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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여... 여기는 안 돼요...” 유하연은 지금 어두컴컴한 드레스룸에 있었다. 이 각도에서 유하연은 뒤에 선 사람을 볼 수 없었지만 남자의 뜨거운 손길이 허리에 닿은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처음도 아니었지만 유하연은 여전히 적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지금 그녀 옆에 있는 남자는 명의상 유하연의 오빠였다. 오누이에서 애인까지, 그 과정은 유하연에게 돌이키기 싫은 악몽과도 같았지만 유도경은 매번 이런 방식으로 유하연에게 두 사람의 관계가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는 관계임을 알려줬다. 유하연은 몰려오는 수치심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유도경이 턱을 꼬집는 바람에 억지로 고개를 들 수밖에 없었다. “눈 떠.” 유도경의 목소리가 잠겨 있었다. 그가 원하는 건 유하연이 말짱한 정신으로 이 모든 걸 감내하고 버텨내는 것이었다. 별다른 방법이 없었던 유하연이 태도를 굽히며 애원했다. “제발 부탁이에요... 적어도 집에서는...” 여긴 유씨 저택이었기에 김희영이 아직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하연은 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어떤 폭풍우가 휘몰아칠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유도경이 몸을 숙이더니 유하연 귓가에 속삭였다. “벌이야.” 중심을 잃은 유하연이 바닥에 쓰러졌다. 처첨한 유하연과는 달리 유도경은 그저 옷만 흐트러졌기에 대충 정리하고 나니 다시 도도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정교한 외모는 조각과도 같았고 차갑고 까만 눈동자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박감은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로 끌려와 한참 동안 시달린 유하연은 힘들어 미칠 지경이라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유도경이 입을 열었다. “유채린과 심윤재 다음 달에 약혼해.” 유도경이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말은 마치 무거운 돌멩이처럼 유하연의 목구멍을 막히게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유하연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유도경의 차가운 그녀의 뒤통수에 꽂혀있음은 알 수 있었다. 유하연은 아무런 정서를 드러낼 자격이 없었기에 그저 입꼬리를 올리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잘됐네요.” 어차피 심윤재와 이어질 가능성은 없었다. 이건 3년 전 심윤재와 잠자리에 들 때부터 알아채야 했다. 유도경이 차갑게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번엔 유하연도 웃었다. “내가 어쨌으면 좋겠는데요? 유채린의 결혼식을 도와주면서 심윤재에게 아무런 감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증명해야 하는 건가요?” 유하연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빛으로 유유히 입을 열었다. “아니면 결혼식 가서 난동을 부리면서 신부는 나였어야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라도 지를까요?” 유도경의 차가운 시선을 느낀 유하연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나도 체면이라는 게 있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요... 유씨 가문이 나를 20년이나 넘게 길러줬는데 더 바라면 내가 나쁜 사람이죠.” 유도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유하연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알면 됐어. 난 이 약혼식이 아무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면 하거든.”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밖에서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어딨어?” 유채린의 목소리에 유하연이 바짝 긴장하며 허리를 빳빳이 세웠다. 유채린이 가까워지자 유도경이 차가운 눈빛으로 유하연을 쏘아봤다. 의도가 분명한 눈빛은 마치 유하연에게 알아서 잘하라는 것처럼 보였다. 유도경은 그렇게 유하연만 남겨둔 채 밖으로 나갔다. 유채린이 유도경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 “오빠, 한참 찾았잖아. 전화도 안 받고. 약혼식에 입을 드레스 샘플을 받았는데 엄마가 같이 봐달래.” “그래.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다 사.” 유채린을 대하는 유도경의 말투는 아까와는 달리 많이 부드러워졌고 하는 말에 종종 대꾸도 해줬다. 바깥에서 들리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유하연은 덤덤한 눈빛으로 벽을 짚고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도경은 오빠로서 완벽한 사람이었다. 적어도 동생을 위해서 그녀를 이런 금단의 관계에 빠지게 했으니 말이다. 3년 전, 유채린이 유씨 가문으로 찾아와 그녀야말로 유씨 가문의 잃어버린 딸이라며 병원에서 실수하는 바람에 유하연이 유씨 가문의 딸로 살게 됐다고 말했다. 유하연은 믿지 않았지만 유도경이 얼굴에 던진 친자감정서를 보고 결국 믿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유채린은 심윤재에게 한눈에 반해버렸고 어렵게 되찾은 딸에게 죄책감을 느꼈던 부모님은 바로 심씨 가문으로 찾아가 약혼자를 바꿔버렸다. 심씨 가문은 유하연을 원한 게 아니라 유씨 가문 아가씨를 원했기에 별다른 의견 없이 동의했지만 심윤재는 반대했다. 하여 폭풍우가 몰아치던 밤, 유도경이 방으로 찾아와 억지로 유하연을 탐했다. 그날부터 유하연은 유도경에게 단단히 갇히고 말았고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동생이 아닌 노리개가 되고 말았다. 유도경은 잔인하기 그지없는 수단으로 그녀가 어떤 쓰임인지 머리에 각인시켰다. 옷을 갈아입은 유하연이 드레스룸에서 나오는데 거실에 앉은 유채린이 김희영 옆에 앉아 잡지를 펼치며 함께 봐달라고 애교를 떠는 게 보였다. “엄마, 아까 그거 너무 수수하지 않아요? 약간 부해 보이기도 하고. 한 번만 더 봐줘요.” 유도경이 찻잔을 들더니 마시지는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 “다음주 브랑스에서 드레스 전시회가 열릴 거야. 마음에 드는 거 없으면 그때 가서 골라도 돼.” 유채린이 환호하며 말했다. “좋아. 오빠도 같이 가줄 거지?” “아이고. 오빠 좀 그만 괴롭혀라. 회사 일로도 바쁜데 언제 너랑 전시회를 다녀오니?” 김영희가 화난 척 유채린의 등을 때렸지만 얼굴엔 자애로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유하연을 발견하고는 그녀를 불렀다. “하연아. 계속 안 보이던데 어디 갔었어?” 김영희는 늘 유하연을 잘해줬다. 유채린이 돌아오고 나서도 유하연을 딸로 인정했고 유씨 가문은 그녀의 영원한 집이라고 말했지만 유하연은 유도경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직장을 찾은 뒤 바로 이사 나갔다. 이번에 그녀를 다시 집으로 부른 것도 유채린의 허영심 때문이었다. 유채린은 지금 유하연에게 심윤재와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아름다운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지 자랑하고 싶어 했다. 유하연이 억지로 웃었다. “몸이 불편해서 방에서 쉬고 있었어요.” 유채린이 비꼬기 시작했다. “흥. 몸이 불편한 거야, 아니면 마음이 불편한 거야.” 유도경이 찻잔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었다. 그 눈빛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유하연은 온몸에 닭살이 돋는 것 같아 얼른 시선을 돌리며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어젯밤에 창문을 열어놓고 잤더니 미열이 있어요.” “너도 참. 혼자 살면 몸이라도 잘 챙겨야지.” 김영희가 유하연을 걱정하자 유채린이 바로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언니 얼굴 보기 참 힘들다. 엄마가 그렇게 전화하는데도 한번을 오지 않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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