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잊혀진 사랑잊혀진 사랑
에:: Webfic

제9장

그나마 평온해졌던 마음이 다시 바닥으로 가라앉은 기분으로 인해 나는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더 짜증이 나진 육하준은 재차 손을 내밀었고 나는 소리를 질러버렸다. “건드리지 마!” 그 소리에 진료와 약 처방을 기다리고 있던 환자들의 시선을 끌게 되었다. 수많은 시선들은 우리의 불구경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눈빛이 음산해진 육하준은 나한테로 다가와 자그마한 목소리로 위협하고 있었다. “그냥 따라 나와! 다른 건 집에 가서 얘기해!” 나는 뒤로 물러선 뒤 더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싫어!” 육하준은 눈빛이 더 한층 어두워졌다. “유상미! 아주 날뛰고 있네! 앞으로 널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어!” 그의 높은 어조에는 위협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바라던 바야. 애초부터 네 관심 따윈 필요 없었거든.” 육하준은 또 한 번 나를 잡아당기려 했으나 그의 손이 내 어깨의 붕대에 닿는 순간 굳어버렸다. 그제서야 그는 방금 자신이 한 짓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그는 말투가 누그러들었다. “내가 실수로 널 다치게 한 건 미안해. 하지만 나도 화가 날 만한 상황인 건 아니야? 어쨌든 널 위해서 그런 거야. 착하지? 우리 집에 가서 얘기하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입꼬리를 올렸다. 육하준은 잠시 동안이나 내 답을 기다리지 못하자 눈썹을 잔뜩 찡그렸다. 나도 그가 어느 정도 물러섰다는 건 알고 있다. 도소희의 말로는 예전의 나였으면 육하준이 사과하기도 전에 울며 겨자 먹기로 용서를 빌러 갔을 것이라 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사랑에서 자존감을 잃어버린 예전의 내가 아니다. 사탕 하나에 온종일 기쁨에 가득 찬 아이도 아니고 말이다. 나의 침묵으로 인해 육하준은 제대로 화가 났다. 그는 싸늘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래! 유상미! 아주 좋아! 정 가기 싫으면 마음대로 해! 여기에서 누가 널 거둬주나 봐봐!” 나는 담담한 태도를 보였다. “그건 그쪽이 상관할 바는 아닌 것 같네.” 육하준은 갑자기 나한테로 돌진해 서늘한 어조로 말을 건넸고 나는 몸서리를 치게 되었다. “유상미! 오늘 고집 피운 걸 후회하지 마! 언제까지 버티나 봐봐!” “육 대표님?” 온화한 한 남자의 목소리는 나하고 육하준의 팽팽한 분위기를 깨뜨렸다. 육하준은 계산서를 들고 있는 목구빈을 유심히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예의 있는 어조로 답장을 했다. “목 대표님이시네요. 이런 모습을 보이고 참 난처하네요. 제 아내가 실로 대표님한테 무례를 범한 것 같아...” 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소리 없는 비난을 하고 있자 나는 억눌린 분노가 곧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목구빈은 천천히 걸어와 담담하게 임했다. “대표님, 별말씀을 다 하시네요. 상미는 제 동생이나 다름없는 애예요. 남한테 괴롭힘을 당하는데 오빠인 내가 나서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 말로 인해 나뿐만 아니라 육하준도 다소 충격을 입은 듯한 표정이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나를 힐끗하더니 재차 목구빈한테로 시선을 돌렸다. 손으로 나를 가리키고 있는 그는 미심쩍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표님, 얘를 알아요?” 목구빈은 고개를 약간 끄덕였다. “그럼요. 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 엄청 친해요.” 육하준은 믿을 수 없다는 태도였다. 나는 냉큼 목구빈의 뒤로 몸을 숨겼다. 육하준이 뭐라 더 물으려 하고 있는데 목구빈은 진작에 내 손을 잡고 다정하게 묻고 있는 중이었다. “아까 어르신이 팔을 다쳐서 마구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했어. 그리고 머리에 난 상처도 내일 핵자기 공명 검사를 받아야 하고 말이야.” 그가 자상하게 분부하고 있던 그때 육하준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대표님, 얘한테 속지 마세요. 아픈 거 아니에요.” 내가 반박을 하려는데 목구빈은 고개를 들어 육하준을 뚫어져라 주시하고 있었다. 봄바람 같은 온화한 눈빛은 즉시 카리스마로 돌변해 온몸의 기운마저 많이 차가워진 듯해 보였다. 육하준은 순간 놀란 듯 표정이 굳어졌다. 