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나는 쑥스러워 고맙다는 말을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운전대에 살짝 얹은 목구빈의 손가락은 예술품처럼 아름다웠고 손목에 걸린 손목시계는 내가 잘 아는 브랜드였다.
절제되고 고급스러움을 연출하며 가격이 상당한 시계다.
그가 불쑥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넋을 잃고 그를 바라보던 시선을 황급히 거두고 난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무... 아니. 구빈 오빠, 우리 지금 어디 가요?”
나는 막연해졌다.
“도소희가 어디에 살았던지 까먹었어요.”
목구빈은 탄식했다.
“정말 잊은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 말로는 간헐적 기억상실이라는데 언제 기억을 되찾을지는 모른대요.”
목구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심각해? 육하준은 알고 있어?”
나는 쓴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내 말은 한마디도 안 믿어요. 제가 거짓말하고 있는 줄로 아나 봐요.”
목구빈은 살짝 화가 난 듯 유심히 나를 바라보다 화제를 돌렸다.
“너 카카오톡 있어?”
어리둥절해진 나는 잠시 후에야 그가 카카오톡 친구 신청을 맺자는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허겁지겁 휴대폰을 꺼내 설명을 늘어놓았다.
“미안해요. 오빠, 제가 먼저 물었어야 했는데 방금 다른 데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목구빈은 신호등이 걸린 틈을 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가느다란 그의 손가락이 휴대폰 화면에서 움직이더니 우리는 카카오톡 친구가 되었다.
나는 그의 프로필을 클릭해 보았다.
흑회백색의 추상화인데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지는 몰라도 그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
남들과 거리를 유지하고 있는 도도한 기운은 그의 마음을 종잡을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었다.
“병원비는 제가 이체...”
목구빈이 갑자기 손을 뻗었다.
그의 차갑고도 기나긴 손가락이 내 손끝에 닿자 나는 얼굴이 더욱 붉어져 버렸다.
그는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별소리 다 하네!”
가는 길 내내 그는 더는 대화를 이어가지 않았다.
목구빈은 평소에도 말수가 적은 편인 듯했고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그가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르자 듣기 좋은 피아노곡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잔뜩 긴장했던 신경은 그제서야 풀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렇게 잠이 들어버렸다.
마치 아기 때로 돌아간 것처럼 깊이 잠들어 버린 나는 온몸이 따뜻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 멈춰 섰다.
비몽사몽한 채로 눈을 떠보았다.
“깼어?”
곁에서는 은은한 소나무 향기가 풍겨왔고 목구빈은 몸을 돌려 내 안전벨트를 풀어주었다.
그의 숨결이 가까워지자 소나무 향은 더욱 짙어졌다.
나는 뒤로 몸을 피했다.
목구빈은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내 입가를 가리켰다.
“닦아.”
멀뚱멀뚱한 표정을 지으며 입가를 닦아보니 당장이라도 이 차창을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침을 흘리다니!
정신없이 아무렇게나 입을 닦으며 우물쭈물 이유를 대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진짜 제정신이 아닌가 봐요. 어쩜 저세상 모르고 잠들 수가 있는지.”
목구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상미는 귀여운 아가라서 잠이 많은 거야.”
참고 참던 웃음은 그대로 터져버렸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폭소를 터뜨렸다.
목구빈은 애꿎게 나를 쳐다보며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바탕 웃고 난 뒤 나는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오빠, 고마워요. 오늘 오빠가 없었으면 어떻게 그 상황을 해결해야 될지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목구빈은 동문서답을 하고 있었다.
“넌 웃는 게 훨씬 예뻐.”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