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김정호는 김정민 곁에 있는 비서가 임 무슨 진이라고 하는 건 알았는데 상대의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다. 성을 기억하고 있는 건 그 비서가 김정민 곁에 제일 오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처음에 임 비서도 많이 혼났지만 인내심이 좋아서 결국 임효진이 믿는 비서가 되었다.
'임 비서가 유정 씨랑 친구일 줄은 몰랐네.'
"원우 그룹을 들어본 적이 있어요, 유정 씨 친구가 그곳에서 출근할 수 있다니 대단하네요."
'김정민의 성격을 받아줄 수 있다니, 대단하네.'
"효진이가 회사에 갓 들어갔을 때, 아주 힘들었는데 다 이겨냈어요."
임효진이 원우 회사에 갓 들어갔을 때, 허유정한테 상사가 아주 지랄맞다고, 얼음처럼 차갑다면서, 상사가 있으면 여름에 에어컨을 안 틀어도 차갑다고 욕한 적이 많았었다.
게다가 대표님이 항상 문을 열고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직원들이 게으름 피우지 못하게 감시하는 거라고 했었다.
하여튼, 임효진이 김정민 옆에서 자리 잡은 건 정말 쉽지 않았다.
김정호는 웃어 보였고 그는 와이프의 말을 믿었다.
그가 누구보다도 김정민을 잘 알고 있었다.
허유정은 남편이 가져다준 아침을 먹고 과일을 더 따려고 했는데, 시간을 보니 친구가 올 시간이 되어 나무에 오르는 걸 포기했다. 어차피 직원을 많이 불러서 과수원을 관리했기에 그녀가 직접 따지 않아도 물건을 건네는 데는 문제 없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허유정의 휴대폰이 또 울렸고 발신자를 본 허유정은 김정호를 보며 말했다.
"정호 씨, 효진이가 대표님이랑 같이 왔어요, 같이 마중 나가요."
사냥개 몇 마리는 진작에 쫓아 나갔고 사냥개를 관리하던 직원도 따라 쫓아 나갔다.
직원이 사냥개보다 빨리 뛰지 못했기에 그가 과수원 어구에 도착했을 때, 사냥개들이 일렬로 서서 김정민을 보며 짖고 있었지만 다가가지는 못하고 있었다.
임효진은 옆에 있는 도도한 남자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대표님, 그 얼굴과 기질을 개도 무서워하네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처음 왔을 때, 사냥개들이 모두 달려들어서 다들 많이 놀랐거든요."
그녀가 처음 왔을 때, 혼자 오기 무서워서 허유정이 같이 데리고 들어왔었다. 사냥개는 예쁘게 생기든 말든 다 똑같이 덮치기 때문이었다.
사냥개들이 사람 말을 알아듣는 것처럼 훈련되었기에, 사람을 덮쳐도 물지는 않았다. 하지만 덮치기만 해도 사람들이 충분히 놀라서 바지에 실수할 정도였다.
김정민이 머리를 돌려 임효진을 노려보자 임효진은 얼른 진지한 척하며 사냥개들을 혼냈다.
사냥개를 관리하던 직원도 뛰어왔는데 임효진을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효진 씨 왔네요."
"네, 제가 대표님이랑 같이 과수원 보려고 왔어요, 유정이는요?"
말하고 있는데 허유정이 나왔고, 임효진이 뛰어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한동안 못 봤더니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잖아. 양심도 없는 계집애, 이렇게 오래 지났는데 날 찾지도 않고, 오피스텔에 리치만 보내고 말았잖아."
임효진은 허유정을 원망했다.
과수원을 청부 맡은 친구가 있는 좋은 점은 바로, 과일이 성숙했을 때마다 친구가 신선한 과일을 몇 바구니 가져다준다는 것이었다.
아주 충분할 정도로 말이다.
"바빠서 그런 거잖아."
허유정은 친구를 밀어내고 안경을 위로 밀고는 옆에 있는 남편을 임효진한테 소개했다.