목구빈은 육하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대표님, 상미는 당신 와이프 아닌가요? 입원한 아내한테 찾아왔을 때 당신이 응당 먼저 해야 할 일은 얼마나 다쳤는지를 알아보는 건지 대놓고 의심하는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육하준도 목구빈이 나 대신 나서줄 줄은 몰랐었나 보다. 체면이 조금 구겨진다는 기분이 들었던 육하준은 피식하고 코웃음을 쳤다. “대표님도 H시에서 꽤 유명한 분이신데 왜 제 아내한테 관심이 많으세요? 저희 집안일에 끼어들 자격은 없으신 것 같은데요.” 그는 집안일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었다. 목구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안경을 손으로 밀어 올리며 답했다. “그러네요? 대표님 집안일이긴 하죠. 그런데 그 전에 대표님한테 귀띔해 줄 게 하나 있어요. 진 어르신은 이 병원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 터라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니잖아요. 그리고 상미가 이렇게나 심각하게 부상을 입었는데 상미 오빠한테 어떻게 설명하려고 해요?” 그는 점점 어두워지는 육하준한테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유인성이 자기 동생을 인정하지 않겠다고 했어도 상미는 유씨네 가문의 유일한 딸이에요.” 육하준은 멈칫하더니 나를 노려보며 또박또박 말을 이었다. “유상미. 집으로 돌아가.” 나는 그의 인내심이 한계에 도달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기억을 잃기 전이었다면 그냥 얌전히 그를 따라갔겠지만 지금의 나는 최대한 그와 멀리 떨어져 있고 싶은 마음뿐이다. 고개를 휙 하고 돌려버리고 목구빈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오빠, 우리 가자.” 목구빈이 뭐라 말하려고 입을 뻥끗하던 그때 누군가의 강한 힘으로 팔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육하준의 당장이라도 사람을 죽일 것만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는 강제적으로 내 허리를 감싸고는 싸늘한 말 한마디를 남겨버렸다. “오늘은 고마웠어요. 나중에 제가 밥을 대접하도록 하죠.” “대표님, 나중에 다시 만나요.” 그 말만 마치고 난 그는 나를 끌고 떠났고 황급히 고개를 돌려보니 목구빈은 손에 영수증을 든 채로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표정이 똑똑히 보이지는 않지만 약간 실망한 것 같았다. ... 나는 육하준에 의해 지하 주차장으로 끌려갔고 그가 손을 놓는 순간 나는 즉시 돌아서서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육하준은 묵직한 어조로 언성을 높였다. “유상미! 한 발짝만 더 가면 네 다리를 부러뜨릴 거야.” 나는 썩소를 지었다. “그쪽 덕분에 팔도 부러졌는데 이제는 다리까지 부러뜨리게?” 성큼성큼 그의 앞으로 걸어가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때려! 오늘 안 때리면 넌 남자도 아니야!” 육하준이 잔뜩 화를 내고 때릴까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준아, 상미 씨하고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뭐지? 육하준의 옆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그의 차에는 진교은이 앉아 있었다.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육하준 대표님, 참 대단해요. 어딜 가든 항상 진교은을 데리고 다니네.” 육하준은 부자연스런 표정을 내지으며 그럴듯한 변명을 하고 있었다. “오늘 교은이가 대극장에서 리허설을 해야 돼서 가는 길에 데려다주는 거야.” 빈정거림이 가득 담긴 웃음만 나오고 있다. 육하준은 그런 내 반응에 노기가 발작하려는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진교은은 다정하게 그의 손을 잡으며 나한테 간곡한 어조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유상미 씨, 제가 굳이 하준이를 따라나서겠다고 한 거예요. 상미 씨가 다친 걸 알고 걱정이 돼서요.” 두 사람의 꽉 맞잡은 두 손을 보며 나는 이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하준하고 진교은이 무슨 사이이든 간에 18년 동안의 기억으로 보아 내연녀가 남편을 데리고 본처 앞에서 우쭐대는 건 처음 보는 광경이다. 지금 누구 앞에서 연기질이야? 나는 휴대폰을 들어 그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저장했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