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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다음 순간, 양정국의 지팡이가 공중을 가르며 내리쳤다. “이 자식! 누구 허락받고 진태웅을 조사한 거야? 살기 싫어졌어? 죽고 싶으면 그렇게 어렵게 할 필요 없어. 내가 지금 바로 처리해 주마!” 지팡이에 이마를 정통으로 맞은 양도형은 분노가 치밀었지만 아버지의 광포해진 모습을 보고는 꼬리를 내렸다. “아버지, 갑자기 왜 때리시는 거예요? 저도 지안이를 위해서 한 말인데 그렇게까지 심각할 일도 아니잖아요!” “아직도 심각하지 않다고?” 양정국은 냉소를 흘리며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 “진태웅의 신분은 네가 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아. 다른 걸 더 캐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 안 그랬으면 아비인 나도 널 구해줄 수 없었을 거야!” “이 혼담이 우리 양 가문에 큰 이익이 된다는 것만 알면 되지 나머지는 괜히 캐지 마!” 양정국의 차가운 어조에는 농담 따위는 전혀 없었다. 이런 중대한 경고에 양도형의 표정도 굳어졌다. 그의 동생 양준혁, 즉 양지안의 아버지는 이미 여러 해째 집에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지금은 어딘가에서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일 테고 신분도 특수할 터였다. 양도형은 예전부터 동생이 최소한 ‘사령관' 급은 될 거로 추측해 왔다.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니 진태웅의 신분은 최고 사령관보다도 더 높은 모양이었다. 아버지가 진태웅을 대하는 태도를 떠올리던 양도형은 갑자기 뭔가 가능성이 떠올라 놀라며 말했다. “아버지, 진태웅이 설마 백록시의 그분인가요...” “알고만 있어. 이 일은 절대 밖으로 발설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태도가 모든 것을 증명했다. 양도형은 차가운 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이 혼사가 양씨 가문 쪽에서는 오히려 높은 분을 모시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던 은미숙은 어리둥절했지만 더 묻지는 않았다. 어르신이 내리신 결정이라면 분명히 틀림이 없을 테니 말이다. “할아버지, 큰아버지, 우리 왔어요! 엄마도 계시네요.” 진태웅의 팔을 끼고 방에 들어간 양지안은 어머니도 계신 것을 보고 바로 다가갔다.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어머니가 안 올 수 있겠어?” 은미숙은 딸을 다정하게 바라보고는 진태웅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네가 바로 태웅이구나.” 이때 진태웅은 조금 긴장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이건 연기였기 때문에 들통나면 양지안의 집안뿐만 아니라, 자기 아버지 쪽에도 큰 문제가 될까 봐 걱정이었다. “할아버지, 어머님, 큰아버님. 안녕하세요.” 진태웅은 예의 바르게 인사한 후 준비한 선물을 내려놓았다. “이젠 한 가족인데 그렇게 긴장하지 마. 태웅아, 여기 앉아. 혼인 증명서는 받았어? 할아버지에게 보여줘 봐.” 양지안이 건네준 혼인 증명서를 받아든 양정국은 얼굴에 흐뭇한 미소를 띠었다. “좋아, 좋아. 내가 퇴원하면 직접 너희들의 결혼식을 치러주마. 내년에는 애까지 낳아서 이 할아버지의 소원을 풀어주렴.” “할아버지!” 양지안은 얼굴을 붉히며 투정을 부렸다. 식사 분위기는 매우 즐거웠지만 진태웅은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특히 은미숙의 뜨거운 시선은 사위 보는 처가댁 눈길인 만큼 볼수록 더 흐뭇해하는 눈빛이었다. 진태웅이 의아한 것은 양도형의 태도가 180도 달라져 이상할 정도로 친절해진 점이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이미 9시가 넘었고, 양정국은 양지안에게 진태웅을 배웅하라고 특별히 당부하며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차가 솔빛 아파트에서 두 골목 떨어진 곳, 길 한가운데 막혀 버렸다. “여기까지만 바래다 드리죠. 근처는 오래된 주택가라 이 시간엔 길이 막힐 거예요. 제가 걸어 들어가면 돼요.” 진태웅이 제안했다. 하지만 양지안은 오히려 핸들을 돌려 길가에 차를 세우며 말했다. “제가 같이 갈게요. 이제 우리는 부부인데 자기 남편이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면 안 되잖아요.” 