"효진아, 내 남편 김정호 씨야."
임효진은 김정호를 보자마자 그가 아주 과분할 정도로 잘생긴 것 같았고 다시 보자 익숙한 느낌이 들었고 마치...
그녀가 머리를 돌려 도도한 상사를 보았는데 두 사람이 닮은 것 같았다.
'아마 둘 다 눈이 커서 그런가 보네, 김정호 씨는 아주 다정한 것 같아. 매일 낯빛이 어두워서 누가 몇조를 빚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대표님과는 달라.'
"정호 씨, 안녕하세요, 유정이 친구 임효진입니다."
임효진은 김정호한테 인상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맞선 보자마자 결혼한 거네, 이렇게 좋은 남자를 나라도 바로 혼인 신고했겠어.'
그녀는 김정호한테 손을 내밀었고 두 사람은 서로 악수했다.
임효진은 김정민을 부부한테 소개해 주었다.
김정민은 자기 형님의 시골 여자의 남편이 된 걸 보고 깜짝 놀랐지만 전혀 티 내지 않고 진중하게 표현했다. 형제는 서로 눈빛을 보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
"김 대표님, 들어가시죠."
허유정은 김정민이 과수원으로 들어가자 자기가 과수원에서 묶던 방으로 가서 차를 꺼내 대접했다.
임효진은 친구가 차를 꺼내자 낯빛이 변했다. 그녀의 상사가 차를 마시지 않는다는 걸 친구한테 귀띔해주 어야 했는데 이미 늦어버렸기에 하는 수 없이 친구가 자기와 상사한테 차를 대접하는 걸 보고만 있었다.
상사의 얼굴에 불쾌한 표정이 없이 허유정이 건넨 차를 받고 두 모금 마시고 나서야 임효진은 안심이 되었다.
상사가 성격이 지랄맞았지만 대단한 가문 출신이었다. 김씨 가문은 광주 재계 1위였기에 김정민은 수양이 있어 바로 허유정한테 화를 내지 않았다.
김정민은 자기 비서의 생각을 모르고 있었다. 그는 그저 형수가 차를 따라 주었는데 마시지 않으면 형님이 나중에 자기를 혼낼 것 같아 마신 거였다.
그가 차를 마시지는 않지만 형수의 체면은 챙겨주어야 했다.
몇 마디 나누고 나서 허유정이 바로 리치를 따러 갔고 임효진도 따라나섰다.
"유정아, 내가 까먹고 말 못 했어. 저 빙산이 차를 안 마셔, 평소에 회사에서 누가 차를 대접하면 찻잔을 머리에 던질 정도야. 아까 깜짝 놀랐어, 다행히도 빙산이 차를 두 모금 마셨어."
그 말을 들은 허유정은 깜짝 놀랐다.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 여기 좋은 차가 없어서 내가 심은 차를 준 거야, 아주 썼을 텐데."
임효진은 멈칫했다.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봐."
허유정이 심은 차는 쓴맛이 강하지만 정신을 차리게 했기에 그녀는 자기가 심은 차를 좋아했다.
"괜찮아, 두 모금 마셨으니까 뭐라 안 할 거야."
허유정은 임효진과 함께 리치를 따러 갔고 따면서 말했다.
"평소 네 상사가 어떻다고 하더니, 오늘 직접 보니까 너 정말 수고했네. 그분 밑에서 이렇게 오래 일하고 월급도 많이 인상 받았잖아."
"성격을 다 알고 나니까 별거 없었어."
임효진은 리치를 따면서 먹고 있었다.
'너무 달아!'
리치의 품종은 아주 많았지만 지금 먹을 수 있는 건 히코소, 양귀비와 같은 일찍 익는 품종들이었다.
히코소는 달달하면서도 쓴맛이 있었는데 임효진은 그걸 제일 좋아했기에 히코소를 한웅큼 따서 계속 입에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