직 처리다. 병원 출입도 금지야!” 그 말은 주다인의 가슴을 세게 내리쳤고 그녀의 온몸을 떨리게 했다. 그녀는 입꼬리를 비틀며 쓴웃음을 지었다. 병원이 송글 그룹의 눈치를 보느라 그녀를 버린 것이었다. 오랜 시간 병원에 몸담으며 여러 차례 우수 의사로 뽑혔고, 밤낮으로 교대하며 헌신했고, 동료들과의 사이도 좋았는데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그럼 법적으로 제 결백을 증명하겠습니다!” 주다인은 말을 마치고 뒤돌아서며 병원을 나섰다. 병원장과 교수는 서로를 보고 비웃듯 말했다. “법적 대응? 송글 그룹에서 고소 안 한 것만 해도 다행이지.” 병원을 나서려던 그녀는 또다시 익숙한 얼굴을 마주쳤다. 그녀가 차가운 표정으로 무시하고 지나치려 했지만 심진우는 그 순간 그녀에게 시선이 사로잡혔다. 그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자세히 들여다보더니 주다인이 맞음을 확신했다. ‘언제... 이렇게 예뻐졌지?’ 아르마니 슈트를 걸친 그는 여전히 부잣집 도련님의 오만한 태도를 잃지 않았다. “주다인, 뭐야? 병원에서 잘리고 나선 얼굴 팔아서 돈 버는 거야?” 그 한마디에 주다인의 눈빛이 차갑게 바뀌더니 고개를 들고 비웃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뭘 하든 네가 간섭할 일 아니잖아?” 심진우는 얼굴이 일그러져서는 이를 악문 채 말했다. “주다인, 사과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 지금 네 처지를 아직도 모르겠어?!” 주다인은 그의 호의를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네가 나설 일은 더더욱 아니야.” 그녀가 받아치자 심진우는 성큼 다가오며 그녀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고는 그 매끈한 얼굴을 천천히 훑으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처음부터 이렇게 꾸미고 다녔으면 내가 쉽게 질리진 않았을 텐데!’ ‘몇 년은 더 즐겼을 거야.’ “주다인, 나한테만 잘하면 병원 쪽 문제 해결해줄 수 있어. 어때?” 주다인이 턱이 아파 물러서려는 순간, 저 멀리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진우 씨, 계약서는 이미 준비됐습니다...” 주다인이 소리를 따라 시선을 돌리던 순간, 온몸이 굳어버렸다! 눈동자엔 숨기지 못한 혐오가 번지더니 거칠게 그의 손을 뿌리치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심진우, 날 이렇게 몰아세워 굽히게 하려는 거야? 넌 짐승이야, 알아?” 그 말에 심진우는 어이없다는 듯 발끈했다. “주다인, 감히 나한테 그딴 식으로 말해?” “개소리 그만하고 꺼져줄래?” 그녀가 말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 심진우가 그녀의 허리를 확 끌어당기더니 입술에 입을 맞추려 고개를 숙였다. “주다인, 내가 보내준다 그랬냐?” “찰칵!” 플래시가 터지며 한 남자의 나른한 목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오호라, 심씨 가문 도련님이 연약한 여자한테 강제로 키스라도 하려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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