양지안이 씩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아내'라는 역할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진태웅도 상대방이 농담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연기를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로 조금 더 알아가는 것도 나쁠 건 없을 것 같았다. “가요.”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거리를 걸었다. 전혀 어색함이 없었고 행인들은 가끔 부러운 눈길까지 던졌다. “여기 인간미가 정말 짙어요. 아파트에 빈방 없을까요? 가끔 여기서 지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사람들로 북적이는 활기찬 분위기를 느끼며 양지안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이곳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다 매진됐을 거예요. 게다가 이 단지는 외부인에게 임대도 안 해요.” 진태웅이 설명을 덧붙였다. 솔빛 아파트 주민들의 신분은 조금 특수했다. 비록 집값은 저렴했지만 아무나 입주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런 대답을 들은 양지안은 의아한 눈빛으로 진태웅을 바라보았다. “그 말은 태웅 씨도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거네요.” “당연하겠죠. 태웅 씨처럼 진짜 실력 있는 명의라면 원하는 건 뭐든 쉽게 얻을 수 있겠네요.” 진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양지안을 데리고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앞까지 다다르기도 전에 진태웅의 표정이 갑자기 복잡해졌다. 집 앞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한 것이다. “손윤서? 너 어떻게 여기 찾아온 거야?” 진태웅을 발견한 손윤서 역시 표정이 밝지 않았다. 특히 진태웅 옆에 다른 여자가 서 있는 것을 확인했을 때는 더욱 그러했다. 게다가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여자라니! 손윤서의 강주 지역 인맥과 영향력으로 진태웅의 거처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내가 정말 당신을 얕봤나 보네요. 이제 막 이혼했는데 벌써 다른 여자를 데려오다니요. 내가 당신을 너무 몰랐던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너무 잘 숨겼던 건가요?” 손윤서는 비꼬는 듯한 시선으로 진태웅을 노려보며 말했다. “보아하니 벌써 다음 상대를 구해놓았던 모양이군요. 내가 더 빨리 이혼을 요구했어야 했나요? 그래야 당신들이 방해받지 않고 잘 될 텐데.” 첫 만남부터 비웃음과 냉소가 쏟아지자 진태웅의 표정도 싸늘해졌다. 양지안은 두 사람의 대화에서 핵심 정보를 파악했다. 그녀는 즉시 진태웅의 팔을 친근하게 잡더니 환하게 웃으며 손윤서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바로 손윤서 씨군요. 태웅 씨가 전에 당신에 대해 말한 적 있어요. 오늘 무슨 일로 찾아왔어요? 특별히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다른 날 다시 오는 게 어때요?” 말을 마치고 난 그녀는 진태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보, 나 방금 덜 먹었더니 배고파요. 집에 가서 밥해줄래요?” 달콤하고 아린 듯한 목소리가 진태웅의 귓가에 닿자 그는 흠칫하며 몸을 떨었다. ‘이 요정 같은 여자라니!' 양지안은 원래 외모가 매우 아름다웠는데 몸매도 빼어났다. 게다가 이 여자는 자신의 매력을 전혀 자각하지 못한 채 거의 진태웅에게 달라붙을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평범한 남자라면 누구라도 견디기 힘든 상황이었다. 맞은편에 서 있던 손윤서는 이 광경을 보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왠지 모르게 그녀의 가슴은 무언가에 의해 격렬히 찔린 듯한 아픔을 느꼈다. 손윤서는 진태웅을 바라보면 볼수록 낯설게 느껴졌다. 마치 지난 3년간의 동거가 모두 거짓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내가 당신을 찾아온 건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예요. 엄마와 태우를 때린 게 당신이에요? 내가 이혼을 요구했다고 이렇게까지 복수하려는 거예요?” 손윤서는 지금 당장 해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지안이 무언가 떠올린 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못 알았네요. 당신 엄마를 때린 건 태웅 씨가 아니라 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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