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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장

허유정이 말했다. “학교 다닐 때 나랑 잘 안 맞던 동창이에요. 학교 졸업한 뒤에도 이상하게 자꾸 날 저격하더라고요. 토요일 저녁에 나랑 같이 동창회 가면 알게 될 거예요.” 김정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심가은이라는 이름을 묵묵히 머릿속에 새겼다. 어쨌든 아내를 괴롭히는 인간은 그게 누구든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이때, 개 짖는 소리가 입구에서 들려왔다. 어차피 대문 근처에 있었기에 허유정은 직접 가보기로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사다리를 내렸다. 그러고는 망고 하나를 손에 들고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대문 앞에 언뜻 봐도 새 차로 보이는 외제차 한 대가 서 있었다. 농장을 지키는 셰퍼드들이 경계를 바짝 세우고 차를 향해 짖어대고 있었다. 운전자는 개들의 기세를 보고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다가 허유정을 발견한 뒤에야 어색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개들이 우르르 그에게로 달려들었다. “멈춰!” 허유정이 큰 소리로 외치자 운전기사 코앞까지 달려갔던 개들이 이내 방향을 돌려 그녀의 옆으로 달려와서 꼬리를 흔들었다. 건장한 체구의 운전기사는 자신을 흉흉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개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렸다. “아저씨, 긴장하지 마세요. 애들이 좀 사나워 보여도 제 앞에서 사람을 물지는 않아요.” 그 말에 운전기사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몇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드니 겁이 나긴 하네요. 혹시 허유정 씨 되시나요?” “네, 맞아요. 과일 주문하러 오셨나요?” 그녀의 질문에 운전기사가 농장을 둘러보며 답했다. “아니요. 허유정 씨를 만나보고 싶어하는 분이 계셔서 모시고 왔습니다. 농장이 참 크네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요.” 과일 농장은 원래 600그루가 넘는 망고 나무를 재배하고 있었다. 허유정은 농장을 인수한 뒤에 땅을 더 확장하고 새로 딸기와 다른 과일들까지 재배했다. 하지만 몇 년을 공들인 거에 비하면 아직 본전은 뽑지 못한 상태였다. 뒷좌석 차 문이 열리고 운전기사가 노인 한 명을 부축해서 차에서 내렸다. 대략 70대 중후반 정도의 노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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