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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잔해 속에서 새로 생긴 문어가 강이서를 빠르게 감싸며 그녀를 재빨리 피하게 했다. 강이서는 자신이 틈이 없는 밀폐된 속에 갇힌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몸은 문어 인간의 차가운 복부에 밀착되었다. 냉혈 동물의 모든 것은 차가웠기에 그녀에게 부드럽게 대하더라도 따뜻함을 느낄 수 없었다. 한 겹 또 한 겹의 촉수가 그녀를 틈새 없이 감쌌고 이내 무중력감이 느껴졌다. 빠르게 움직이는 17번에 강이서는 고치 속에서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문어 인간의 속도는 기존 기록된 연체 변이 생물을 모두 뛰어넘었다. 적외선 카메라가 그의 흔적을 간신히 포착했다. 분노의 불길 속에서 새로운 촉수가 계속 솟아났지만 레이저 무기에 잘려나갔다. 재생, 폭발, 부서짐, 재생...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었다. 놀라운 것은 새로 생긴 촉수들이 점점 더 단단해졌다는 것이다. 표피의 탄력성이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무기들은 더 이상 그를 해칠 수 없게 되었다. 문어 인간의 품에 안겨 있는 강이서는 견고한 촉수로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다. 그 촉수들이 공격당해 잘려나가면 새로운 촉수들이 빠르게 그 빈자리를 메워 틈새 없이 그녀를 보호했다. 그리고 분노가 일정 수준에 도달하자 상황이 반전되었다. 도망치던 문어 인간은 어느새 살육하기 시작하더니 여러 발사 포트를 미친듯이 파괴했고 단단한 고밀도 금속 벽에 무수히 많은 공포의 흔적을 남겼다. 심지어 겹겹이 쌓인 관측 판에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교수님, 여기는 안전하지 않습니다!” 이 이상한 광경에 누군가 한마디 했다. 상황이 통제 불능으로 치닫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변이를 일으키면 종이 뒤바뀔 수 있었다. 문어 인간이 만약 강이서를 보호하지 않았다면 분명 밀폐된 공간을 찢고 나와 순식간에 그들을 조각냈을 것이다. 모니터링 구역에 앉아 있는 연구원들은 무서운 인간형 무기가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을 갈기갈기 찢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허진웅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흥분이 섞여 있었다. 마음속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이 솟아올랐다. 이것은 신의 창조물이자 하늘의 선물로 지금까지 가장 뛰어난 실험체였다. 음울하고 무서운 문어 인간이 고개를 든 모습을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었다. 짙푸른 눈으로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문어 인간은 무기질 보석처럼 차갑고 빛나면서도 살육의 기운이 가득했다. “카메라를 보고 있어요...” 문어 인간의 시선은 은색으로 위장된 카메라에 꽂혀 있었다. 실험체가 카메라 렌즈를 통해 자신을 보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허진웅은 왠지 모르게 온몸이 오싹했다. 하지만 문어 인간의 차가운 모습은 허진웅의 정신을 흔들어 놓은 듯 더욱 강렬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마치 허진웅의 영혼을 꿰뚫어 그의 존재를 보는 듯한 모습이 너무 신기했다. “성공... 성공했어.” 허진웅이 드디어 입을 열었지만 아무도 흥분하지 않았다. 이 지경에 이른 이상 이제 공포감만이 주위를 휩쌌다. S 구역의 일반 배양 구역이 과연 이렇게 힘이 센 문어 인간을 가둘 수 있을까? 그러나 위기는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S 구역 깊숙이 겹겹이 봉인된 곳에서 거대한 폭발음이 들려오더니 주위가 진동했다. 마치 지하의 흉악한 영혼이 공간을 찢고 지표면으로 올라오려는 듯했다. 띠...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평소 울리지 않는 허진웅의 경보기가 울렸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는 연구원들은 순간 창백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누군가 당황한 얼굴로 달려오며 말했다. “큰일 났어요.” 스크린에서 시선을 뗀 허진웅은 경보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진 허진웅은 조금 전까지의 기쁨과 흥분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듯했다. 무의식적으로 잃어버린 팔의 빈 소매를 손으로 가렸다. 고급 연구원의 유니폼을 입고 달려온 연구원은 공포에 질린 듯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특수 통제 구역, 1급 경보...” 