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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같은 시각, 집으로 돌아온 백수영과 한여름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초조한 얼굴로 내려오는 한성태를 발견한다. “아니, 서 비서님. 이건 얘기 다 끝난 일 아닙니까? 갑자기 프로젝트 취소라고 하시면...” 통화 내용을 들은 백수영과 한여름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서로를 마주 보는 시선에 불안함이 가득했다. “아빠.” 한여름이 다가가려 했지만 한성태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최대한 침착한, 그리고 어딘가 비굴한 말투로 말했다. “저희 쪽 단가가 너무 높아서 그러십니까? 그럼 다시 가격 협상하시면 되죠. 원하시는 가격에 충분히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저희는 진심으로 강성 그룹과 일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수화기 저편의 서 비서가 무엇이라고 말한 건지 순간 한성태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리더니 다리에 힘이라도 풀린 듯 스르륵 현관에 주저앉았다. 백수영이 다급하게 그 곁으로 다가갔다. “여보, 이게 무슨 일이에요?” 머리를 부여잡은 한성태가 짜증스레 대답했다. “무슨 일? 알 게 뭐야. 강성 그룹 쪽에서 갑자기 전화가 와선 프로젝트를 취소하겠대! 얘기 전부 끝난 일인데!” 그리고 뭔가 생각난 건지 한성태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당신 여름이랑 같이 강씨 저택으로 갔었지? 그 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순간 백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묻는다는 건 강성 그룹 측에서 정확한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떻게 변명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그때 한여름이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은요. 저희는 이현 사모님 얼굴도 못 봤는걸요.” 그리곤 백수영의 팔을 꼭 잡았다. ‘엄마, 제발... 가만히 좀 있어주세요...’ 이에 별 의심 없이 넘어간 한성태는 얼마 남지 않은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이번 기회에 강성 그룹에 줄을 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우리도 이제 진짜 재벌이 되는 건가 싶었는데 도대체 왜 이러는 거냐고! 안 되겠어. 이대로 넘어갈 순 없어.” 말을 마친 한성태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문을 박차고 나섰다. 한성태의 뒷모습이 사라진 뒤에야 백수영이 입을 열었다. “아니, 왜 말을 못 하게 해. 가을이 그 계집애가 벌인 일일 수도 있잖아.” “엄마!” 솔직히 한여름은 아직도 그 일말의 희망을 버리지 않은 상태였다. “솔직히 집으로 오면서 잘 생각해 봤는데 강 대표님이 정확히 가을 언니가 자기 딸이라고 한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잘못 들은 건 아닐까요?” 집에서 쫓겨난 강가을이, 이제 거지처럼 비참하게 살 거라 생각했던 강가을이 최고의 재벌인 강씨 가문의 딸이었다는 사실을 한여름은 믿을 수 없었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네가 뭔데.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잘못 들을 리가 없잖아. 그리고, 딸이 아니라면 강성 그룹 쪽에서 왜 갑자기 프로젝트를 중단하겠다고 나섰겠어? 집사는 왜 그런 말을 한 거고?” 반면 백수영은 강가을이 그쪽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고 확신했다. ‘이 모든 게 우연일 리가 없어.’ 그리고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귀한 강씨 가문 딸을 지금까지 키워온 은혜의 대가를 어떻게 받아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으니까. “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생각 좀 해보세요. 정말 언니가 그쪽 집안에서 잃어버린 딸이라면 따로 사람이라도 보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전에 아빠가 언니 친부모님한테 연락한 적이 있었는데 분명 산골이라 신호도 잘 안 터진다고 했었다고요. 뭔가 이상하잖아요.” 한여름은 최선을 다해 백수영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설득했다. “강 대표님이 갑자기 화를 내신 건 저희가 그 집에서 소란을 피웠기 때문일 거예요. 그리고 프로젝트 취소도 그냥 우연이겠죠. 이렇게 큰 프로젝트에 사적인 감정을 담는다는 게 말이나 돼요?” “정말... 그런 걸까?” 어느새 한여름에게 세뇌당한 백수영의 목소리가 살짝 떨려왔다. “분명 그런 거겠죠.” 그리고 한여름은 휴대폰을 꺼냈다. “아까 단톡방에서 그러는데 모레 강씨 가문에서 파티를 열어 되찾은 딸을 공개할 예정이래요. 그 초대장만 구하면 모든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 한여름의 말에 백수영은 눈에 띄게 망설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젝트까지 취소된 마당에 그쪽에서 먼저 초대장을 보낼 리가 없었으니까. “만약 언니가 그쪽 집안 딸이 아니라면 오해를 풀면 되는 일이에요. 그럼 프로젝트를 다시 이어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파티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일 테고 보는 눈이 많으니 강 대표님께서도 쉽게 거절하진 못할 거예요.” 한여름이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만에 하나... 언니가 정말 그쪽 집안 딸이라고 해도 우리가 밀릴 건 없어요. 십 년 넘게 딸을 키워준 사람한테 감사 인사는 못할망정 바로 내친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언니도 친부모님을 찾았다고 지금까지 키워준 부모님을 모른 척할 사람도 아니고요.” 한여름의 말에 백수영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그래,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강가을이 그게 강씨 가문 딸이 맞든 아니든 우리한테는 나쁠 게 없어.’ “그래. 네 말이 맞아. 가을이 걔가 정말 그쪽 집안 딸이라고 해도 보는 눈이 많으니 우릴 대놓고 내쫓지는 못하겠지. 프로젝트는 물론이고 다른 물질적인 보상을 해줄지도 몰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맞는 말인 것 같아 순간 백수영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초대장은 내가 어떻게든 구해 볼 테니까 아빠랑 같이 가는 게 좋겠다. 넌 얼른 드레스나 맞춰. 모레 예쁘게 입고 가야지.” 강씨 가문이 주최하는 파티라면 해성시에서 내놓으라 하는 이들이 모두 모일 테니 그중에서 딸인 백여름이 모든 이들의 시선을 끈다면 좋은 집안 자제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쑥스러운 듯 고개를 숙이는 한여름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 한편, 백수영, 한여름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강가을은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김영애의 안내를 받아 새 방으로 향했다. 3층 구석쯤 위치한 방, 벽으로 두 개의 공간으로 나뉜 방은 온갖 레이스가 가득한 공주풍 인테리어에 인형, 심지어 구석에는 유모차까지 보였다. “원래 네 방으로 쓰려던 곳이었는데 아주버님이 사람들한테 손도 못 대게 하셨어. 그래도 이제 네 나이에는 안 맞을 것 같아서 당분간 다른 방에서 지내고 제대로 손 볼 생각이었는데 마음 상했다면 미안해.” “아닙니다.” 김영애가 강가을의 팔짱을 꼈지만 그녀는 자연스레 팔을 빼버렸다. 선을 긋는다는 걸 느낀 건지 순간 표정이 굳어진 김영애는 대충 몇 마디 당부한 뒤 방을 나섰다. 그리고 방을 나선 순간, 온화하던 미소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방을 돌아보는 눈빛에 어딘가 서늘함까지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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