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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상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었다. S 구역에서 폭발음과 강한 진동이 전해졌고 수많은 무장 요원과 경비원이 문 쪽을 향해 달려갔다. 강이서는 안전 경보가 1급에서 4급으로 올라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S 구역의 가장 깊은 곳에는 아주 큰 고밀도 수조가 있었고 그 안에는 바벨탑 역사상 가장 뛰어난 특급 생물이 갇혀 있었다. 이 생물은 얼마 전부터 외부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고 극도로 위험한 공격성을 드러냈다. 요란한 경보음이 계속 울려 퍼졌다. 17번이 있던 실험실은 갑자기 노란 불빛이 켜졌고 문이 열렸다. 안에 있던 연구원들은 다급히 장비와 컴퓨터를 정리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달려 나와서 강이서를 향해 말했다. “지금 긴급 상황이 발생했으니 먼저 대피하세요.” “17번은 어쩌고요?” “상태가 불안정해서 관찰 구역에 있어요. 걱정하지 말고 얼른 가세요.” 연구원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때 다른 실험실에서 충돌음과 비명이 들려왔다. 안에 있던 실험체가 통제를 벗어났고 무언가에 이끌린 듯 연구원들을 미친 듯이 공격하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땅속에서 나오려고 하는 것처럼 바닥이 진동했다. 대피 방송이 울려 퍼졌고 경보음이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강이서는 지금까지 실험 기지에서 대규모로 대피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다. 대피 통로로 향하려는데 갑자기 누군가 손목을 잡아당겼고 강이서한테 금속 가방을 넘겼다. “이 안의 액체를 빨간 경보등이 켜진 실험실에 투입하세요!” 강이서는 눈살을 찌푸렸고 거절하려 했지만 그 여자가 진지하게 말했다. “이건 명령이에요!” 강이서는 그 여자의 어깨에 달린 계급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강이서보다 무려 세 계급 위의 선임이었다. 군사화된 바벨탑 실험 생물 기지에서 상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했다. 그 여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말했다. “어서 가방을 들고 가세요!” 강이서는 어쩔 수 없이 금속 가방을 받았다. “알겠어요.” 인파가 흩어지고 S 구역 문 틈새로 피비린내가 나는 물이 쏟아져 나오더니 눈 깜빡할 사이에 발목까지 차올랐다. 안쪽에서 구조 요청이 들려왔고 연구원들이 울부짖으면서 도망쳤다. 오직 강이서만이 깊은 곳으로 힘겹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곳은 한 번도 발을 들여본 적 없는 특급 생물 구역이었다. 좁고 긴 복도는 지옥으로 통하는 터널 같았고 금속 벽에 그림자가 비쳤다.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는 오직 강이서의 발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실험실은 원래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고 주변은 너무 조용해서 소름이 돋았다. 그 여자가 말한 곳은 문이 열려 있었다. 강이서는 손을 뻗어서 문을 살짝 밀었고 어둠 속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가 물속에서 기어 나오는 듯했다. 전기 회로가 파괴되어서 앞이 보이지 않았기에 벽을 짚고 조심스럽게 걸어가야 했다. 넓고 어두운 공간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원통형 수조가 있었고 유리 뒤로는 아름다운 짙은 푸른빛이 비쳤다. 강이서는 금속 가방을 열고 그 안의 약을 꺼냈다. 그러고는 수조 옆의 계단을 올라가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강이서를 지켜보고 있었다. 강이서는 투입구를 찾아냈고 겨우 두꺼운 금속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지시에 따라 약을 모두 수조 안에 쏟아부었다. 수조가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했고 바닥이 진동해서 계단 위에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쿵! 강렬한 진동 때문에 바닥이 갈라지는 듯했다. 강이서는 손가락이 미끄러졌고 뒤로 넘어졌다. 그곳은 바닥에서 약 10미터 높이였기에 그대로 떨어지면 즉사할 것이다. 강이서는 미처 반응할 새도 없이 떨어졌지만 예상과 달리 아프지 않았다. 이때 허리에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고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강이서는 관성에 의해 튕겨 나갔고 바닥에 떨어졌다. 강이서가 고개를 들자 연한 푸른빛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이게 뭐지? 무엇이 나를 구해준 걸까?’ 강이서는 오랫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고 뇌가 멈춘 듯했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원통형 수조에 거대한 금이 가 있는 것을 보았고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특급 생물이 탈출한 것이었다. 극도로 불안해진 강이서는 뒤쪽에서 무언가가 금속 사슬로 바닥을 긁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어두운 환경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강이서는 무시무시한 생물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앞은 온통 어둠뿐이었기에 포식자의 시야에 노출된 불쌍한 먹이가 된 셈이었다. 거대한 실험실에는 오직 강이서의 거친 숨소리만이 남아 있었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유리 조각이 으스러지는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이서는 심호흡하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쓰러진 실험 기구들 사이에서 희미하고 길쭉한 그림자가 보였다. 푸른빛 수조가 어둠 속에 숨겨진 차가운 두 눈을 비추었다. 강이서는 숨을 죽이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상대는 머리를 반쪽만 드러냈고 몸을 어둠 속에 숨겼다. 눈동자는 보석처럼 어둠 속에서도 아름다운 빛을 내고 있었다. 이때 강이서는 코를 자극하는 피비린내를 맡았다. 그 안에는 강이서를 제외한 다른 사람이 없었고 강이서는 다치지 않았다. 조금 전에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기에 상대가 다쳐서 피를 흘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고민 끝에 강이서는 두 손을 들었다. “나는 너를 해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실험체를 달래는 것은 사육사로서 제일 잘하는 일이었다. “혹시 다쳤어?” 강이서가 부드럽게 물었다. 상대가 이상할 만큼 조용해지자 강이서는 천천히 일어나서 두 손을 높이 들고 다가갔다. “무서워하지 마.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어.” 상대는 강이서를 쳐다보면서 경계하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지자 강이서는 숨을 죽였다. 깨진 유리 위에는 아름다운 생물이 엎드려 있었다. 물에 젖은 연한 금색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흘러내렸고 입술은 짙은 붉은색을 띠어서 더욱 아름다웠다. 피부는 깊은 바다 생물처럼 햇빛을 보지 못한 듯 몹시 창백했다. 이런 외모는 인간이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많이 다쳤어? 괜찮아?” 강이서가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상대는 여전히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강이서는 천천히 손을 뻗으면서 악의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두려워하지 마. 나는 이곳의 사육사야. 너의 상처를 치료해 줄 수 있고 여기에서 나가게 해줄 수 있어...” 강이서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온몸이 굳어버렸다. 상대의 길쭉한 목에 뚜렷하게 돌출된 목젖을 보았기 때문이다. 강이서는 그 아래로 다부진 근육과 넓은 어깨를 보게 되었다. 눈앞의 모든 것은 이 아름다운 생물이 남성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반짝이고 있었다. 강이서는 그 빛을 보고는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아름답고 길쭉한 꼬리지느러미가 바닥에 펼쳐져 있었다. 그 생물은 바로 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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