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51장
그 말을 듣자 유예인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할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저보고 그 늙은 놈한테 하룻밤을 바치라는 거예요?”
유예인은 방 안을 둘러보았다. 그녀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였다. 그중엔 아버지인 유정철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로는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태연하게 말했다.
“예인아, 그냥 하룻밤이야. 그게 뭐가 대수냐?”
“다른 사람들은 그런 걸 부끄러워할지 몰라도 가족의 생사가 달린 문제라면 그까짓 게 뭐가 대수냐? 오히려 가치가 있는 일이지.”
장로의 말을 들은 유예인은 온몸이 떨리고 서늘한 기운이 척추를 타고 올라왔다. 피붙이인 가족이, 그것도 가문의 장로가 자신에게 그 늙은 남자와 함께 자라고 하며 태연하게 말을 꺼내고 있는 게 어이가 없었다.
“할아버지, 도대체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 아직 결혼도 안 한 처녀예요. 제 정조와 명예는 어떻게 하라고요?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유예인은 이를 악물고 억울함에 치를 떨며 말했다.
“그게 거절할 이유가 되냐?”
장로는 표정이 싸늘해졌고 그의 권위가 방 안을 무겁게 내리누르자 유예인은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어졌다.
“개인의 정조와 명예가 가문의 존폐와 비교해 대단한 거라도 된다고 생각해? 너도 가문의 일원이면 이 정도는 이해해야지.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마연혁과 하룻밤을 보내라는 건데 뭐가 그리 대수라고?”
“유씨 가문 300명의 생명이 걸린 일이야. 필요하다면 널 죽음에 내던지는 한이 있어도 지켜야 할 일이야.”
“마연혁이 네가 마음에 든다고 했으니 너한테 기회를 주는 거야. 마연혁이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면 나라도 가서 얼굴 내밀었겠지!”
“가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수 있어야 해!”
장로의 목소리는 점차 커져가더니 마지막엔 거의 고함으로 방을 울렸다.
유예인은 온몸이 벌벌 떨렸고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할아버지의 말이 사실임을, 가문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든 희생해야 하는 게 세습 가문 자녀의 운명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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