문어 인간이 벽을 부수려 할 때도 걱정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허진웅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어쩌면 진짜로 중대한 일이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강이서! 일어나!” “강이서! 자면 안 돼!” 누군가가 실험실에 숨겨진 스피커를 통해 그녀를 계속 불렀다. 차가운 얼굴로 그것들을 파괴하려 했던 17번은 품 안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자 당황한 얼굴로 겹겹이 감은 촉수를 풀고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연약한 사육사를 보았다. 얼굴이 창백해 매우 힘들어 보이는 강이서는 문어 인간의 품에서 힘겹게 기어 나와 그의 팔에 기대어 숨을 헐떡였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문어 인간은 공중에 떠 있던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만지더니 낮고 초라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이서.” 고개를 든 강이서는 아름다운 그의 얼굴에 자책과 고통이 가득한 것을 보고 순간 의문이 생겼다. 늘 차갑기만 하던 얼굴에 인간 냄새가 더해진 것 같았다.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강이서는 문어 인간의 팔을 토닥이며 일어나 앉았다. 너무 오랫동안 흔들린 탓에 토할 것 같았고 어지러워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기뻐 어쩔 줄을 모르는 문어 인간은 몸을 움직여 그녀가 더 편안하게 기대도록 했다. “강이서, 들려? 이서?” 적절하지 않은 타이밍에 스피커 소리가 다시 들리자 강이서의 눈꺼풀이 살짝 움직였다. “베라?” 스피커 속의 목소리는 확실히 베라였다. 베라는 잔뜩 화가 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너의 효자 아들 문어 인간이 통제 불능이 됐어! 구조대가 접근할 수도 없어. 마취를 시도해도 효과가 없어... 너 혼자 기어 나올 수 있겠어?” “어?” 강이서는 고개를 들어 17번을 바라봤다. 그러자 스피커를 차갑게 노려보던 문어 인간은 음울한 표정에서 순식간에 순종적으로 변하더니 아무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한 자신의 행동을 변명하려는 듯 말했다. “그들이 해쳤어, 이서.” 그래서 목숨을 걸고 주인을 지키는 경호원처럼 그녀를 품 안에 숨겼고 들어오려는 사람들에게 중상을 입혔다. 얼굴이 창백해진 강이서는 눈을 감아도 눈앞이 어지러운 것 같았다. 유리창이 갑자기 사라지고 핵융합처럼 위험한 무기가 갑자기 그녀를 향했던 것을 강이서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의 목숨을 바쳐 실험체를 진화시키려 했다. 연구원에서 실험체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기에 사육사는 아무런 가치가 없었다. 눈을 감고 17번의 팔에 기댄 강이서는 마음이 씁쓸했지만 문어 인간은 행복에 겨운 얼굴로 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문어 인간은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도 모르는 듯 한 번 들었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내렸다. 그러고는 강이서가 평소에 싫어했던 촉수를 조심스럽게 거두고 가슴 벅찬 기쁨으로 그녀를 부드럽게 감쌌다. 스피커에서 약한 전류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다시 베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서야, 정신 차려! 실험체 상태가 지금 너무 이상해!” 강이서가 떨리는 눈꺼풀로 문어 인간을 바라보자 그녀를 바라보는 짙은 녹색 눈동자는 기대와 기쁨을 억누르지 못한 듯 반짝였다. “됐어, 이제 날 놔줘, 17번.” 그러나 문어 인간은 그녀의 말을 듣지 않은 채 주인을 꼭 껴안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더 다정하게 강이서를 안고 싶었지만 그녀가 불편함을 참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나 지금 너무 불편해, 17번.” 강이서가 몸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 “정말 날 아낀다면 내가 아픈 건 바라지 않겠지?” 문어 인간은 바로 후회한 듯 손을 놓았다. 끔찍한 무기의 공격 속에서도 강이서는 그 어느 곳도 상처를 입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눈앞에 서러운 강아지처럼 웅크린 위험한 생물이 그녀를 지켜주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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