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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이서는 유리를 두드리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혼자서 놀고 있어.” 해파리는 강이서의 말을 진짜로 이해한 듯 촉수로 강이서가 손바닥을 붙이고 있는 부분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천천히 몸을 오므리고 깊은 곳으로 떠나갔다. 베라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서서 감탄했다. “해파리가 정말 네 말을 이해할 수 있다니...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을 텐데 말이야. 그저 감각만으로 알 수 있을지도 몰라.” 현재의 과학 수준으로는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었다. 강이서는 미소를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침 너한테 물어볼 것이 있어.” “뭐가 궁금한데?” 안전을 고려해서 S 구역 안의 대부분 실험실을 봉쇄했다. 강이서가 발을 들였던 특급 생물 구역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안의 괴물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썼다. 이상한 점은 그 봉쇄 구역에 들어가는 모든 사람이 특수 제작된 고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강이서가 묻고 싶은 것은 바로 그 고글이었다. “그 특수 고글은 뭐야?” 베라는 엄격한 기밀 유지 계약서에 사인했기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 없었다. “혹시 의식 조종이라고 들어봤어?” “의식 조종?” “응. 현시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인데 사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 특급 생물과 눈이 마주치면 생물이 인간의 의식을 조종할 수 있다고 들었어. 거기에서 많은 연구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대.” “뭐라고?” “연이어 자살했어. 육식 생물 수조에 뛰어든 사람도 있고 자해한 사람도 있고 정신이 나간 사람도 있어. 그리고 그들의 공통점이 바로 특급 생물과 눈이 마주친 적이 있다는 거야.” 강이서의 놀란 모습을 본 베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그곳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괴물이 있는 곳이야.” 강이서는 자리에 앉으면서 베라에게 물었다. “그럼 4번이 왜 업그레이드되었는지 알아?” 실험 기지의 등급 실험은 매우 엄격했다. 겉보기에 단순한 등급 뒤에는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베라는 생물 연구원이었기에 업그레이드된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독소는 아주 강한 화학 무기야. 수용성 독소만 있다면 영역을 확장할 때 큰 도움이 될 거야. 4번 변이체의 독성은 매우 강하고 스스로 진화할 수 있어. 실험 기지가 꿈꾸던 환상의 무기야.” 지능을 가진 공포의 생물 무기는 영역 확장에 필요한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육지 자원이 고갈되자 사람들은 미지의 영역인 바다로 시선을 돌렸다. 베라는 강이서가 이곳에서 일하고 있어도 바다가 어린 시절 트라우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강이서에게 신비로운 바다는 모든 재앙의 시작이었다. 한편으로는 부모의 목숨을 앗아간 곳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삶을 주고 살게 해준 곳이었다. 강이서는 잔혹한 실험을 할 수 없었고 이곳에서 가장 부드러운 사육사가 되었다. 베라는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불리는 생물 실험에 관한 지식을 배웠다. 다음 날, 실험실에 왔을 때 베라는 새로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17번은 4급 분열 진급 실험을 받게 되었다. “이서야, 17번이 이번 분열 실험을 넘긴다면 S 구역에 갈 수 있을 거야.” 강이서는 재빨리 고개를 들었다. “4급 분열 실험? 절대 안 돼. 너무 위험하단 말이야.” 그것은 사망률이 99.5%에 달하는 재생 생물 분열 실험이었다. 지금까지 성공한 사례는 두 건밖에 없었다. “이서야, 너에게는 결정권이 없어. 우리 생물 연구원들도 기지의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어.” 이 생물들의 소유권은 모두 실험 기지에 있었다. 상위자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있는 주인이었다. 강이서는 그들이 고용한 사육사일 뿐이었다. ‘어떻게 A 구역 생물을 상대로 4급 분열 실험을 진행할 수 있지?’ 베라가 말을 이었다. “지난번 분열 실험은 이미 A 구역 생물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돌파했어. 17번의 치유 능력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어. 아마 17번이 오래전에 이미 변이를 일으켰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생물 잠재력으로 강해졌다고 생각할 거야.” 생물 연구원들이 가장 치열하게 연구하는 주제가 바로 진화 과정이었다. “하지만 실패하면 17번은 죽어. 이서야, 어쩔 수 없어. 우리는 그저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어. 너도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걸 잘 알잖아.” 강이서는 그 자리에 서서 깊은 생각에 잠겼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17번을 보러 가고 싶어.” 이 실험 기지에서 사람들은 높은 등급의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높은 등급이 누리는 복지는 상상을 초월했다. 고급 사육사가 가고 싶은 구역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등급이 전부인 곳이었다. 옛날에 자주 드나들던 구역에 발을 들인 순간, 누군가가 강이서를 쳐다보았다. 조각처럼 아름다운 문어 인간이 유리 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창백하고 긴 손가락을 유리에 붙이고 있었고 매혹적인 두 눈에는 평소와 다른 감정으로 가득 찼다. 문어 인간은 강이서를 아주 그리워했다. 그리움 때문인지 강한 공격성을 보이면서 많은 사육사를 쫓아냈다. 하지만 그토록 그리워하던 사람은 문어 인간의 깊은 감정을 외면했다. 강이서는 문어 인간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한 듯 지나치더니 군소 인간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가냘프고 하얀 군소 인간은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수조에서 기어 나와 강이서의 허리를 감싸안고 달라붙었다. 그러고는 온순한 얼굴을 강이서의 손바닥에 비볐고 애교를 부리면서 이 순간을 즐겼다. 강이서는 군소 인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군소 인간은 가느다란 팔로 힘없이 강이서의 옷을 감싸고 있었다. 뒤쪽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강이서는 일부러 돌아보지도 않고 무시했다. “이서, 보고 싶었어.” 군소 인간은 고개를 들고 붉어진 두 눈으로 강이서를 바라보았고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두고 가지 마.” 강이서는 군소 인간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군소 인간은 강이서를 더욱 꽉 안았다. 군소 인간의 몸은 옅은 붉은빛으로 물들어졌다. 너무 그리웠던 사람과 만나서 흥분되었고 설레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이서, 이서.” 군소 인간은 강이서의 허리를 감싸면서 이름을 불렀다. 목소리와 눈빛은 강렬한 사랑으로 가득 찼다. ‘이서는 사육사가 아니라 나의 주인이야. 이렇게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군소 인간은 빨간 입술을 강이서의 손등에 갖다 댔고 서툴게 사랑을 표현했다. 그리고 순종적으로 행동하면서 강이서를 기쁘게 하려 했다. 강이서는 군소 인간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군소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표정이었고 17번이 독차지하고 싶었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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